풍운의 조짐
사실 삼 년 전 홍소미가 어린 나이에 천비각의 부각주로 발탁되었던 것은 그녀의 뛰어난 재지와 무공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방의 후개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천비각에서 받아들이는 주요 정보들의 칠할 이상이 개방을 통해 흘러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니,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붙잡고만 있으면 개방의 정보력을 한손에 거머쥘 수 있지 않겠는가.
홍소미는 천룡전의 이러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마교의 내분은 뜻밖의 호재예요. 덕분에 본맹은 제령의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전 이 모든 일이 너무 공교롭게도 동시에 진행된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요.
제령에 천외패왕궁이 똬리를 틀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또한 천약문과 신독문의 혈사가 있은 후로
혈사방이라는 별 볼일 없던 변방의 마도 문파 하나가 무서운 힘으로 감숙성을 장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마교에서는 내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몇 년 안에 순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가 냉소를 치며 말했다.
“흥, 노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네. 천약문과 신독문의 혈사,
그리고 혈사방만의 일이라면 천하를 어지럽히려는 암중세력의 개입을 의심해 볼 수 있지.
하지만 이건 아니야. 마교와 천외패황궁이라…….
외람되지만 자네와 같은 세대에서는 그들의 힘을 직접 겪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
내 단언하건데, 그들 중 어느 한곳이라도 본맹은 물론 정파 전체와 양패구상(兩敗俱傷) 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네.
그런데 이런 그들을 누군가 암중 조정하여 일을 도모한다? 허허, 과거의 대천산파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불가능할 일일세.”
좌중 여기저기서 이에 동조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홍소미가 시선을 돌려 방금 말을 했던 청의 노인을 향했다.
다소 큰 체격에 강인해 보이는 얼굴. 바로 무림맹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청룡각(靑龍閣)의 각주 검절신군(劍絶神君) 공화룡(孔火龍)이다.
홍소미는 그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각주님의 고견 잘 들었습니다. 그건 저로서도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람되나마 각주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검절신군 공화룡의 시선이 홍소미를 향했다.
“물어 보시게.”
“만약 각주님과 신독문주이신 독존 제천중 어르신의 무공을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리라 생각하십니까?”
순간, 공화룡의 미간이 꿈틀거렸고 그녀를 직접 데려온 천비각주 소염옹 동방백의 안색 또한 가볍게 변했다.
“그 무슨 말인가? 어서 사과드리도록…….”
소염옹 동방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절신군 공화룡이 나서며 말했다.
“좋네. 내 솔직히 대답하지. 무공만으로 따진다면 내가 다소 위일 것이나, 생사를 갈라야 한다면
죽는 쪽은 내가 될 가능성이 높네. 그의 독공은 상대의 무위에 상관없이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지.”
홍소미가 즉시 말했다.
“대주(隊主)였습니다. 본맹의 청룡각주께서도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고수인 독존 제천중에게 양패구상에 가까운 타격을 입힌 자.
그리고 신독문의 혈사를 주도한 암중세력의 책임자가 고작 한 대(隊)의 책임자라는 말이에요.”
갑자기 장내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홍소미가 주위를 쭉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대주라면 흔히 한 단위조직의 책임자를 지칭하는 지위입니다.
본 맹에도 대주라는 직급이 있듯이 그건 각(閣)에 속한 한 조직을 책임지는 자리죠.
결코 낮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고위급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요.
만약 독존 제천중 정도의 인물이 본맹으로 들어오신다면 어떤 직급이 어울릴까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겨우 대주 정도의 지위로는 그분에게 걸맞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몇몇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전음을 주고받는 듯 하더니 ‘설마’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홍소미가 다시 말했다.
“사실 그들의 조직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알 수는 없지만, 대주들 위로는 최소한 한, 두 단계 이상의 직급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대(隊)가 최소한 열 개 정도만 있다면 그들의 세력은 결코 본맹보다 하수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갑자기 들려온 조용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무제 사도헌에게로 향했다.
무제 사도헌이 홍소미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천비각의 부각주의 생각으로는 천약문과 신독문의 혈사를 일으킨 세력이,
당금 천하의 복잡한 형세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뜻인가?”
홍소미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이 장본인이라고는 볼 수는 없어요.
암중세력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천하를 삼분하고 있는 세력들 중 두 개를 동시에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죠. 그건 제가 신독문에서 느낀 것인데…,
그들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오랜 세월을 두고 조금씩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나가는 방법 말이에요.
마교나 천외패황궁에도 중원진출을 꿈꾸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고,
뜻이 맞는 이들을 규합해 힘을 키워 왔다면…, 가능한 이야기예요.”
홍소미의 말이 끝나자 좌중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사실 맹주인 무제 사도헌을 비롯하여 무림맹 최고위 수뇌들이 홍소미의 이러한 의견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그들도 신독문의 혈사와 십 년 이상 그곳에 숨어 있었다는 간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교와 천외패황궁에게까지 그들의 세력을 침투시켜 천하를 움직이는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졌다. 따라서 그에 대한 가능성은 더 이상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암중 세력이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각 문파에 간자를 잠입시켜 그곳에서 성장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점차 세력을 키워 영향력을 발휘할 무렵 서서히 천하의 형세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러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결정적인 어떤 계기를 만들어 각 세력들 간의 충돌을 야기하고
무림 전체를 혼란 상태로 몰아넣은 뒤, 자신들은 천하 무림의 힘이 모두 소진된 틈을 타 서서히 등장한다.
그리고 혼란을 수습하여 새로운 무림의 주인이 된다.
이야기꾼들이 써먹기 딱 좋은 각본이 아닌가.
무제 사도헌은 내심 실소를 흘렸다.
‘허허, 천하를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르고 하는 소리야.’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사도헌은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안에 이 같은 큰 사건들이 연차적으로 벌어진 적이 무림 역사상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코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암중 세력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면…, 수천수만의 생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천하는 피에 잠길 것이고, 무림은 공멸(共滅)하고 말리라.’
무제 사도헌의 안색이 다소 굳었다.
그가 홍소미에게 물었다.
“부각주의 생각은 어떠한가?”
순간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맹주 사도헌과 홍소미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무제 사도헌이 홍소미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홍소미가 기다렸다는 듯 즉시 대답했다.
“마교의 내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모르나 지금 당장 천하의 판세에 영향을 주진 않을 거예요.
물론 혈사방의 일도 국지적인 것이니 그들이 감숙성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하지만 천외패황궁의 일은 시급해요. 그들이 만약 제령에 완벽하게 정착한다면,
우리들의 목 바로 아래에서 비수를 들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에요.”
홍소미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청룡각주 검절신군 공화룡이 불쑥 물었다.
“그래, 부각주에게 그들을 몰아낼 좋은 생각이 있단 말인가?”
그의 물음에 홍소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현재로선 그럴 수 없어요. 그들을 몰아내려면 충돌이 불가피한데, 그건 암중세력이 가장 바라는 일이에요.”
검절신군 공화룡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결국 부각주의 의견은 암중세력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나온 것이로군.
만약 암중세력이라는 게 없다면, 아니 있다고 치더라도 천외패왕궁과는 무관하다면 어찌하겠는가?
우린 제풀에 놀라 구덩이에 속에 꼭꼭 숨어있는 토끼새끼가 되어 버리지 않겠나.”
“옳으신 말씀이에요.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천외패황궁의 중원진출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그 일의 주도세력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해요.
그것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암중세력의 개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봐요.”
그때, 홍소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무림맹주 무제 사도헌이 입을 열었다.
“부각주에게 좋은 방법이 있는 모양이로군.”
홍소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직접 방문하여 살짝 찔러봐야죠.”
“직접 방문 한다……?”
“특사를 파견하는 거죠. 그리고 그들을 자극할 수 있는 적당한 사람이 있어요.”
“적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혈랑이라는 사람이에요.”
“혈랑? 가만…, 혹시 신독문의 혈사 때…….”
홍소미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천외패황궁이 비밀 거점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사람 때문이에요.
그의 신분에 호기심을 느껴 제가 개인적으로 개방의 정보망을 동원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령의 일을 알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에게는 천외패황궁으로부터 받아야 할 빚이 있어요.”
“빚이라…….”
무제 사도헌이 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사도헌을 향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무제 사도헌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천비각주 동방백을 슬쩍 바라보았다.
무제 사도헌과 두 눈이 마주친 동방백은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무제 사도헌이 즉시 홍소미에게 명령했다.
“이번 일은 홍 부각주가 주도하여 처리하도록 하시오.
특사단의 인선부터 모든 일정을 부각주에게 맡기도록 하겠소.”
파격적인 지시였다. 천룡전 내 모든 수뇌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입을 열수가 없었다.
무제 사도헌 자신이 단정적으로 내린 명령을 철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소미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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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독!!!!!!!!!!!!1
즐감하고 갑니다.
ㅎㅎㅎ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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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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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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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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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잘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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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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