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귀비의 과일/ 두목(杜牧)
장안에서 돌아보면 비단을 쌓은 듯 수려한 여산,
산꼭대기 화청궁 겹겹이 닫힌 대문들이 차례차례 열린다.
흙먼지 일으키는 단기필마 보며 미소 짓는 양귀비,
아무도 여지(栛枝)가 막 도착했다는 걸 알지 못하네.
長安回望繡成堆, 山頂千門次第開. 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栛枝來.
―‘화청궁을 지나며(과화청궁·過華淸宮)’제1수·두목(杜牧·803∼852)
비단(緋緞)을 쌓아 놓은 듯 경관이 빼어난 여산(驪山) 꼭대기에 자리한 화청궁(華淸宮). 매년 겨울에서 봄까지 당(唐) 현종(玄宗)은 양비귀(楊貴妃)를 대동하고 장안을 떠나 이 별궁에서 휴양을 즐겼다. 쓰촨(四川) 출신 귀비를 위해 황실은 수천 리 먼 곳에서 여지(栛枝)를 실어 날랐다. 신선도(新鮮度)를 유지하려고 황급히 달려온 말이 들이치자 겹겹의 궁문(宮門)이 차례로 열리고, 고향의 과일이 도착한 걸 감지한 귀비(貴妃)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촌각(寸刻)을 다투는 중대사(重大事)를 전하는 파발마(擺撥馬)가 아니라 귀비의 환심(歡心)을 사려는 여지(栛枝)가 막 당도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리라.
근 100년이 흐른 후 시인은 폐허가 된 화청궁을 상상 속에서 되살린다. 현종의 무절제한 일탈이 안사의 난(安史-亂)을 초래했고 왕조 쇠망의 단초가 된 회한의 역사다. 3수로 된 연작시(連作詩) 가운데 제1수는 그나마 차분하고 완곡한 분위기다. 하지만 ‘음악이 여산 봉우리마다 울려 퍼지고 양귀비 춤사위에 중원 땅이 무너진다’(제2수)거나 ‘화청궁 박수 속에 안록산이 춤추고 봉우리 너머 웃음소리 바람 타고 넘나든다’(제3수)는 등 시인의 목소리는 점차 거칠어진다. 익는 시기로 보아 여지를 화청궁으로 날랐다는 데 반론이 있지만, 역사적 진실과 무관하게 문학은 귀비의 사치와 향락에 주목했기에 ‘양귀비의 과일’은 늘 비판의 표적이 됐다. 소동파 (蘇東波, 蘇軾·1037∼1101)도 ‘궁중 미녀야 여지 먹으며 활짝 웃었을 테지만, 날리는 흙먼지와 뿌려진 선혈은 두고두고 남아 있네’란 시구를 남겼다.
* 두목(杜牧, 정원 19년(803년)~대중 6년(852년))은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이다. 경조부(京兆府) 만년현(萬年縣, 지금의 산시 성 시안시) 사람으로 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樊川)이다. 《통전(通典)》의 저자로 유명한 대학자 두우의 손자로, 마찬가지로 당나라 후기의 시인으로 꼽히는 두순학은 그의 서자로 알려져 있다. 중당(中唐) 시대의 시인 두보(杜甫)와 작풍이 비슷하며, 노두(老杜) 두보(杜甫)와 구별하기 위해 소두(小杜)라고도 부르며, 동시대의 시인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만당(晩唐)의 이두(李杜)」로 통칭된다.
주요작품은 만당(晩唐) 시기 당시(唐詩)의 섬세하고 기교적인 풍조에 비해 평이하면서도 호방한 시를 지었다. 그의 시는 풍류를 즐기기 위한 풍류시와 과거의 역사를 노래한 영사(詠史), 시사 풍자에 뛰어날 뿐 아니라 요염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럼에도 강건한 면을 모두 갖추어 때때로 리얼리즘을 떠나서 인상파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강남(江南)의 풍경을 그림처럼 표현한 〈강남춘(江南春)〉이 유명하며, 양주에서 풍류재자(風流才子)로서 지내덜 시절의 모습을 그린 〈견회(遣懷)〉는 현실을 벗어난 가상적이라는 시풍(詩風)을 반영하고 있다.
◦ 강남춘(江南春)
千里鴬啼緑映紅 천지에 꾀꼬리 소리, 푸르고 붉은 꽃들이 서로 비추고
水村山郭酒旗風 강마을 산어귀에 술집 깃발 펄럭이는데
南朝四百八十寺 남조(南朝) 때의 480개 절이
多少樓臺烟雨中 다소 누대가 안개비 속에 잠겼구나
또한 해하 전투에서 패한 항우가 오강(烏江)까지 도망쳐 왔을 때의 일을 노래한 〈제오강정(題烏江亭)〉은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제오강정(題烏江亭)
勝敗兵家事不期 승패란 병가(兵家)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안고 부끄러움을 견디는 게 남아라네
江東子弟多才俊 강동(江東)의 자제에 숨은 인재가 많다 하나
捲土重來未可知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돌아올런지도 알 수 없나니
부(賦)로는 23세 때 정치에 대한 정의감을 불태우며 지었던 〈아방궁부(阿房宮賦)〉가 유명하다.
당 후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인기도가 높지만, 성당을 중시하여 중당(中唐)・만당(晩唐)의 시를 비판했던 명의 고문사파(古文辭派)의 문학관이 반영된 《당시선(唐詩選)》에는 두목의 시가 한 수도 실려 있지 않다.
여지(栛枝)/ 양귀비楊貴妃)
* 여지(栛枝/ 학명: Litchi chinensis Sonn.)는 무환자나무과 열대 과일로 중국 푸젠에서 시작해 광둥, 쓰촨 등 남부지역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뷔페식당과 대형식품매장에서도 과일 여지를 볼 수 있다. 꽃말은 '열정'이다.
여름 과일의 왕으로 불리지만 아쉽게도 여지의 보존기간은 아주 짧다. 때문에 백거이는 ‘하루면 색이 변하고, 이틀이면 향이 변하고, 3일이면 맛이 변하고 색과 향이 모두 나간다’(一日色變,二日香變,三日味變,四日色香味盡去)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런데 역사상 이 여지를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당현종의 사랑을 듬북 받았던 양귀비다. 그런데 신선한 여지의 유통시한은 3일 정도다. 때문에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여지를 배달하는 것이고, 이 배달 속도는 곧 목숨을 의미한다. 그러니 여지를 실은 파발들은 걸어가도 힘든 검문촉도를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야 한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여지를 배달하기 위해 그 낭떨어지에서 떨어져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실제로 신당서(新唐書) 양귀비전(楊貴妃傳)에는 ‘양귀비는 여지를 매우 좋아한다. 여지가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여지를 양귀비 앞에 즉시 대령해야 된다. 그래서 현종(玄宗)은 기병(騎兵)을 파송하여 수 천리 길을 달려 신선한 여지를 따가지고 여지의 맛이 변하기 전에 장안(長安) 까지 도착하였다’(妃嗜荔枝 必欲生致之 乃置騎傳送 走數千里 味未變己至京都)는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에는 '여지는 성질이 평하거나 약간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는 약으로 분류된다.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지혜를 돕는다.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며 목이 마르는 증상인 번갈을 멎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 많이 먹으면 열이 난다. 꿀물을 마시면 풀린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지 씨, 즉 여지핵도 가슴앓이와 허리나 아랫배가 아픈 병을 치료하는데, 태워서 가루를 낸 다음 따뜻한 술에 타 먹는다.
✺ [들풀의 Macro photograph - 한국의 자원식물] 백양산의 이를 수 없는 진한 미소, 백양꽃[石球砂]
백양꽃[학명: Lycoris sanguinea var. koreana (Nakai) T. Koyama]은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전라북도 백양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기에 백양화(白羊花)라고 불러왔다. 가재무릇, 가을가재무릇, 고려상사화, 조선상사화, 타래꽃무릇이라고도 한다. 희귀식물 및 특산식물로 지정되어 있어 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관상용, 약용, 식용이다. 꽃말은 '초가을의 그리움, 진한 미소'이다.
상사화(相思花)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꽃과 잎을 동시에 볼 수 없다. 백양꽃도 상사화랑 같은 집안이다. 상사화와 백양꽃은 봄에 잎이 먼저 나오지만 꽃무릇이나 개상사화는 가을에 잎이 나온다. 상사화(相思花)란 인간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기이한 꽃으로 살아가게 된다. 상사병(想思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안타깝지만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현대의학기술로도 고칠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병이다.
내장산 이남의 남부지역의 계곡이나 풀숲의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키는 30~40㎝이고, 잎은 뿌리에서 뭉쳐서 이른 봄에 나오며 폭이 약 1.2㎝가량이고 연한 녹색이며 끝이 뭉뚝하다. 뿌리는 달걀 모양이고 길이는 3~3.7㎝, 폭은 2.7~3.5㎝이다.
꽃은 8월~9월에 적갈색으로 뿌리에서 나온 줄기 윗부분에서 5~7개 정도가 피는데 꽃잎은 6장이고 수술과 암술은 밖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U”자 모양을 하고 있고 한쪽을 향해서 핀다. 종자가 결실되기는 하지만 개화까지의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품종이고 뿌리를 이용하여 번식시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생약명(生藥銘)은 석구사(石球砂)이다. 위궤양, 간암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비늘줄기 속에는 라이코린(Lycorin)과 알칼로이드(alkaloid)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체내 수분의 흐름을 다스리며 응어리를 푸는 효능도 있다. 독을 없앤 비늘줄기는 먹기도 한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1년 8월 20일(금), 이준식의 한시 한 수(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 서울대학교출판부)》, 《Daum, Naver 지식백과》/ 생태사진과 글: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일기를 쓰시듯 매일 좋은 활동을 하시네요☆
고봉산 정현욱 님
작가 두목도 그의 시 '양귀비의 과일' 처음 보는것이지만 두목이 풍류시인이라기 보다
시사 풍자에 더 능한 시인이었나 봐요
여지라는 과일이 어떤것인지 몰라 인터넷 뒤저보고 알았고 그 유명한 양귀비가 여지를 좋아했다는것, 양귀비를 소재로 한 시가 있다는것이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