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언하시며(2019년 9월 30일),
하느님 백성이 성경을 더욱더 경건하고 친숙하게 대하고,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이날을 봉헌하며 장엄하게 지내기를 권고하셨다.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은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해외 원조 주일’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92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전 세계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자 이 주일의 2차 헌금을
해외 원조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였다.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3주일이고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며,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한마음 한 몸이 되어,
질병과 기아, 전 지구적 기후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가진 것을
나누기로 다짐하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제1독서 <레위인들은 율법서를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 느헤미야기의 말씀입니다 8,2-4ㄱ.5-6.8-10
그 무렵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3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4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5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6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8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30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4; 4,14-21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4,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루카 복음서 서문에 나오는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은
상징적인 이름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모든 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적고 있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 모두 진실임을 선포하고자 한 것이지요.
사실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 여러 단계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실재가 있었지요.
다음으로는 사도들의 증언을 통한 복음 선포가 이어집니다.
그러다 점차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여러 단편적인 구두 전승을 모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만나고 체험한 예수님을 길이 전하기 위해서지요.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 복음서를 읽고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이 선언은 바로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예언된 메시아시요 구세주이심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표현입니다.
당신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이들과 눈먼 이들, 무엇인가에
붙잡혀 묶이고 억압받던 이들이 구원과 해방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그래서 많은 이가 주님의 은혜로움을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1독서를 보면,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레위인들에게서 하느님의 율법을 듣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그 율법이 참되다고 고백합니다.
모진 고생을 통하여 마음의 눈과 귀가 열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는 오직 구약과 신약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오늘도 겸손과 신뢰의 마음으로
복음을 읽고 묵상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