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迷惑의 나이 / 변해진
40세를 두고 흔히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한다. 공자가 남긴 “어떠한 일 즉 사물事物이나 세상사世上事에 미혹迷惑되지 않음”이라는 이 명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아직도 우리네 생활 속에서 하나의 도덕적 가치인 듯 책망처럼 때로는 위안처럼 거론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기원전 오백 년대 공자 시대와는 모든 면에서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세상은 시간 단위로 변화하고 배울 것은 싸여간다.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몇 초 안에 소통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를 함께 도모하고 있다. 또한, 생명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을 100세로 늘려놓았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이제 겨우 생의 절반도 살지 못한 나이 40세에 물려받아야 하는 불혹이라는 감투(?)는 정말이지 주체하기 힘든 유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청년기에는 풋익은 기개로 국가나 자신의 장래에 대한 순수한 이상을 불태우며 누가 뭐라든 콩깍지 덮어쓴 눈으로 이성을 향한 연정에 밤을 새운다. 30대에 이르러 책임감 있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한 가정의 충실한 일원으로 그 역할을 시작한다.
그리고 40대에야 비로소 변화에 대응하고 경쟁력 우위를 위해 달려야 하는, 진정한 자신들의 삶을 찾아 도전하는 시기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습처럼 살아온 삶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세상사에 관심과 조바심을 느끼며 ‘미혹’되는 시기도 이즈음일 것이다. 삶의 절반쯤 살고 난 후 마침내 다시 사춘기의 감성처럼 되살아나는 그러나 성숙함으로 다가서는 이 느낌,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아름다운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40대 초반의 나도 국내 ‘최초’라는 힘든 일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올림픽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변화를 가져왔다. 변화를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 나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의 흐름을 인정하고 그 흐름에 함께 올라타는 것, 그것은 성장의 과정이리라. 성장은 목표가 아니고 과정일 테니 그 과정은 죽는 날까지로 이어지는 도전일 것이다. 그러니 도전이야말로 삶의 활력소임엔 틀림이 없다.
그 무렵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방송 미디어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TV 방송은 ‘언제,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따라서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은 제각각이었고 시청자와도 동떨어져 있었다. 기업들은 자사의 TV 광고에 대한 효과와 광고비 산정의 합리성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근무하고 있던 N 본사에 ‘TV 시청행태 조사연구(tv audience measurement research(시청률)’ 도입을 제안했다. 그 제안은 시의적절했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 N 본사는 국내기업이 49% 투자 참여하는 조인트벤처를 창업하기로 하고 총괄책임을 내게 맡겼다. N사는 당시 세계최대 마케팅리서치 전문기업으로 거의 유일하게 이 분야에 기술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시청률이란 ‘언제,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가’에 대한 정보다. 1분 단위로 시청자의 시청행태(결과)가 분석되는 이 자료는 TV 프로그램의 효율적 편성과 제작을 위한 지침이며 TV 광고비 산정의 기본이 된다. 후기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에게 ‘장 보드리야르(J.Baudrillard, 사회학자이며 미디어 이론가)’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이 말해주듯 원본 없는 이미지 광고(광고를 통해서 창조된 상품 이미지)는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광고효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사회 문화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변화는 시련이 동반되었다. 시청률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우리나라 기업환경은 자료에 대한 활용은커녕 이해조차 하지 못하였다. 또한, 언론은 언론대로 대학의 신방과 교수들은 교수대로 자료에 대한 부정적 비판을 쏟아냈다. 물론 그들의 비판은 자료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것이었다. 원활한 자료 활용이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시청률이라는 빅데이터에 대한 교육으로 혼신의 힘을 다 써야 했다. 그때 나의 맑은 혼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 드디어 우리나라에 시청률 자료가 보급되었고 방송 프로그램의 효율적 편성과 제작에 질적 향상은 물론 TV 광고비에 대한 과학적 산출이 가능해졌다. 나의 40대에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었다.
국내 ‘최초’라는 사명감과 한 회사 CEO로서의 막대한 책임감은 언제라도 밤을 지새우게 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은 그것을 해결하고 결과를 얻고 싶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심리학자는 도전은 창조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단계적 욕망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내게 찾아온 모든 어려움은 성장을 위한 도전인 듯했다.
성장은 끊임없는 성찰과 학습을 통하여 자기완성으로 도달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선물같이 찾아온 40대 성장에너지를 ‘불혹’이라는 반갑지 않은 감투 속으로 넣어두어야만 했다면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억울함으로 삶에 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고 어찌 급변하는 이 시대와 성장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 나이 40은, 분명 불혹不惑이 아닌 미혹迷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