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고맙다
수필이 고맙다. 수필로 인연한 사람들이 고맙다.
내가 사랑하는 수필로 좋은 글을 남기지도 못하고, 빛나는 이름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속에 흐르고 있는 문학의 피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시에 관심을 가지고 교과서 읽기보다는 시집 읽기를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시를 열심히 쓰면서 문예반장으로 활동도 하고, 문학 동아리 활동도 관심을 빠뜨리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다.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시는 나에게서 시들해져 갔다. 모든 걸 비유와 상징으로 응축해야 하는 시에는 별 재주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글에 대한 향수는 가시지 않았던지, 몇몇 지면에 잡문을 가끔씩 내밀곤 했었다. 상사며 상부 기관으로부터 글 사역을 자주 받으며 그런 일로 출장도 많이 다니곤 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있던 어느 날 「영남일보」로부터 교단 칼럼을 맡아 달라는 청탁이 왔다. 근 두 해 동안 대구의 교사 한 사람과 번갈아 가며 썼다. 그러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수필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칼럼이 수필과 인연을 맺어 주었다고 할까.
어느 교육 월간지에서 문예 작품 현상 모집을 하는데 응모했다. 내 수필이 심사위원장인 박연구 수필가의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의 시원한 맛’ 같다는 평과 함께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이어서 박연구 수필가가 주간으로 발행하던 『수필공원』에 추천받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수필가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써 온 지가 근 삼십 년이 되었다.
수필과 인연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가. 그런 인연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눈에 뜨일 글, 지가를 높여 줄 책 같을 걸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수는 안 해도 노래는 안 부르고 못 살겠더라는 어느 가수의 고백처럼, 수필가는 안 해도 수필은 안 쓰고 못 배기게 된 나의 삶을 돌아보며 깊은 감회에 잠기곤 한다.
독자가 많이 읽어 주면 좋은 일이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지만, 설령 읽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고 쓴다. 내 글이 필요하다고 청탁해 오면 기꺼이 응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도 하지만, 내 글을 찾는 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 카페며 블로그 같은 온라인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해 있는가. 그런 매체에서 『이일배의 수필 사랑』은 나의 집필실이기도 하고 독자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쓰기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 번다했던 사회생활도 끝을 내고, 지금은 십수 년째 은퇴 거사로 살고 있다. 직업 사회에서는 은퇴했지만, 내 문학 생활은 더욱 왕성한 현역 거사로 살고 있음에 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수필을 쓰고 있으면 슬픔도 기쁨이 되고, 괴로움도 즐거움이 된다. 수필이 무엇인가. ‘삶의 고백’이 아니던가. 삶을 털어내는 사이에 내 심중이 정화되고, 그 정화가 생애의 동력이 되고 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산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어쩌다 보니 사궁지수四窮之首가 되고 말았다. 모두 내 탓이오, 내 운명의 소치겠지만, 때로는 외롭고 서러운 상념이 안겨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 있기에 그런 거라고 스스로 쓰다듬어 보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잘 이겨내지 못할 때가 없지 않다. 그때 나는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는다. 광기에 찬 듯 쏟아낸다. 그 마음을 적어도 좋고, 다른 상념을 풀어나가도 좋다. 쓴다는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게 맑아지고 밝아진다.
수필이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일은 또 있다. 매주 한 번씩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다. 어느 도서관에서 열어준 평생교육 수필창작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이 왜 그리 좋고, 어찌 그리 많은 정이 묻어나는가. 수필 이야기는 문장 이야기만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풀어내는 글을 읽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사이에 서로 더할 나위 없는 벗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인가.
자기 글을 함께 읽는 날이면 무어라도 들고 안고 와 함께 나누는 마음은 나만의 기쁨과 즐거움이 아닌 것 같다. 한 주일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서로 그리운 사람들이 된다. 한 주일을 그렇게 기다리며, 미리 보내준 함께 공부할 글을 읽고, 공부한 후에 보내오는 글을 다시 읽어 함께 볼 매체에 올려 공유하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운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쉼 없이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수필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수필에 깊어지는 흠모의 마음이 수필은 나의 친구요, 애인이요, 아내라 해도 빈말이 될 수 없고, 삶의 지팡이요, 기둥이요, 지붕이라 해도 헛말이 아니게 한다. 잠 못 이루는 어느 밤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다 쓰고 나면 달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수필이 나를 토닥여 줄 것이다.
수필이 고맙다. 수필로 인연한 사람들이 고맙다. ♣(2024. 11. 26. 04:17)
첫댓글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어느 때부터 귀한 선생님 글에서 애틋한 마음 찡한 가슴 울림으로 공감하며 감사히 살펴 새겨봅니다만, 상념에 위안할 수 없음이 애석할 뿐입니다. 선생님! “저마다 다른 삶을 풀어내는 글을 읽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사이에 서로 더할 나위 없는 벗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인가.” 이 글 속에 함께 있음에 저를 더없이 고맙고, 으쓱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부디 강녕하게 지내십시오.
늘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에
저에게는 큰 힘이요. 아늑한 위안입니다.
오늘도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달려갑니다.
모두들 반가운 마음으로 뵙겠습니다~!!
수필에 고맙다는 선생님 글,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네요.
금요일이면 함께 하는 훈훈하고 유익한 시간이 늘 기대되고 즐겁습니다.
예, 저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 삶을 지탱하는데
수필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수필이 있는 금요알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님을 비롯하 좋은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