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영화의 유사성은 허구의 이야기 구조를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으로 전달한다는 공통점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러나 두 장르 사이의 차이성도 크다. 시공간이 제한되어 있는 연극 무대에 비해 영화의 카메라는 훨씬 자유롭게 대상에 접근한다. 우리가 연극 무대에서 보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프레임의 롱 쇼트 크기지만,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대상에 밀착하는 클로즈업 쇼트부터 다양한 프레임의 크기로 대상을 표현할 수 있다. 또 연극 무대가 공간적 제약을 받는 데 비해서 카메라는 무제한으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
영화 발생 초창기에 활약했던 배우들의 상당수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 경험을 한 연극배우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영화 장르만의 개성적 기법이 발전되자 연극과 영화는 분리되기 시작했다. 국내 대학에서도 예전에는 연극영화과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모집하다가 최근에는 연극과와 영화과로 분리하여 모집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연극과 영화는 총론에서는 비슷하지만 각론에서는 매우 다르다.
최근 대학로 힛트 연극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도 차범석 원작의 [산불]이나 강우석 감독의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처럼 대학로에서 이미 연극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대학로와 충무로를 잇는 커넥션은 매우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연극의 대표 연출가인 이윤택의 [오구]가 역시 이윤택 연출로 지난 해 영화화되었지만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고, 최근에는 장진 각본 연출의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가 각각 박광현 감독과 장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개봉되었다. 또 [이]라는 제목으로 대학로에서 공연되었던 작품이 [왕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촬영 중에 있고, 하일지 원작을 박광정이 연출한 연극 [진술] 역시 문성근 주연 박광정 감독으로 오래 전부터 영화화 계획 중이다.
그러나 대학로-충무로를 잇는 연결고리의 핵심은 장진이다. 장진은 [기막힌 사내들]이라는 영화로 데뷔한 이후, [간첩 리철진][킬러들의 수다][아는 여자]로 이어지는 행보를 보이면서 대학로에서 형성된 자신의 사단을 적극 활용해서 새로운 영화집단을 만들어냈다. 스텝 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장진 사단의 핵심 멤버들은,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관객들과 직접 만난 현장성으로 무장된 감각을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진은 지금까지는 자신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데 비해, 올해는 자신의 대학로 힛트 연극들을 연이어 영화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각본 연출로 연극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지만 연출은 장진 사단의 종합선물셋트 [묻지마 패밀리]에서 단편 [내 나이키]를 연출했던 박광현 감독에게 맡기고 자신은 제작자로 참여한 [웰컴 투 동막골]과, 자신이 직접 감독한 [박수칠 때 떠나라]가 한 주 간격으로 8월 극장가에 나란히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미스테리 수사극이다. 특급호텔 1207호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미모의 카피라이터 정유정의 죽음을 둘러싸고, 살인사건 용의자를 붙잡아 심문하는 과정이 영화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장진식 화법은 단순하게 기승전결식으로 서사적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여기서도 대상을 비틀고 뒤집으며 장르의 해체, 장르의 전복을 시도한다.
영화는 [심문][증언][전설][스타일][물고기][굿] 등등의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연극으로 보자면 일종의 막간 구실을 한다. 영화 초반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호텔 부근에서 붙잡힌 용의자 김영훈(신하균 분)과 그를 심문하는 최연기 검사(차승원 분)의 화려한 연기 대결이다. 김영훈은 호텔 CCTV를 통해 휘발유통을 들고 1207호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장 유력한 용의자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러나 김영훈은 자신은 정유정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녀를 불에 태워 죽이고 싶어서 휘발유통을 들고 들어갔지만 자신이 들어갔을 때 이미 그녀는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된 조사는 그러나 김영훈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새로운 용의자들이 등장한다. 1207호실 옆방에 애인과 함께 투숙한 한무숙, 그녀는 정유정의 애인이었으며 사고로 숨진 중견기업체 CEO의 한동구의 딸이다. 정유정을 죽일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 정유정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일본인 부부, 그리고 정유정의 방에 룸서비스를 했던 호텔 벨보이, 또 지배인 등이 주변 용의선상에 떠오른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수사극의 기본인 범인은 누구인가? 왜 죽였는가? 어떻게 죽였는가? 라는 고전적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그러나 장진식 화법은, 이러한 고전적 장치를 유지한 채 이것들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사와 방송의 결합이다. 이미 [트루먼쇼]를 통해 개인의 사적 영역이 미디어를 통해서 흥밋거리로 공적 영역화 되는 것을 경험한 우리들에게 이것은 더 이상 놀라운 장치는 아니다.
그러나 생방송 수사쇼라는 독특한 설정은 사건을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연기 검사가 김영훈을 심문하는 장면은 한쪽에서만 보이게 되어 있는 조사실 윈도우 저편의 수사국장, 방송국장 등에게도 보이지만, 동시에 전파를 타고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보이고 있고, 그것을 우리 즉 관객들은 또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몇 겹으로 둘러쳐진 들여다본다는 행위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파헤치는 것 못지않게, 그 진실을 알아야 하는 당위성을 확인시켜 준다. 진실 그 자체와 객관적 거리, 브레히트식으로 말하자면 서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삶을 성찰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정유정의 죽음을 둘러싸고 각각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현장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결국, 이 사회의 탐욕스러운 인과관계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장진은, 이렇게 겹겹이 들여다보는 장치를 채택했고 그것은 성공했다.
그러나 [박수칠 때 떠나라]의 의문점도 있다. 장진은 [아는 여자]부터 대학로식 화법에서 충무로식 화법으로 적응하는 데 성공한 연출을 보여주었다.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부터 그는 뮤지컬이나 연극 양식의 독특한 장점을 영화화 접목시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또 반 박자씩 어긋나는 장진식 유머는 타이밍을 절묘하게 맞추어야 하는 영화식 유머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연극 연출이나 연기와 영화 연출과 연기는 다르다. 관객과의 무언의 약속에 따라 어느 정도의 과정성과 전형성을 갖는 연극 연기는, 동일화를 통해 스크린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사실주의적 영화 연기와는 거리가 있다. 연출 역시 제한된 무대 공간에서 힘의 강약과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연극과, 그렇지 않은 영화와는 다르다.
[박수 칠 때 떠나라]의 의문점은, 생방송 수사쇼라는 독특한 장치가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그 목적이 상실되어 있다는 것이다. 초반 수사쇼의 이미지는 강렬하게 관객들의 머리 속에 주입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인 방송 시청자에 대한 배려는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관객의 존재는 영화 속의 시청자의 존재일 텐데 들여다 본다는 객관적 장치는 기교적 수사를 넘어 본질적 장치로 이어지지 못한다. 사건을 에워싼 여러 겹의 지켜보기식 장치가 무너지는 까닭이다.
또, 사건이 종결된 이후 남는 의문점들도 많다. 정유정의 유산은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용의자 중 한 사람인 김영훈과, 그리고 그의 살해동기와 어떤 함수관계를 갖는가? 또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였던 빈 종이, 사건 현장에서 최연기 검사가 확보했던 그 종이가 무엇인지 그렇게 오래 지나어샤 깨달을 정도로 최연기 검사가 무능했나, 이런 일차적인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영화는 서둘러 종결된다. 화려한 극적 장치와 힘있는 극적 전개, 그리고 재미있는 세기는 있지만 부족한 허점 또한 잠복해 있는 영화가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