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문장이 그다지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카뮈의 문체가 원래 그러한지......
하지만 여러 번역서를 봐도 마찬가지더군요. 내용 만큼이나
나르하게 다가오는 문체.
저는 이 책을 읽고 우선 프란즈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더군요.
'태양'이라는 장치가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이상한 벌레'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봤습니다. 벌레는 주제의 극대화를 형상화하기 위한
장치였죠.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고 나른한 일상이 나열됩니다.
그는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슬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뫼르소는 생각합니다.
생과 죽음.
인간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결국 죽음이라는 필연 앞에 선 모순적인 존재라고 카뮈는 봤죠.
인생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뫼르소는 그렇게 무미건조한 일상을 영위합
니다. 그런데, 그런데, 해변가에서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입니다.
"태양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아랍인을 죽인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태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니까 태양(대지를 살아숨쉬게 하며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 인식? 을 하게 '자기 의지'로 상대방을 쏘아 죽인 거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 2부 재판과정에
나옵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계획적인 살인이라는 허물을 쓰고 사형을 언도받습니다. 그게 바로 이방인인거죠. 이것은 인생을 압축해서 법정에서 구현한 게 아닌가 저는 생각했습니다.
1부에서의 전반적인 줄거리와 2부에서의 줄거리는 완전 다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치한다고 봅니다.
결국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생의 의지를 느끼고 희망을 봅니다.
첫댓글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실존주의 문학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고 이 작품은 논리적인 일관성이 결여된 뫼르소의 행동을 통해 인생의 부조리를 파헤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시대의 장 폴 사르트르의 '벽' 이라는 작품도 비슷한 면이 있는것 같아요.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것, 인간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요.
첫댓글 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실존주의 문학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고 이 작품은 논리적인 일관성이 결여된 뫼르소의 행동을 통해 인생의 부조리를 파헤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시대의 장 폴 사르트르의 '벽' 이라는 작품도 비슷한 면이 있는것 같아요.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것, 인간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요.
행복할땐 느끼지 못한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