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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8년 갑오년(甲午年) 정월 성지순례
서울 잠실(蠶室) 불광사(佛光寺)를 찾아서 ②
-대웅전과 광덕 대종사(光德大宗師)-
지하 1층에서 공양을 마치고 이제는 층층으로 올라가 전각을 둘러보고자 하였습니다. 여기는 지상 1층 현관입니다.
1층 현관에 전시된 불광사 모형도
만불전에 모실 불상. 만불봉안 동참불사 모연 중
무엇인가 관심집중 ^^
불광사 시설안내
우리는 1층부터 비상계단을 따라 살펴보았으나 2층은 요사채라 통과하고, 3층은 만불전인 데 공사 중이고, 4층은 불광선원예정이라 역시 공사 중이었습니다.
불광사 대웅전 참고사진입니다.
5층의 한옥 대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대웅전 모습을 담을 길 없어 사진을 참고 삼아 올려 보았습니다. 이 대웅전은 불국사를 원형으로건축한 것입니 다.
대웅전의 옆모습
대웅전 왼쪽의 건물
대웅전 우측의 건물
대웅전 편액
대웅전에는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보처 지장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관세음보살
항마촉지인을 하신 본존 석가모니불
보병(寶甁)을 들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보병에는 감로수(甘露水)가 가득합니다. 이 감로수는 중생들의 열뇌(熱惱)를 식혀 줍니다.
명주(明珠)를 들고 계신 지장보살님
이 명주를 보니 이런 게송이 생각납니다.
掌上明珠一顆寒(장상명주일과한) 손바닥 위 마니구슬 밝은 빛이 영롱한데 自然隨色辨來端(자연수색변래단) 인연따라 오는 인연 자연히 밝혀 주네. 幾廻提起親分付(기회제기친분부) 몇 번이고 들어 보여 친히 일러 주시건만 暗室兒孫向外看(암실아손향외간) 지옥의 중생들은 본체만체 하는도다.
대웅전 불단 옆에 불광사 창건주 광덕스님 진영(眞影)이 모셔져 있습니다.
진영이 유리액자로 모셔져 있어서 사진을 찍으니 빛이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금하당(金河堂) 광덕대선사(光德大禪師) 진영(眞影)
금하당(金河堂) 광덕대선사(光德大禪師) (1927~1999)
불교 대중화ㆍ현대화 선각자
금하당 광덕 스님은 불광법회 법주와 월간 불광 발행인, 대각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대 중교화와 문서포교에 지대한 역할을 한 선지식이었습니다. 용성 - 동산으로 이어지는 선 맥을 계승했고, 특히 불광법회를 통해 한국불교의 현대화ㆍ대중화에 새로운 장을 연 선각 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스님은 1927년 음력 3월 3일(양 4.4)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내리(일명 삭은절, 사근동) 제 주 고씨 문중이 대대로 모여 사는 마을에서 고준학(高準學) 모친 김동낭(金東娘)의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 났으며 속명은 고병완(高秉完)입니다.
유교적 가풍에서 자란 광덕 스님은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고 총명하여 공부를 잘했고, 노 래와 작문에 뛰어난 재질을 보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장차 큰 일을 할 재목이라는 기대를 받았습니다.
1947년 한국대학(현 서경대학의 전신)에 진학하였으며, 그후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건강 마저 해치게 된 스님은 당시 석학이었던 서울대 박종홍 교수의 추천으로 휴식차 3개월을 기한으로 범어사에 갔다가 동산 대종사와 인연이 돼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1950년, 부산 범어사에 입산 동산(東山) 선사와의 대면으로 가치관, 세계관, 사상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커다란 전환의 계기를 맞이. 이후 범어사 선방(청풍당), 관음전ㆍ지장전ㆍ미 륵암ㆍ금강암 정진, 함안 장춘사, 죽도, 삼천포 등지에서 수행정진을 계속하였습니다. 1952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였고, 1956년에는 동산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를 수지하였습니다.
1956년에는 대각사 주지 소천 스님의 각사상 법회개최 이후 총재 청담 스님, 명예총재 성 철 스님과 함께 대각회를 조직하여 인간의 청정본연의 각성을 깨닫게 하는 데 일신을 바쳤 습니다. 또 가정과 사회와 세계에 평화번영을 이루고 나아가 필경 성불하는 대도라 할 보 현행원 사상을 몸소 실천하는 보현행자로서 각행운동을 펼쳤습니다.
동하며 종헌종법 제정 등 종무행정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총무원의 소임을 살면서 도 언제나 불교가 젊어져야 한다는 소신 아래 젊은 불자, 특히 대학생 불자들에게 많은 관 심을 갖고 직접 지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승가대학의 필요성을 절감해 중앙승가대학 설 립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동국학원 이사를 맡아 학원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일찍이 문서포교 및 법회 활성화의 중요성을 인식, 1974년 도심 속에서 불광법회를 창립 하고, 같은 해 11월 월간 〈불광〉을 창간하였습니다.
속에 쇠퇴일로에 있던 불교음악을 융성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1982년 10월 24일 송파구 석촌동 160 - 1번지에 불광사 준공하여 불교의 현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바탕으로한 마하반야바라밀 운동인 '불광운동'을 펼치셨습니다.
1987년 3월 1일 불광유치원이 개원되어 어린이의 요람이되었으며, 불광법회의 근간을 이 루는 법등조직이 광범하게 확산되어 수많은 불자의 귀의처가 되었으며, 1994년 불광원을 개원하여 불교 인재 양성을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적인 규율과 종단의 규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도 철저한 개혁가로서 선각자적인 포교활동 을 펼쳤으니, 말 그대로 스님은 도심포교의 효시이자 청년ㆍ대학생 포교의 선구자로, 한국 불교 현대화에 큰 거목이었습니다.
스님은 용성 대종사의 선맥을 이어받아 선이야 말로 진리생명을 개현하는 최고의 수행이 라는 신념으로 용맹정진을 거듭하시면서도 좌복 위에 결박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대 중 속에서 활선을 행하는 참선지식의 면모를 입멸 순간까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잃지 않 았습니다.
1999년 2월 27일 세수 72세, 법랍 49세로 범어사에서 다음과 같은 열반송(涅槃頌)을 남기 고 입적하셨습니다.
울려서 법계(法界)를 진동하여 철위산(鐵圍山)이 밝아지고 잠잠해서 겁전(劫前) 봄 소식이 겁후(劫後)에 찬란해라. 일찍이 형상(形相)으로 몰형상(沒形相)을 떨쳤으니 금정산(金井山)이 당당하여 그의 소리 영원하리.
저서로는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삶의 빛을 찾아』『행복의 법칙』『메아리 없는 골짜기』『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반야심경 강의』『반야심경 강의』『보현행원 품 강의』『육조단경』『선관책진』 등을 비롯하여 대중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주옥같은 역저서들이 20여 종 있습니다.
신중단(神衆壇) 모습
신중단에 탱화 등이 모셔져 있지 않고 번(幡)이 걸려 있습니다. 번(幡)은 부처님과 보살의 위덕을 나타내고 도량을 장엄 공양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신중단의 번(幡) 모습
나무 금강회상 불보살 南無 金剛會上 佛菩薩 나무 도리회상 성현중 南無 忉利會上 聖賢衆 나무 옹호회상 영기등중 南無 擁護會上 靈祇等衆
영단(靈壇)의 모습
영단에도 번(幡)이 걸려 있습니다.
천도재 등 의식을 할 때 영가를 천도하기 위하여 거불(擧佛)의식을 행하는데 이때 아미타 불과 관음세지 양대보살과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을 부릅니다. 이때 사용하는 번을 극락으로 인도한다 하여 인로왕번(引路王幡)이라 합니다.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 南無 極樂導師 阿彌陀佛 나무 유명교주 지장보살 南無 幽冥敎主 地藏菩薩 나무 접인망령 대성인로왕보살마하살 南無 接引亡靈 大聖引路王菩薩摩訶薩
그런데 여기는 나무 관음세지 양대보살(南無 觀音勢至 兩大菩薩) 대신, 나무 유명교주 지 장보살(南無 幽冥敎主 地藏菩薩) 번(幡)을 걸었네요.
여기에 신중단이나 영단에 번을 건 것은 아직 신중탱화나 감로탱화 등이 제작되지 않아서 임시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불광사순례 기념사진
뒤로부터 염화님, 백우, 화광님, 도안님, 묘법님 앞줄에 황심행님, 청안님, 덕명님, 미소님, 대각화님입니다.
5층에서 바라본 모습. 롯데월드가 보입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
불광사를 죽 둘러보는 동안 시간은 흘러 봉은사로 향해야 할 시점입니다. 오랜만에 법우 님들과 법회에 참석하고 역사를 더듬고 전각을 살피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불광사가 강남에서 많은 시민들의 귀의처가 되고 마하반야바라밀행자로 사회의 빛이 되기를 합장하면서 오후 1시 25분에 걸음을 봉은사로 옮기며 물러났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 다음은 강남 수도산 봉은사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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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_()_
불광사에서 '마하반야바라밀'로 정근하지요. 마하반야바라밀 _()_
마하반야바라밀_()_
불광사를 순례하시고 느끼신 바가 없으신가요 _()_
불광사와 광덕스님에 대한 세세한 사진글 잘 봤습니다. _()_
불광사의 역사는 곧 광덕스님의 역사였죠. 위대한 분이 한 분 계시면 그 법향은 영원토록 은은합니다. _()_
순례를 하시면 각자 느끼신 바를 적어 보시고 순례에 있어 건의할 바가 있으면 적어 보시면 댓글이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_()_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참을 못하신 분들도 이 후기를 읽으시면 무엇이 어떻다 저렇다 댓글을 주시면 또한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이 카페의 소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긴 글 쓰는 사람도 있는데 짧은 글 하나 못 쓸소냐 하고 말입니다.
광덕 큰스님 하면 화엄경 보현행원품. 찬불가 보현행원 작사. 불광 월간지. 수많은 업적중 최고는 도심 포교의 선구자 이셨지요.
그리고 1970년 초반 종로 대각사에 계실때 동국대 불교학과 학생들 장학사업의 모체가 군승제도입, 1기생 권오현 법사 이지행법사
김덕수법사등 이지요. 그때가 묘법이 중학생시절 처음으로 어머니 따라서 대각사 불교 학생회 모임 갔다가 처음으로 큰스님
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고등학교시절 보현행원품 2년 동안 한달에 한번 법문 듣고 동산(東山)이라는 법명도 받았지요.
큰스님 생각이 새록새록 나내요....나무묘법연화경()()()
묘법님은 광덕 스님과 일찍이 인연이 깊으셨네요. 군법사 1기생 권오현법사, 이지행법사 대원정사
_()_
상임법사를 지내셨고, 김덕수법사는 가끔 대원정사에서 법문하셨지요. 또 권오성법사도 대원정사를
활성화 시키던 중 입적하셨는데 알고보면 그것도 직접 간접으로 큰스님의 영향이 있어던 것이군요.
동산은 일찍이 육조 혜능대사의 스승인 홍인대사를 이름하고 나아가 한국불교의 큰 기둥이신 용성-
동산-성철로 이어지는데, 한편으로는 동산-광덕으로 이어지는 법계가 있는 것이니 東山이란 법명을
크게 밝히시기 바랍니다.
생생합니다.
우리 이런 공부는 자주해야합니다요 _()_
이번 불광사 순례로 불광사에 대한 역사, 광덕스님의 향훈을 맡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_()_
이번에 무위로 끝났으니 다음에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가 봅시다. _()_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이제야 들어왔습니다. 아직 전체적으로 마무리 공사가 안 된 상태 같습니다. _()_
불광사를 창건하신 광덕 스님의 행장을 읽어 보니 참으로 위대한 불교 대중화ㆍ현대화 선각자 스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도 크게 보입니다. 아직 단청이 안 된 상태이고 신중단이나 영단도 미완의 단계 같습니다.
신중단과 영단에 걸려 있는 것이 번이군요. 인로왕번 등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단체사진이 무척 발가 보입니다. 전에 없던 현수막이 돋보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바쁘신 모양입니다. 불광사 내부시설은 아직이더군요.았다고 합니다. 법당이 꽤 큽니다. _()_
이 참에 광덕 스님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올려 보았습니다.
대웅전은 불국사 대웅전을 모델로
단청은 나무가 바짝 마른 다음에 해야 하기에 더 있어야 할 듯합니다.
번은 원래 불보살님의 위덕을 표시하는 장엄용 깃발이지요. 불보살님 명호를 써서 불보살님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현수막이 있으니 참 보기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