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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토 포토 원문보기 글쓴이: 뭉게구름
1. 문화적 세계화로서의 사례- 한류가수 동방신기
현재 소속사와 갈등을 겪고 있는 한류가수 ‘동방신기’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해서 특히나 일본에서 그들의 인기는 욘사마(배용준)를 뛰어 넘을 정도이다.
아니, 이미 뛰어넘었다. 욘사마의 팬 연령층이 30-40대 중년여성이라면 동방신기는 중년여성들보다 인터넷이나 기타 매체에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10대와 상품구매능력이 있는 20대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발매하는 앨범과 수록곡은 일본의 최고 음악차트라고 할 수 있는 오리콘 차트에 항상 1위로 올라가고 일본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20대에게 가장 뜨고 있는 브랜드 랭킹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1,3,4,5위는 모두 가전제품이었지만 동방신기만이 유일한 ‘사람’으로서 2위를 차지했다.
또한 한국 남자가수로는 최초로 일본 최고의 연말 시상식인 '홍백 가합전’에도 출연하였으며 최고의 가수들만 설 수 있다는 도쿄돔에서의 공연을 모두 매진으로 성황리에 끝냈다.
현재 일본의 유행어가 신종 플루와 동방신기라고 할 정도라고 하니 이러한 사례들을 보았을 때 그들의 위치는 일본에서 거의 정상급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방신기의 소속사인 sm 엔터테이먼트는 90년대부터 hot나 신화와 같이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들을 일본으로 진출시켰지만 한국에서 누렸던 인기와 거둬들인 수입과 일본에서의 활동은 꽤나 큰 격차를 보였다.
가장 성공한 1세대 일본진출 가수로는 같은 소속사의 보아가 있는데 보아를 기점으로 일본으로 진출하는 한국가수들이 많아졌고 동방신기는 예전 일본진출 그룹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팬덤을 생성해 냈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일반인에게 그들의 이름을 물어보면 다섯 명의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든 타국의 문화를 수용하는데 있어서 처음부터 우호적인 것이 아니며 특히나 한국과 일본같이 과거에 역사적으로 얽힌 나라사이의 경우에 문화적 교류는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진출한 2005년은 과잉된 한류에 대한 반작용 감정으로 ‘혐 한류’가 일어나던 시기였고 이것은 한류 자체에 대한 혐오보다는 한류 붐이 일면서 한국정부가 국가의 이미지를 재고하고 문화산업을 통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자 이런 정책에 대한 감정적 폄하인 동시에 아직은 문화 상품의 전반적인 질이 우리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선진 문화콘텐츠에 대한 동경이었다.
이렇게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류에 대한 감정이 격양되고 있을 때 고국에서의 정상의 위치를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에게 일본인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작 본인들도 언제까지 일본에서 활동을 해야 하며 인기도 얻지 못하는데 앨범은 왜 계속 내야하는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잠실과 올림픽 체조경기장 같은 대규모공연만 하다가 무대과 관객석의 높이가 채 1mm도 차이가 나지 않는 장판이 깔린 곳에서 노래를 했다고 하니 그들이 성공이 처음부터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본에서 빨리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언어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는 음식문화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어떤 나라의 전통음식을 단순히 맛을 보고 좋으면 현지에서도 판매한다거나 자국의 음식과 결합시켜 새로운 음식으로 만드는 등 굉장히 쉽게 수용하고 혼합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해야만 전달이 되는 장르기 때문에 그들이 일본 내에서 한국가수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약 2년 만에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토크쇼를 비롯한 일본 방송프로그램에 출연 할 수 있게 되었고 tv출연은 10대 20대에 국한된 팬이 아니라 일본 대중들에게 그들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 일본에서의 성공이 왜 문화적 세계화인가?
그렇다면 일본에서 동방신기의 성공을 문화적 세계화로서 볼 수 있는가? 또한 그들이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흔히 빽이라고 하는 소속사의 힘인가 아니면 그들의 재능과 노력인가? 물론 두 가지 모두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의 대중문화, 즉 연예계 환경이라고 하겠다. 일본에는 일본 남자 아이돌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쟈니스‘라는 기획사가 있다. 이곳은 어린나이의 아이들,
특히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외모가 준수한 아이들을 골라 데뷔시키기 전까지 소속사에서 그들을 관리하며 자기 소속 가수들(선배가수)의 백댄서로 세운다거나 드라마의 단역 배우를 맡긴 다던가 이러한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인식시키고 그것을 통해 인기를 얻으면 가장 영향력 있는 아이들만을 모아 그룹으로 데뷔시킨다. (지금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일본 연예인 ’기무라 타쿠야‘가 속한 ’SMAP‘라는 그룹도 쟈니스 소속의 가수이다.) 쟈니스가 아이들을 뽑는 기준은 요즘 여성들이 열망하는 ’꽃미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렇게 얼굴로 뽑힌 아이들을 기획사에서는 아티스트보다는 그저 인기 많고 소속사에게 이윤을 안겨주는 방송인으로서 키우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이 긴 연습생 기간을 지나 가수로서 데뷔한다고 해도 가수로서의 기본적인 실력조차 갖춰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가수로서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쟈니스 출신’이라는 이름표만 달고 방송에 나오면 어느 정도 팬덤과 인기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노력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쟈니스라는 기획사가 일본 대중음악과 방송연예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쟈니스가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실력보다는 얼굴로 승부하는 남자 아이돌그룹들을 대거 배출시키면서 일본의 대중음악 문화는 획일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느 곡을 어떤 그룹이 부른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변함없는 장르의 노래와 자연스럽지 않는 미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 같아서 더욱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획일화된 일본 아이돌문화와 대중음악문화에 동방신기라는 한국가수가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물론 한국과 일본 사이의 아이돌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더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는 문화적 차이의 이점이 있다.
일단 일본 남자 아이돌이 쟈니스 소속의 아이들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인식되는 반면 동방신기를 비롯한 한국의 아이돌은 팀별로 나누어진다.
그 팀 안에서도 멤버간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기호에 따라 멤버를 선택해서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이 생성된다. 한 예로 ‘개인팬(멤버 중 한 명만을 좋아하는 것)’이 일본보다 한국에 더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일본 아이돌들에게 기대할 수 없었던 가창력 부분을 동방신기는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기획사인 SM의 연습생 훈련이 혹독한 것은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그들이 연습생일 때 기본적인 노래연습을 포함해 춤 연습과 외국어공부, 인사 연습 등 가수로서 갖춰야 할 것을 모두 배운다고 볼 수 있다. 가수로서 데뷔하기 위해서는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 만한 토탈 패키지(Total Package) 상품으로서 그들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쟈니스와 같이 SM이라는 거대한 기획사의 이름표를 달고 나오면 어느 정도 관심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한국 대중들의 잣대는 엄격하기 때문에 가창력과 댄스실력이 떨어지면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정말 가수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가창력과 유치원 율동 같은 댄스만 보던 일본인들에게 완벽한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동방신기의 실력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발라드를 부를 때뿐만 아니라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일본인들은 놀랐고 간단한 춤동작만을 구사하는 일본 아이돌들과는 달리 형식화된 안무와 복잡한 대형에 기반을 둔 한국 댄스그룹의 퍼포먼스에 문화적 충격을 느낀 것이다. 노래의 장르도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었기에 팬 층의 범위를 좀 더 넓힐 수 있었다. 일본의 아이돌과는 차별화되는 또 한 가지 한국의 아이돌문화는 멤버들간의 ‘숙소생활’이다. 한국가수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한국 가수들은 대부부분 같은 숙소에서 합숙생활을 한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가 연예인의 활동에서도 나타나는 셈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팀워크도 쌓아가고 팀워크가 쌓아지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게 된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숙소생활을 함께 한 동방신기의 모습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본인들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아이돌은 모든 일정이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고 사적인 문제로 서로 연락을 하거나 따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실제로 일본의 아침 방송프로그램에서 동방신기의 합숙 생활이 공개되었는데 같이 합숙하면서 가족과 같은 생활을 하는 그들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고 한국 아이돌의 ‘숙소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적이 있다.
노래와 퍼포먼스로 방송에서 인기를 얻은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국가수로서 일본음반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노래가 좋고 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K-POP수용자로서의 일본음악시장의 구조에 있다. 일본은 세계 제2위의 음악소비시장이지만 일본의 대중음악이 국외에서 일구는 매상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중음악을 자국 내에서만 소비할 뿐 해외로 발산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가장 많이 팔렸던(밀리언 셀러)앨범을 최대 28매 까지 낼 수 있는 풍부한 자국시장이 존재하고 음반이 한 번 히트 치면 경제적인 문제가 일시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동아시아의 음반시장에 진출한만한 동기가 희박해진다. 이와 같이 대중음악의 수출은 거의 제로상태인 일본이지만 외국의 대중음악을 수입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적극적이다. 국가별로 보면 영어권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일본인들이 구입하는 CD나 라디오 혹은 TV에서 내보내는 음악의 1/4이 서양대중음악이다. 보통 외국가수들이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은 대단위 콘서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본은 방송국 내 지정된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외국가수들의 라이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외국의 대중음악에 대한 일본인의 개방정도가 어느 정도 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라마다 언어와 인종이 다르듯이 문화를 전파하는 방법과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다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과거에는 서로간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했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나라간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실질적 국경은 존재하면서 문화적 국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 걸림돌은 디딤돌로 변해가고 있다. 문화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여건이나 나라의 환경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문화를 수용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인종에게 사랑받는 동방신기의 일본 성공은 문화적 세계화라고 볼 수 있다.
3. 한류를 지속화하기 위한 정책과 방안
2005년 한국의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일본에 ‘후유노 소나타’로 수출되면서 한국 드라마 열풍이 시작됐다.
이 드라마로 한류라는 소용돌이가 일본 반도를 휩쓸었고 드라마에 출연했던 준상역의 한국 배우 배용준은 일본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한국 드라마 한 편이 일본 대중문화계에 일으킨 파장은 대단했다.
겨울 연가에 이어서 가을 동화나 여름 향기 같은 한국의 로맨스 드라마는 계속해서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수출되는 드라마마다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드라마의 성공과 더불어 출연한 배우들의 인기 또한 날로 높아져 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한류라는 단어가 단지 드라마의 인기라는 단순한 말로서 압축될 우려가 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의 문화, 즉 한류가 몇몇 드라마와 배우들에 치중해 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에 불어 닥친 홍콩영화의 바람은 한국영화관을 독점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홍콩영화배우가 최고의 인기를 끄는 등 지금의 한류와 다를 바 없었다. 당시 홍콩 최고의 액션영화 배우였던 주윤발은 한국에서 음료광고를 찍는 등 실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홍콩영화의 바람은 채 10년도 가지 못하고 점점 사라져갔다. 아마 가장 큰 원인은 이런 홍콩영화의 바람이 몇몇 영화에 치중되고 한 배우에게 독점되었다는 것에 있다. 또한 예기치 못한 성공을 계속 이끌어나갈 만한 방안과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도 이유가 된다. 몇몇 작품에 치중되고 일부 톱스타들에게 국한된 한류라면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세계적인 팝 스타에서 아동 성추행범으로 전락한 故 마이클 잭슨이나 여직원과의 스캔들로 탄핵의 위기까지 몰렸던 빌 클린턴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보았을 때 한 국가의 문화산업 마케팅을 특정스타나 특정인물에게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시아국가 사이에서 한국의 문화산업 경쟁력이 커지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브랜드 마케팅과 문화상품을 수출하는데 있어서 더 없이 좋은 기회라 여겨진다. 이러한 여세를 계속 지속하고 채 10년도 가지 못한 홍콩문화의 수순을 밟지 않으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요구된다. 세계화가 유래 없이 빨리 퍼져나가는 지금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글로벌 문화세계시장에서 한류를 계속 지속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고국의 문화를 계속 전파하고 유지시키기 위해 어떤 정책을 쓰고 있을까? 먼저 한류 열풍의 주도자인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이미 일본은 일본문화(일류라고 하겠음)를 일본에서가 아닌 전 세계적인 일류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전범국가인 그들인 과거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어쩌면 일류보다 한류가 더 유행하는 것도 전범국가인 일본의 문화를 대놓고 우상화 할 수 없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그래서 일본은 더욱 자신들의 문화를 포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대전 이후로 실추된 자신들의 국가 이미지를 스시(초밥)과 가부키문화를 대표 아이콘으로 설정하여 전쟁으로 인해 하락한 이미지를 다시 상승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또한 자동차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 혼다나 도요타같은 브랜드를 일본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시장에 수출하였고 전자제품의 소니나 닛산이라는 일본 브랜드를 전 세계인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동차나 전자제품의 경우는 일본에게 경제적인 이득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제적인 이득도 가져왔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으로 이미지를 회복한 일본의 국가 이미지는 스시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불고기를 먹는 장면은 볼 수 없지만 일식집에서 스시를 먹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친구들에게 주말에 스테이크를 먹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미국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주말에 부모님과 스시를 먹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외국인들에게 스시의 이미지는 고급음식이라는 이미지로 지정되어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음식문화가 외국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파된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한류의 경우를 보면 2005년 겨울연가를 기점으로 막힌 수도관을 뚫듯 한꺼번에 시작되었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국가적 이미지를 치켜세우기 위해 과거부터 조금씩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폭탄과 같이 한 번에 터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류탄과 같이 열어두면 조금씩 그 곳에 퍼지는 전략을 쓴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조용한 문화 침투 정책으로 인해 외국에는 혐 한류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조용히 다른 나라의 문화에 침투해 좋은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는 일본의 문화적 마케팅은 우리가 한류를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본보기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은 동양문화권인 일본이 아니라 서구나라들은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데 어떠한 장점이 있으며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일단 그들은 ‘할리우드’라는 미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성공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반이 거의 미국영화이고 높은 판매율을 자랑하는 DVD도 대부분 미국영화이다. 과거에 월드 디즈니사는 DVD를 발매할 때 ‘Lion King’의 극장 개봉 후 비디오 발매까지 3년간이나 시차를 두고 전략적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었다. 즉, 3년이라는 시차를 두어 영화를 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Lion King’의 비디오를 최대한 노출시키기 위하여 일반적이지 않은 배급계획을 실행했던 것이다. 이는 소위 ‘Hold Back System(미국에서는 Limited Roll Out이라고도 함)’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주로 영화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Hold Back System이란 상영관, 비디오/DVD시장, 유료채널방송, 케이블TV, 네트워크TV, 지역방송사 등을 통해 시계열로 소비자에게 노출시킴으로서 콘텐츠가 만들어 내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월트 디즈니가 90년대에 시행했던 ‘최대한 많은 시간차의 발매 전략’과는 반대로 요즘은 DVD 발매 시점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원인은 대략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째는 확대되고 있는 DVD시장에 있다. 비디오와는 달리 소장가치가 높은 DVD가 인기를 끌면서 할리우드의 메이저사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자사 콘텐츠의 인기가 시들기 전에 DVD들을 출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봉 후 많은 시간차를 두면 불법복제의 위험에 노출되고 제작사의 수입이 감소되는데 있다. 2억 8천만이라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엔터테이먼트가 유럽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아시아의 두 배를 넘는 시장을 차지하는 것은 위와 같이 변화하는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치밀하고 체계적인 기업들의 비즈니스 전략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엔터테이먼트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투자가 끊이지 않고 거대한 메이저사들이 존속할 수 있는 이유로 미국문화산업 투자 시스템에 몇 가지 안정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많은 영화들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의해 제작비가 조달 되는데 영화를 만들려는 스튜디오가 제한된 파트너십’이란 단일 프로젝트만을 위한 법인을 세운 뒤 일련의 사업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A라는 스튜디오가 1억불을 들여 영화를 제작하려고 할 때 B라는 임시 법인을 만들고 B는 자금 유치를 비롯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영화 한편이 실패하였을 때 B라는 한정 법인과 일반 투자자가 손실을 입게 되고 상당부분의 손실은 배급사가 앉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애초에 영화를 기획하고 추진하였던 A라는 스튜디오와 은행에는 손실의 위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할 경우 A가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직접 투자에 비하여 상당히 한계가 있다는 점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특히 음반 사업에서 두드러지는데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음반이 발매되어 수익을 내는 경우는 10% 미만이다. 하지만 이 10% 미만의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한 음반이 성공할 경우 그 수익이 제작비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이르기 때문에 음반제작사는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합리적인 투자 시스템도 인해 고위험, 고수익 산업이라고 불리는 엔터테이먼트 계에서 미국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문화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까지 뻗어나가는 것이 어찌 보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류로 선전하는 한국의 문화가 이제 제국주의의 속국이 아닌 문화주권국가로서 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한류의 성공을 감탄만 하고 앉아있다가는 언제 주도권을 뺏길지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에 투자를 하고 기업은 한국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잘 분석하고 확보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소비하는 주체인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캠페인 사업도 요구되는 바이다.
4. 한류는 한국의 고유문화인가? 한국안의 한류와 같은 사례
동방신기가 일본과 아시아에 한국의 음악문화를 알리는데 공헌을 했다면 반대로 우리나라에는 동방신기와 같은 음악적 파급효과를 가져온 가수는 없었을까? 앞서도 설명하였듯이 일본은 외국가수들이 자국의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익숙하나 한국과 같은 경우에는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외국의 유명가수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티켓 한 장당 대략 10만 원 정도의 비싼 돈을 주고 개인 콘서트에나 가야 외국 뮤지션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가수들이 동방신기처럼 다른 나라에서 성공할 만한 기본적인 밑거름이 준비되어있지도 않는 환경이고 만약 외국 뮤지션들이 한국에 진출하였다고 해도 매니아층들에게만 한정적으로 인기를 얻을 뿐 일반 대중들에게 까지 알려지지는 않고있다. 또한 앨범시장구조에 있어서도 일본과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음악적 부분에 있어서 한류와 같은 상황을 기대할 수 없다. 앨범 판매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요새 인기를 끄는 아이돌의 앨범이 아닌 이상 큰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고 아이돌의 입지가 커질수록 노래는 좋으나 대중성이 부족한 인디음악 같은 경우는 더욱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헤비메탈이나 락음악이 한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Queen이나 Metalica같은 외국 뮤지션들이 인기를 끌었으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노래장르의 선호도도 달라져 요새는 그야말로 매니아 층만 즐기는 음악이 되어버렸다.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시장에서는 아직까지 락 음악이 많이 먹히는 추세인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쪽 나라들은 이런 락 장르보다는 미디움템포의 발라드풍의 노래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한 때 인기를 끌었던 락 가수들이 전설로만 남게 되고 세계화로 인해 문화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들 다시 한국에서 공연하는 횟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또한 한국의 앨범시장 규모는 일본에 비해 턱없이 작고 클릭 한 번이면 누구나 손쉽게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는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고 있어서 한국에서 앨범을 발매해봤자 거두는 수익이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도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동방신기가 일본 음악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만큼 일본 음반업계가 해외음악에 대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고 일본인들도 다운로드 보다는 CD로 음악을 듣는 등 문화를 수용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한류와 같은 음악적 성공을 한국에서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 해외음악을 소비할 만한 앨범시장도 형성되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을 수용하는 주체인 사람들마저 CD보다는 MP3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한류와 같은 사례를 찾을 수는 없다.
5. 동방신기의 일본성공을 단순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HOT나 신화같이 한국 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해서 해외시장 진출에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동방신기 또한 모험 반 시험 반의 목적으로 일본으로 진출했고 기대치보다 성공률이 너무 높아서 이제는 기획사에서 국내활동보다 일본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 위 주의 활동 스케줄을 잡고 있다.
일본에서의 성공이 그들의 실력과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타국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그들을 깎아내릴 생각도 없지만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단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한국인으로서는 맞지만 한국어로서 일본음반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음반을 보면 분명히 모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입한다. 오히려 외국가수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 앨범을 제작했다면 그것을 더 이상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방신기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일본어로서 앨범을 제작했고 판매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한국적 음악의 특색이 사라지고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 프로듀서들이 그들에게 노래를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한국에서 만든 자작곡과 일본앨범에 실리는 자작곡에도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무대 또한 그렇다. 한국에서는 복잡한 대형이나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보여준 반면 일본의 무대에서는 항상 보면서 ‘저게 춤이냐, 율동이지’라고 욕했던 일본 아이돌의 춤과 다를 바가 없는 춤을 추고 있다. 한국적 아이돌그룹의 이미지로 시작했지만 점점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일본적인 것에 맞추어 나가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성공요인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한국적인 특색을 잃으면서까지 일본에서 인기를 끌어야만 했나 하는 아쉬움도 든다. 만약 동방신기가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면 지금의 인기만큼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발매하는 앨범마다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점도 생긴다. 이렇게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 동방신기의 일본에서의 성공을 문화적 세계화로서의 한류를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점이 없지 않나 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 같다. 일본 tv에 방영되었던 겨울연가로 자막대신 일본성우들의 더빙으로 대체되었다고 해서 겨울연가라는 한국 드라마가 일본 드라마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일본어로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그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가 일본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분명 한국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진출했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은 타국에서의 한국문화 전파라고 말할 수 있다. **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동방신기는 처음에 콘서트에서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는
이유 만으로도 일본인에게 욕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 콘서트에선 감사합니다,사랑한다 카시오페아, 고맙습니다, 심지어 한국어로 아카펠라를 부르고, 얘기도 합니다. ㅎㅎ.
처음에는 무명가수로 일본어를 잘하는 외국가수였지만, 뛰어난 가창력실력과 퍼포먼스등으로 최정상 가수가 되고,
이제는 오히려 한국문화를 배우려는 일본팬들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합니다.
어차피 문화가 한쪽으로만 흐를수 없으니까요. (갠적으로 동방신기의 일본노래는 훨씬 화음이 아름다웠다고 느꼈습니다.)
빨리 동방신기가 날개를 달고 더 멀리멀리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가요계 역사상 이런 그룹이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멋진 그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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