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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송인수
이미 어느 정도는 나눈 이야기였다 생각했는데, 단체의 이름과 관련된 글이 올라왔어요. 함께님.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맨발각시님이 좀 더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정리를 해봅니다. 다른 분들이 궁금해 하실 수도 있고, 또 여기 저기 글에서 이와 관련된 단체의 방향에 대한 지적도 있어서 한꺼번에 정리를 해봤어요... 요즘 이런 저런 안팎의 일로 인해서 참 마음이 무겁네요... 이런 상황 속에서 잘 표현이 되었을른지... 긴 글입니다.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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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새 단체를 시작하게 된 배경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인지, 사교육없는세상인지, 사걱세, 사교세, 교육걱정없는세상인지, 등 어느 이름이 맞는지, 더 좋은지에 대한 고민은 사실 정답이 없는 것입니다. 원래 이 단체를 만들 때의 고민은 2007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그만 두기 1년 전부터... 새로운 운동의 필요를 느끼구요...
저와 윤지희 샘의 관심사는, 우리가 그동안 교육운동을 하면서 교육 문제 중 주변적인 문제(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 아니구요)에 집중해 왔지만(촌지, 채택비리, neis 문제 해결, 학운위 문제, 교원 문제 등), 두가지 반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 교육의 가장 핵심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인 입시 경쟁 구조, 교육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더 나빠지지 않는 수준의 문제제기만 했지, 그 이상으로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는 우리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해서 방치했다, 그러나 이제 남은 인생을 이 일에 혼신의 힘으로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내야할 것이 아닌가... 두번째로는 그런 일을 우리가 하면서 지금까지 교육계는 시민없는 운동, 운동가들 소수만이 하는 운동으로 운동을 풀어갔다... 국민운동 등등이라는 명칭의 단체가 있지만 실제 국민은 부족한, 전문가들의 이합집산 운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운동가들이 오랜 동안 일하다보니, 주변적 이슈에 대해서 무엇을 막는 운동을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나머지, 힘이 고갈되고 소진되어 결국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채 중심부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되는 그런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지요.
그런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대중들을 만나서 설득해서, 우리 입시 고통의 문제, 그것을 부추기는 공교육의 부실의 문제, 학벌 사회구조, 대학의 잘못된 수직적 서열구조 등을 해결해보자, ‘입시 철폐 범 국민운동본부’, ‘공교육혁신과 변화를 위한 시민운동’ 이런 용어를 써보았자, 국민들에게 그런 공교육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그 엄청난 덩어리의 문제를 어찌할 수 없다는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니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동안 시민운동을 보십시오. 다들 ‘공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공교육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운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시민들이 붙지 않고, 그 거칠고 메마른 표현에 정을 떼고, 20년 30년 간 교육운동을 해와도 그 내건 깃발을 남의 것으로 생각해서 근처에 가지도 않는 그런 거리감을 둔 것이 ‘공교육’이라는 이름의 무수한 단체들의 깃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교육’을 생각했습니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부실(온전히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입시 경쟁 구조, 대학의 서열, 학벌사회의 문제가 종합된 부작용이지만요)의 그림자이며 둘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요. 따라서 공교육 부실의 고통을 국민들과 함께 풀어갈 때, 국민들은 사교육은 내 문제라 생각을 하니, ‘사교육’이라는 키위드를 사용하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 단체 이름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으로 작명하게 된 과정
그러나 노골적으로 ‘사교육’이라는 것을 단체이름으로 하기보다는, 단체이름은 좀 부드러운 이름으로 하고, 실제 내용을 ‘사교육’과 관련된 것으로 집중하려 했고, 그래서 ‘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이름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카피라이터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분의 검토 결과는 ‘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말은 너무 넓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할지, 어떤 문제를 풀어내고자 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전교조나 교총이 하는 새 운동으로 일해 할 수도 있고, 또 교육걱정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수한 과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좁히지 않으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가 흐려진 채 산만할 수 있으니 곤란하다, 결국 운동은 하나의 개념을 남기는 것이다, 그 개념, 키워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대중들 국민들과 함께 하는 운동으로 간다고 할 때,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운동 이름이 필요하다, 내 생각으로는 ‘사교육’이라는 말을 어떤 식이든 넣어야한다, 는 것이 주문사항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의 중요한 문제의식이었고,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사교육의 문제가 결국 공교육, 대학의 부실과 잘못된 서열구조, 일자리에서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의 문제 등 아주 근원적인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니, 사교육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핵심 문제들을 풀어야한다는 것을 기본 입장으로 설정했고, 다만 그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공교육 혁신, 학벌 철폐, 대학 서열화 폐지” 등의 거리감 있는 이름이 아니라(이미 그런 이름을 표방하는 단체가 있지요. 하지만 시민은 부족한 상황이지요.) 국민들이 피부에 와 닿는 ‘사교육’, 그러니까 공교육 부실 등의 부작용 결과인 사교육 문제를 키워드 혹은 지렛대로 해서 국민들과 함께 이를 해소하자는 것이 우리의 기본입장이었습니다.
물론, 국민들은 ‘사교육’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공교육’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교육만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운동을 하면서 그때그때 연결시켜 주는 것을 하기로 했구요.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교육과의 싸움보다는, 공교육 부실과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에 더 큰 관심있어..
따라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마치 사교육 문제, 학원을 때려잡는 운동, 공교육의 문제는 무시하고 학원만 때려잡는 운동으로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 운동의 일부사업이 공교육의 부실 등의 원인에 기생하여 문제를 증폭시키는 사교육 시장의 불필요한 거품을 걷어내고 알리는 운동을 했습니다. ‘아깝다 학원비’ 등이 그렇지요. 그러나 그 운동이 초기에 크게 자리 잡았다 해서 마치 우리 운동이 그에 매몰된 운동이라 생각하면, 빙산의 일각을 보고 빙산이라 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깝다 학원비’는 당장의 부모들의 절박한 고민을 풀어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 운동의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럼 빙산의 바닥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안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지요. 우선 학교교육의 부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단체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단체들과의 제휴 협력을 통해 풀어가려고 합니다. 교사의 문제 심각하지요. 그러나 그 부분은 이미 제가 13년간 책임자로 일했던 ‘좋은교사운동’이 지금도 단체의 모든 역량을 모아서 그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3000명이 모여서 십수년간 해서 여기까지 성과를 거둔 것 그 이상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또 다시 반복할 일은 아닙니다. 체벌, 채택 비리, 학운위 사업 등도 마찬가지이고, 공모제 학교 확대운동의 경우도 사실 그렇습니다.(물론 필요하면 우리도 가끔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런 영역을 제외하고, 우리는 사교육을 유발하는 학교 내신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사교육걱정없는학교 내신, 즉, ‘행복한 성적표’ 사업 등을 통해 학교의 교육과정, 평가, 그리고 수업의 구조를 뜯어 고치는 일을 하고 있고, 사교육 걱정 없는 고교 체제라고 해서, 고교 입시로 인한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자율고의 문제, 외고의 문제 등을 바로잡는 일을 지난 1년 간 매우 집중해왔습니다. 그래서 외고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것 뿐 아닙니다. 앞으로 교육과정과 평가의 문제는 너무도 중요한 학교교육의 문제이니 그 일에 더욱 집중해서 교육청등과의 협력 사업을 전개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보시다시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진로 교육 영역으로 집중하면서, 미래 직업사회의 상황, 현재 채용시장의 상황을 검토하면서 학벌을 차별하지 않는 인재 채용 질서를 구축하는 일, 대학 교육의 틀을 쇄신하는 일, 그리고 대학입시개혁 등의 영역에 관심을 확장시키고 있고 상당 부분 내부적으로 그 상황을 정리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가 무엇인가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교육걱정을 없애기 위해서는 △입시 경쟁 속 입시 사교육은 개인이 어쩌기에는 어쩔 수 없는 영역으로 인정하더라도 그속에서라도 불필요한 사교육비는 줄여야하고, 입시경쟁 때문에 개인에게 부담을 주는 사교육과 관련해서는, 개인에게 무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고, 수업과 평가의 질을 개선해야하며, △대학교육 및 입시체제를 개편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발굴하고 또 올바른 채용 관행이 정착되도록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 공교육 부실 문제 해결을 '공교육'으로 시작되는 운동 이름으로 풀고 싶지 않은 이유...
그런데 그런 사업들을 과연 우리가 ‘공교육 살리기 국민운동’, ‘대학교육혁신을 위한 국민연합’ 이런 식으로 깃발을 들고 나왔으면, 국민들이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이미 그렇게 했던 단체들이 다 지쳐 버렸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그렇게 했다면, 과연 이 카페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1,000여명의 정/후원회원들, 전통 교육운동 속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시민들을 이렇게 많이 회원으로 얻을 수 있었을까, 카페에 1만명 이상의 온라인 회원들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판단이 틀린 판단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구요.
정부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공급을 채워주는 것으로 풀어가려 하고, 사교육 업자들을 혼냄으로 풀어가려 합니다. 그럴 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사교육걱정없는행복한 성적표 보내기 운동’, ‘사교육걱정없는 일자리 채용 운동’ 등을 전개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사교육 문제를 정부의 시각대로 너무 좁게 이해서 학교를 학원화시키는 것에만 생각이 머물다가, 더 넓게 아니 더 근본적인 영역으로 사교육의 원인을 생각하는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교육적 기능을 우리는 늘 생각해 왔고, 그것을 이름 속에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걱정없는세상에 ‘사’라는 글자 하나를 넣은 것입니다. 글자 하나만 넣은 것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그런데 왜 사교육없는세상이냐는 것입니다. 다른 이름도 많은데. “사교육이 줄었다”는 이름도 생각했습니다. 굳이 명사로 끝낼 일이 없지요. “사교육없는세상”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교육이 줄었다”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를 단체의 이름으로 머릿속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하자면 인식의 고정관념을 뚫어야하는 비효율성이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해도 사람들은 ‘뭐라더라, 사교육을 줄이는 무슨 운동’이지 아마?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단체의 이름이 결국은 무너질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사교육없는세상”은 글자 수도 적고 그래서 아주 유력한 후보로 생각했습니다. 조선일보 측에서 이번에 이름 붙인 것처럼요. 그러나 걱정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입니다. 여러 이유를 댈 수 있는데, 중요한 것 한두가지만 말하자면, 이것은 ‘사교육과의 싸움, 문제의 핵심이 사교육이니 그것을 없애면 된다는, 교육문제의 근원이 사교육에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고, 또 우리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사교육없는세상‘이니 사교육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두려움, 거부감 같은 것을 줄 수 있고, 사교육 업자들에게는 불필요한 반발심을 줄 수 있고, 마치 사교육을 때려잡자는 사회주의적 운동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강력했습니다.
■ 정 이름을 줄여 부르고 싶다면, 단체의 정신을 훼손시키지 않게 줄여 불러주었으면...
물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명의 가장 큰 약점은 단체명이 길다는 것입니다. 줄이고 싶은 마음이 강할 것인데, 7자에서 9자로 될 경우, 글자를 줄이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커질 것이라 봤습니다... 그래서 어쩌나 하다가 이 운동을 아시는 회원들이나 시민들에게는 번거롭더라도 줄이지 말고 이 단체의 이름 전체를 읽어달라고 부탁한 것이지요. 그리고 굳이 줄이려한다면 ‘사교육걱정’이라고 말해 달라구요...
여기까지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작명의 과정은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일을 시작한 사람의 정세와 세상에 대한 분석, 운동에 대한 감수성과 문제의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단체가 간판은 ‘사교육’을 달았지만, 공교육 등의 문제 해결을 핵심으로 붙들고 사업을 해오고 그것이 중심사업이라는 점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냐, 우리는 동의 못한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저도 어쩔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제 자식의 이름이 ‘성현’이라고 만일 할 때 나는 동의 못한다, 왜 성현이어야하는가, 그런 것을 문제삼는 것과 본질이 같지 않을까요.
줄여달라는 이름대로 불러주지 않고 자기 식 대로 부르는 것은 단체를 폄훼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과장된 것인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제가 이전에 속한 단체의 이름이 ‘좋은교사운동’인데, 그 단체의 키워드가 ‘좋은교사’였습니다. ‘좋은교사’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누가 ‘좋은교사모임’이라고 해도 그냥 넘어갔지요. 그러나 ‘좋교운’이라 했다면 제가 그분들에게 항의했을 것입니다. “좋사동”이라해도 가만 안 있었을 것입니다. ‘사걱세’, ‘사교세’, ‘사업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국적도 없고, 무엇을 하자는 운동인지도 모를 이름으로 단체명을 해체시켜서 부르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 이전에 공지에 올린 글의 취지였기도 하지요. 그뜻에 공감해 주신 ‘함께’님께는 감사합니다.
■ 비난과 공격 : 우리 운동이 감내해야할 어쩔 수 없는 것... 그러나 지키고 싶은 이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할 때 저는 욕과 비난받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불찰로 인한 비난은 얼마든지 감수해야하구요. 또 반성해야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비난도 있고 오히려 그것이 더욱 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런 비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언론과 내부에서... 저 자신이 이 속에서 교만하지 않는지, 무엇을 이룬 것처럼 우쭐거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카페 속에서 단체를 비판하시는 분들의 비판을 보고 제가 이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나선 것은, 비판이 지나치게 과도하고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단체가 감당해야할 사명을 위해 단체가 마땅히 지켜야할 자기 운동의 정당한 자리와 관련해서, 근거없는 비판에 대해서 대답하고 선을 긋는 것, 부당한 비판에 대해서 정당하게 대답하고 카페 문화를 관리하는 것 자체를 ‘교만’의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체를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체를 끝까지 지킬 마음도 없습니다. 우리 단체가 사명으로 붙들고 있는 핵심적 목표를 마무리할 때, 아니 더 유능한 단체가 나타나서 이를 대행할 때 저는 하시라도 이 운동을 접을 용의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단체가 목표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수히 공격받을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결정적 순간에 우리는 변명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에 대해 수혜자들은 환영하지만, 이해 당사자들은 피해를 입기 마련이고, 그로 인한 섭섭함과 비판은 받아들여야할 일이고, 그분들을 마냥 공격할 일은 아니며, 그분들도 이해해야할 것이며, 끝까지 함께 설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단체를 지키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교육걱정없는세상, 입시고통없는세상, 학벌 차별 걱정 없는 좋은 일자리 얻는 세상이 올 때, 아니 고통당하는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의 눈물이 씻겨지고, 배우고 가르침이 행복한 세상이 오는날, 그 댓가로 우리 단체는 비록 소멸되고, 일을 앞장 선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다하더라도, 우리는 불평하지 않고 이를 환영할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