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에 얽힌 이야기
천자문은 지난날 동양의 베스트셀러였다. 천자문은 4자 250구 도합 천 자의 글자로 구성된 시로, 잘 알다시피 천지현황(天地玄荒)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난다. 초학(初學)의 학습서이지만 천지의 이치와 역사와 문학 같은 인간사가 그 안에 다 담겨 있다. 그래서 정약용 같은 이는 천자문이 통감절요와 함께 가장 어려운 책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천자문은 아무런 원칙 없이 글자 수만 천 자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그 내용면에서 보면 동양의 세계관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바탕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곧 천문, 지리, 인사(人事)의 순서로 정연히 짜여 있다.
즉 첫째 부분은 해와 달의 차고 기우는 현상과 별자리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에 따른 기후의 변화에 대하여 적었고[天], 다음은 각 지역에 따라 생산되는 산물의 특징과 짐승, 새, 물고기 등의 특성을 설명하였으며[地], 마지막으로 문명을 처음 일으켰다는 전설상의 인물인 복희(伏羲)씨로부터 시작하여, 나라의 다스림과 인륜의 도리를 차례대로 기술하였다[人].
그리고 끝의 두 구절은 어조사(語助辭)를 말하면서, 그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모두 갖추어야 인(仁)을 이룰 수 있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완성’을 선언한 구절인 것이다.
천자문은 이러한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식 또한 가지런해서 시의 압운(押韻)을 정확히 밟고 있다. 압운이란 구의 끝 글자에 같은 운(韻)을 가진 글자를 규칙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한시가 지니는 하나의 규칙이다. 운이란 가운뎃소리[中聲]와 끝소리[終聲]를 합친 소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張(장)’의 운은 가운뎃소리 ‘ㅏ’와 끝소리 ‘ㅇ’을 합친 ‘ㅏ+ㅇ’이다. 영시의 라임(rhyme)과 비슷한 것이다. 그럼 천자문 첫 부분의 압운을 보자.
天地玄黃(천지현황)
宇宙洪荒(우주홍황) [ㅏ+ㅇ]
日月盈昃(일월영측)
辰宿列張(진숙렬장) [ㅏ+ㅇ]
寒來署往(한래서왕)
秋收冬藏(추수동장) [ㅏ+ㅇ]
閏餘成歲(윤여성세)
律呂調陽(률려조양) [ㅏ+ㅇ]
雲騰致雨(운등치우)
露結爲霜(노결위상) [ㅏ+ㅇ]
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짝수구의 끝 글자는 모두 ‘ㅏ+ㅇ’의 소리로 되어 있다. 천자문은 이와 같이 ‘ㅏ+ㅇ, ㅑ+ㅇ, ㅣ’ 등과 같은 7개의 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자문은 양(梁)나라 주흥사(周興嗣)가 지었다고 전해 온다.
“주흥사가 죄를 지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무제가 명하기를, 한 자도 중복되지 않고 4언 250구를 하룻밤 사이에 지으라고 했다. 만약에 이를 어기면 목이 달아날 것이라는 명도 함께 내렸다. 이 명에 따라, 글을 다 짓고 붓을 놓고 나니, 얼마나 고심을 했던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래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과는 좀 다르다. 천자문은 주흥사가 처음으로 창작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있던 글에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러 작자가 글자를 첨가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주흥사는 집대성했을 뿐 원작자는 아니다
또 주흥사가 죄를 지어 목숨을 걸고 지은 것이란 이야기나, 하룻밤에 짓고 나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이야기도 사실과 다르다.
주흥사는 박학하고 글을 잘 지은 사람인데, 무제가 이를 아껴서 왕희지의 천자문을 본 따서 새로운 천자문을 지으라고 하였다. 주흥사는 이 명에 따라 글을 지어 바쳤더니, 무제는 매우 칭찬하며 많은 상을 내렸다. 태평광기(太平廣記)와 송사(宋史) 이지전(李至傳)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무제가 주흥사를 협박했다는 것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크게 상찬(賞讚)했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머리를 짜고 짜서 249구를 짓고 나니, 마지막 한 구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심하고 있는데, 홀연히 귀신이 나타나 언재호야(焉哉乎也)의 글귀를 알려 주어, 마침내 완성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닌 속설일 뿐이다. 마지막 두 구는 주흥사가 손수 지은 것이 아니라, 전대(前代)의 종요(鍾繇)가 쓴 천자문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 끝 두 구를 잠깐 살펴보자. 언재호야는 홀로 떨어져 있는 구가 아니라, 앞의 구인 위조어자(謂助語者)와 함께 쌍구를 이루고 있다. 즉 “조사를 말하고 있는 글자는 언(焉)과 재(哉)와 호(乎)와 야(也) 자이다.”란 뜻이다. 조사는 글귀(문장)를 완성․종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많은 조사 가운데, 대표적인 4글자를 들어 끝을 맺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마지막 구절이 단순히 조사의 기능만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앞에서 언급한 인간의 윤리와 이어져, 어진 사람이 되려면 학문을 닦아야 완성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천자문의 체제는 깊고 오묘하다. 그래서 이 두 구 의 운(韻)을 앞의 글귀와 다르게 쓰고 있는바, 다음과 같이 ‘ㅏ’의 운을 쓰고 있다.
謂語助者(위어조자) [ㅏ]
焉哉乎也(언재호야) [ㅏ]
그런데 이 구절을 읽을 때 통상 ‘잇기 언(焉), 잇기 재(哉), 온 호(乎), 잇기 야(也)’로 읽는다. 그러면 ‘잇기’와 ‘온’은 무슨 뜻일까? ‘잇기’는 ‘입겿’이란 말을 힘을 덜 들이려고 줄여서 읽은 것인데, 입겿은 토 즉 어미나 조사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입겿은 받침에 대한 정확한 의식이 없던 당시에는 입겾 혹은 입겻으로도 적었다.
‘온’은 乎의 이두식 음으로, 현대어의 관형사형 어미 ‘-ㄴ(은), -ㄹ(을)’ 등의 뜻이다. 예를 들면, 하온(爲乎)은 현대어 ‘한[did]’의 뜻이고, 하온일[爲乎事]는 ‘한 일’, 하온가[爲乎去]는 ‘한가’, 하온지[爲乎喩]는 ‘할지’ 등과 같이 쓰였다.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의 마지막 구절 언재호야(焉哉乎也)를 다 익히고 책거리를 할 때, 백수문(白首文)을 써서 벽에 걸어 놓으면, 여백에 100명이 서명을 하는 풍습이 있어서 천자문을 백수문(白數文)이라 하기도 한다.
그럼 여기서 천자문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옛날 어느 부잣집에 귀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글을 가르칠 나이가 되어 좋은 스승을 찾게 되었다. 이리저리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선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기를 여러 달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집에 들른 어느 선비에게 아무 곳에 훌륭한 선생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곳은 백여 리가 떨어진 먼 곳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아이를 데리고 이튿날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에게 아이를 보이며 인사를 드리자, 선생은 별로 아는 것이 없어 잘 가르칠 능력이 없다면서 사양하였다. 그러나 부자는 선비로부터 들은 말이 있어서, 속으로 괜히 사양한다 싶어 몇 차례나 간곡히 청하여, 마침내 문하에 둘 것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맡겨 둔 이상, 선생을 믿고 자주 찾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온 부자는 아들을 좋은 선생 밑에 보냈으니, 여느 접장 밑에서 배우는 아이들보다 몇 곱절이나 높은 공부를 빨리 해낼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 기쁜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가서 아들의 공부한 이력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한 선생과의 다짐 때문에 가 볼 수가 없었다.
이러기를 거의 1년이 지났다. 인근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천자문을 끝내고 책거리 잔치를 한다고 야단들이었다. 이것을 본 부자는, 우리 아들은 훌륭한 선생 밑에 보냈으니 저들보다 훨씬 높은 동몽선습, 명심보감 정도는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들을 보러 갔다. 아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본 부자는 깜짝 놀랐다. 아들이 아직 하늘천 자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워낙 훌륭한 선생이라 들었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럭저럭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인근 아이들은 이제 명심보감을 거의 다 읽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보통 선생 아래 공부하는 아이들도 저 정도가 되었는데, 우리 아이야 지금쯤은 소학 정도는 읽었을 것이라 자위하면서 아들을 보러 집을 떠났다. 이번에도 부자는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아직도 하늘천 자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나 이왕 맡겼으니 조금만 더 두고 보자며 선생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또 한 해가 다 되었다. 이웃집 아이들은 이제 논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쯤은 논어는 아니라도 명심보감은 마쳤으리라 생각하고 아들을 보러 떠났다. 학당에 도착한 아버지는 또 한 번 소스라쳐 까무러칠 뻔하였다. 아직도 하늘천 자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본 그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아들의 손목을 잡아끌고 집으로 헐레벌떡 돌아와 버렸다. 속이 터지고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을 보낸 후 하도 속이 상해 아들을 보고, ‘이 바보 같은 놈아, 이웃집 아이들은 벌써 이런 책을 읽는데, 너는 아직까지 하늘천 자도 못 배웠느냐?’며 홧김에 옆에 있는 논어를 아들에게 집어 던졌다. 논어를 주워든 아들은 이런 정도는 벌써 배웠노라고 하면서 줄줄 읽어 내리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아버지는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하기를, 하늘의 이치를 다 배우고 며칠 안 있으면 조금 남은 땅의 이치를 다 배워 공부를 끝내려는데, 아버지가 와서 막무가내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뉘우친 부자는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선생에게 찾아가서 아들을 다시 맡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그 아이는 이미 바람이 들어버려 더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만 돌아가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천자문의 중요성을 말하려는 것만은 틀림없다. 천자문 안에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