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레게 톨레레게
로마서 13:13-14
지난 고난주간에 인천의 어느 교회를 방문했다가 담임목사님과 둘이 대화를 나누었다. 몇 번 본 사이도 아닌데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하더라. 그는 은퇴를 2년 남짓 남겨뒀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평생 책으로 배워서 설교를 했는데, 겨우 2년 전부터 깨달아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설교가 즐거워졌는데, ‘철들자 망령’이라고 은퇴를 앞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적이고, 신학적 상상력이 많은 분이 설교를 짐으로 알고 살았다니 놀라웠다.
목사라면 당연히 설교가 모든 생각과 생활의 중심이 된다. 신문을 뒤적여도, 영화 한편을 보아도, 유머를 흘려들어도 늘 설교와 연관을 짓는다. 그러니 설교의 중심이자, 전부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에 대해 자신의 주견과 안목을 갖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현역 가운데 선배보다 후배가 점점 많아지는 지금, 특히 후배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성경을 자신의 목회에서 최고 강점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지금도 후회되는 것은 젊어서 성경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지나가는 유행가 같은 지식을 얻기 위해 훨씬 많은 투자를 했다. 모든 목회자에게 성경은 가장 약한 부분과 같다. 그러니 남들이 무엇 잘한다 싶으면, 특히 성경을 잘 풀어낸다고 하면, 늘 기웃거린다.
나는 성경과 특별한 지점에서 만났다. 신학교 2학년 초에 감리교청년연합회에서 만든 <역사, 예수, 교회>(1982년) 교재의 실험그룹으로 참여한 일이 있다. 청년과 대학생에게 성경의 눈을 틔워 줄 목적으로 제작한 것인데, 같은 또래 대학생 예닐곱 명과 격주로 만나 공동학습을 하였다. 기라성 같은 필자들이 쓴 교재를 읽고 토론하면 출판사 측에서 짜장면을 사주었다. 내 첫 성경공부는 짜장면 맛에 길들여진 셈이다.
이것이 성경과 가까워진 계기가 되어, 첫 목회를 나갈 1985년에 본부 교육국에서 제작한 <청년과 성서이해>(1985년) 첫 단원을 집필하였다. 1989년에는 월간 <생활신앙>에 ‘청년을 위한 성서연구’를 연재하였고, 1991년에는 평화통일을 주제로 한 성서교재 <하나된 세상, 하나님 나라>(1991년)를 첫 단행본으로 냈다. 농촌교회 속회공과인 <봄 여름 가을 겨울>(1992년)을 엮은 것은 1992년이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성경이 내게 끼친 과분한 영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철들 무렵부터 내 의식세계를 지배한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었다. 성경을 통해 세상과 교회를 알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예언자 의식을 배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내가 가장 게을리 했던 대화 상대자도 성경이었다. 부끄러운 것은 목사 나이가 들면서, 성경과 더 멀어졌다.
설교 준비하는 일에 내 이름값을 느끼며, 책임의식을 갖게 된 것은 나이 만 40세가 되어서였다. 독일에서 결심한 것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말씀을 쫒아 살지는 못하고 있다.
1994년부터 독일 한인교회에서 목회하였다. 복흠교회는 24년 된 독일한인역사의 초대교회 중 하나로 광부와 간호사가 중심이었다. 막 도착해서 아직 이민 가방도 풀기 전인데 주말에 여선교회 수련회를 한다면서 특강을 부탁하였다. 책 볼 새도 없어서 성경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특강주제로 ‘마가복음 읽기’라고 정하였다. 특강인데 제목이 너무 뻔하니, 모두 실망을 하는 눈치였다.
특강을 시작하면서 백지를 돌리고 시험부터 보았다. 얼마나 복음서를 이해하는지, 얼마나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지 자가진단하려는 것인데, 참가자들이 모두 진땀을 뺐다. 그들은 특강을 마친 후 “목사님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항복부터 받고 독일목회를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2년 동안 매 주일 ‘그물짜기’ 성경입문 프로그램을 공부하였다. 주일마다 A4 양면으로 교재를 만들어 나누었고, 2년 동안 99주짜리 구약과 신약 교재를 완성하였다. 아마 내 인생에서 성경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시기였다. 어찌 보면 그동안 어설프게 성경을 대하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작업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평생 그물짜기를 울궈 먹는다. 나는 목사 은퇴 후에도 그물짜기 성경공부 교사만큼은 계속 하고 싶다.
색동교회 5주년을 맞아 또 다른 성경공부 교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톨레레게’이다. 톨레레게는 성경을 통합적으로 읽는 것이다. 신구약 1,189장을 1년 동안 꼼꼼히 읽기 위해 365등분하였다. 성경 전체를 365가지 소주제로 나눈 것이다. 이를 위해 나 홀로 1년 동안 먼저 읽으면서 소주제와 읽을 범위를 정하였다.
2015년 송구영신 예배 직후 1월 1일 첫 시간에 제1일 ‘처음 창조’(창 1-2장)을 읽고, 12월 31일 송구영신으로 모여 제365일 ‘새 하늘 새 땅’(계 20-22장)을 함께 읽었다.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주일 설교도 모두 톨레레게 진도 본문에 맞춰서 했다.
물론 톨레레게를 마쳤다고 모두 성경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소주제에 따라 365일 읽다 보면 성경의 세계와 친숙해 지고, 말씀의 미개척지를 밟아 본다는 기쁨이 있다. 정작 통독도 중요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일은 더욱 소중할 것이다.
‘톨레레게’라는 이름은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옛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고, 갈등하고, 방황했던 어거스틴이 마침내 회심 한 참회록이다. 그의 회심은 극적이지만 오랜 세월 준비된 것이었다. <고백록> 제8권 12장에 담긴 내용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다. 그 말소리가 소년의 것인지 소녀의 것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계속 노래로 반복되었던 말은 “Tolle lege, Tolle lege”(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곧 눈물을 그치고 안색을 고치어 어린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할 때 저런 노래를 부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전에 그런 노랫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섰다.
나는 그 소리를 성경을 들고 읽으라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명령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나는 사도의 책을 집어 들자마자 펴서 내 첫눈에 들어 온 구절을 읽었다. ... 그 구절을 읽은 후 즉시 확실성의 빛이 내 마음에 들어와 의심의 모든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냈다.”
어거스틴이 들고 읽은 말씀이 오늘 본문인 로마서 13장 13-14정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읽는 순간 그 즉시 확실성의 빛이 어거스틴의 마음에 들어와 의심의 모든 그림자를 몰아냈다. 어거스틴 생애에 일대 전환점이 찾아 온 것이다. 주후 386년 8월 여름날의 사건이었다. 정돈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 때문에 너무 답답하여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던 어거스틴이었다.
‘톨레레게’는 어거스틴의 참회록에서 그 이름과 함께 내용을 빌렸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 “주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중에 ① 음성을 듣게 하소서 ② 말씀을 읽게 하소서 ③ 삶을 고쳐주소서.” 이것이 톨레레게 성경운동의 목적이고, 목표이다.
톨레레게 운동은 내 마음 속에 말씀의 집을 짓는 일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내게 주시는 말씀은 초록색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은혜를 받은 말씀에는 두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가 그 본문에 가볍게 키스한다. 이러한 일용할 경건, 일상의 의무를 행하다보면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365일 매일 아침마다 톨레레게 묵상을 써서 모든 교인과 나누었다. 단 하루도 굶지 않았으니, 기적이다.
그리고 올해도 다시 톨레레게를 시작하였다. 이름을 바꿔 이번에는 ‘또 톨레레게’라고 한다. 성경통독은 유행이 아니고, 성경말씀은 더더욱 유행가 같은 지식이 아니다. 칼 바르트는 성경을 대할 때 늘 새로운 뉴스를 가득담은 조간신문 대하듯 신선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였다.
톨레레게가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이만한 부족함조차 성경을 사랑하는 과정에 크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원하면 이 책자의 소스 파일을 드리고, 365일 톨레레게 묵상도 모두 나누려고 한다.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은혜이니 여기에 저작권도 없고, 생각과 관심에 따라 묵상을 응용하는 일은 최선을 다하려는 사용자의 몫이다.
나는 ‘바이블 25’ 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람들과 가까이 하게 하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지금은 한글 버전이지만, 곧 세계화를 꿈꾼다. 이 일을 위해서도 응원 바란다.
어거스틴을 변화시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톨레레게의 은혜를 베푸시기를, 그리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키시길 간절히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