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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
1. 예수님의 윤리적 요구와 인간 세속적 윤리
- 예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윤리적인 요구들을 했지만, 그 양반 마음은 항상 하느님에게 다 있기 때문에 인간 세속적 윤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 결혼 문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대충 넘어갈 것 같다.
- 이천 년 전에는 여자들이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당하면 거의 몰락을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윤리적 요구는 더욱 중요하다.
2. 여성의 인간 대접과 이혼
- 예수 시대에는 여성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고, 이혼이 성행했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의문이다.
- 현재는 여성들이 인간 대접을 받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여성의 젠더적 인격은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다.
- 저자는 여성 제자들을 데리고 있기 때문에 젠더 문제에 민감하고, 우리 세대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3.성차별적 언어와 여성의 권리
- 성차별적 언어가 우리 언어에 많이 박혀 있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 여성의 인격이 신장되고 있지만 아직도 차별이 존재한다.
-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가산점을 줘야 한다.
4. 결혼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
- 여성 상위의식에 대한 이야기와 행복에 대한 생각.
- 부부 관계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방탕한 삶은 살지 않음.
- 결혼 문화는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
5. 하늘나라의 특징
- 하늘나라는 어린아이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다.
- 어린아이는 번뇌가 없고 순수하다.
- 하늘나라는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과 같다.
6. 모든 존재에 대한 깨달음
-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
- 불교에서도 모든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
- 욕망, 쾌락, 처벌, 지혜의 순서로 깨달음을 얻는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결혼과 이혼문제에 대한 해석으로 발목과 트집을 잡고자 했다. 틀림없이 율법, 왜 바리세파카 사람들이니까 그 모세율법에 이제 기준을 삼고 모세 율법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벗어나가 보자 이걸 시험하려고 하는 갑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이제 역으로 물어보자면 모세는 뭐라 그랬냐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 그래서 이제 이혼장을 써주면 된다고 찬성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어 사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윤리적인 요구들을 했지만, 그 양반 마음은 항상 이런 거예요. 하느님에게 닿아 있기 때문에 인간 세속적 윤리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이혼을 마치 반대하는 것처럼 이렇게 말하잖아요. 하여튼 뭐 우리도 지난 세대까지만 해도 이혼하면 큰일 날 줄 알고 여자들이 특히 이렇게 막 맞아가면서 살지 않습니까? 우리 제가 어렸을 때 우리 가난했던 백운동에 살아보면 그 부부 간에 사이가 안 좋아요.
항상 부인을 때리고 그런 그 문화들이 있었더라고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 인생들을 여자들이 보냈는지 생각합니다. 흠 그래서 그 지금 이천 년 전에는 더 심하지 않았겠냐? 그때는 구약에도 그런 거 나오지만 여자들이 이제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당하거나 그러면 이거 거의 뭐 그냥 완전 몰락을 하는 뭐 돈 많은 과부면 몰라도 왜 힘들게 살지 않습니까? 그냥 막 그 너무 힘들게 살아요.
겨우 겨우 얻어먹고 살고 이래 가지고 또 예수 시대에만 하더라도 여자는 인간취급을 않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제하고 참여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고, 그런 시대에 만약에 이혼이 성행을 했다. 그럼 여자들은 이제 어떻게 사는지 그런 말씀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러나 이건 이제 이천 년 전 시대고 이십이십 세기 초반까지도 그것이 이렇게 왔죠 네 다행히 이제 지금은 여자들이 인간 대접을 조금씩 받기 시작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 여자들이 얘기해 잠재적 능력이 있으면 선택할 수 있다는 거 그 남자 결혼을 뭐 후회할 수도 있겠죠, 끝까지 나누는 기사가 없으니까 목사들도 이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이혼하고 나서 결혼하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까지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것은 간음이라는 죄를 탓하고 있다기보다는 간음이다라고 하는 죄의식을 불러일으켜서 막아볼려고 하는 마음이 저기 있는데 지금 이건 상황 논리죠.
예수님이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또 말을 이렇게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위대한 스승의 말씀이라도 이게 시대적 해석을 할 것이고 실제적인 해설이 그걸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그러니까 이렇게 좀 갈라진다고 생각을 해요. 결혼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게 율법이잖아요.
법에 대한 것이라, 법은 항상 변한다, 여러분들의 의식 속에서 그런 게 있죠, 여자도 인간이고 선택할 수 있고 얼마든지에 자신의 인생을 재개척해 나갈 수 있다. 이게 맞는 거죠? 그러나 제가 볼 때는 아직도 여성들의 여자들의 젠더적 인격이 완전히 성장한다, 그렇게 되진 않아요 아직도 뭐 한 몇백 년이 지나야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제가 여자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애기들을 걔들은 그 굉장히 심합니다. 이 젠더 그래서 뭐 말을 잘못하면 선생님도 보고 그냥 떼주는 그런 것이 있는데 어 많이 이렇게 우리 세대하고도 많이 다르다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저도 상당히 높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도 그 단어나 뭐 이런 언어 선택에 있어서 성차별적 젠더적 언어들이 우리 언어에 너무 많이 이게 박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걸 우리는 이제 무의식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체크리 체킨이 된다, 그게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그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근데 이제 결혼 위험 뭐 이런 것은 여러 습관 아니겠어요. 인간들에게 일부일처제가 지금 이것도 얼마 안되고 사실은 뭐 한 몇 천년 할 때입니다.
일부일처제 정착, 그리고 이제 여성들의 그 인격이 신장되는 거죠. 최근 들어서죠 우리나라도 고려 때는 좀 나았다고 하는데 또 상리학에 들어오는 조선 시대 때는 좀 심해지고 후기로 갈수록 더 심해지다가 이제 일제 시대 거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판이다 라는 걸 알 수가 있어요. 저도 딸내미 키우고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게 동정해 줬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남녀가 그리고 사실 윤회를 통해서 그 여자로 태어났다 남자로 태어났다 한다고 그러니까 그 여자로 태어난 운이 없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똑같은 결정체로 같은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차별이 완전 제로가 되더라도 여자들은 생물학적으로 혼자서 처음 봤잖아요. 게임할 때도 그렇고 더 언제부터 결합 전체 옛날 대표적 커 그게 바뀌었지 힘이 약해서 근력이 근력이 약해서 주도 작업 이런 불편한 점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남자들의 권리 이게 백이라면 그 여자들이 권리는 한 배보 보다. 이렇게 가산점을 줘야 되는 게 아닌가 일단 생각을 해봐요.
앞으로 500년 정도는. 예, 선생님한테 500년 동안 여성이 더 많이 가점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오천 년 동안 억압을 했기 때문에 그 10분의 일이라도 보상을 해야 한다.
500년간은 여성 상위의식이 아니지 않았나 그렇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음 어 제가 좀 행복해 보입니까? 여러분이 볼 때 잘 모르시겠죠? 우리는 또 이게 어떤 이상한 여러 가지 결정적인 부분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저는 여러 가지 그 이상적 그게 문제에 있어서의 그 자신 있는 태도 이런 것을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부부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뭐 방탕한 삶을 산다.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그래서 그런 식으로 선택을 해오고 있습니다. 가을은 되도록이면 나처럼 결혼하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또 수행하는 전통들에서 보면 독신이 훨씬 유리합니다. 그렇지만 세속에서는 애도 낳아야 되고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도 건설해야 되기 때문에 어 신성한 그런 결혼에 어떤 문화가 있죠 우리가 그런 결혼해도 좋고 결혼하지 않아도 좋고 이렇게 살아야 될 것 같아요. 예, 그러나 이제 인간이 점점 진화해서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제 결혼이라는 문화는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 심지어 성적 생물학적 성적 차별도 없어지지 못한 양성을 갖는데요,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어요. 심지어는 이제 성이 완벽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단계를 거치면서 특별하게 경험하는 이혼 어린아이 지금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도중에 잠깐 겪은 경험은 어떤 생물학적 경험들이 됩니다.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인간이라고 하는 단계를 겪고 있기 때문에에 어 인간들의 어떤 삶이나 인간의 사회 이런 것에는 우리가 최대한의 노력을 강조해서 뭔가 사례가 더 하나의 나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숙제가 되고 그룹화 이제 미션이 되는 거죠. 그렇지만 어 예로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우리가 신을 향해서 접근해 나아갈 때 이어 지금의 단계 지금의 단계는 하나의 상당히 이게 짧은 기간이에요.
발화자 1 (12:57)
이 기간 동안 우리가 하늘만 바라보면서 전국적인 여러 가지 그 가치들에 대해서 그 소리할 수 있는 힘들을 기르는 거죠? 포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앞으로 이제 우리가 점점 더 하늘에 가까워져서 어떤 몸을 입고 있을지 모르고 어떤 그 욕망에 시달릴지 모릅니다. 그죠 그래서 우리가 이런 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구라고 하는 별에서 이렇게 잠깐 동안 보조하다고 하는데 이 질의하는 동안에 입니다.
하늘 하는 일처럼 대비해서 어떤 노력을 견해줘야 될 것 같아요. 어 그런 고민들 계속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향해낸 나라와 같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에바베이루스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깨달음에 편지 또는 해탈의 병지로 표현을 해 그렇다면은 어린아이의 얼굴에서 우리는 어떤 그 해당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죠 어 어른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번뇌력이 없는 얼굴들 어 또 해맑은 그런 순수함,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이겠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그런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가 이런 것이겠구나 라는 그런 감을 우리가 잡을 수가 있지 않을까 저도 이제 요즘 애들이 많이 안 태안다. 그러고 나이 먹어가고 그러니까 그 애기들이 되게 귀엽더라고요.
귀엽고 사랑스럽잖아요. 어 확실히 이게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세상이 그래서 이제 귀한 생명 인간이라고 하는 귀한 생명체에 대해서 어 우리가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하나의 나라를 보고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미안한다라고 하는 거고 그다음에는 이제 더 진화하잖아요.
그러면 모든 인간들을 보고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보는 거죠. 그러면 니 것이고 네 심지어 원수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어 나를 저주하고 음해하는 그런 원수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하는 면총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이 지구의 삶들이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모습이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게 이제 그 하나님이 문제에 가실 가장 마지막 단계의 깨달았죠.
케얼로 계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불교에도 그런 게 있어요. 그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전초가 욕망이 먼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실현하는 쾌락이 있고 그 다음에 그 영광을 넘어서는 처벌이 있고 이렇게 돼 있습니다.
노래야 연애를 하든지 뭐 또는 재산을 모으든지 하는 그런 욕망이 있고 욕망을 이제 충족시켰을 때 오는 기쁨들이랑 쾌락들이 있고 마지막으로 그 쾌락을 포기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라고 하는 거지요. 그 단계들을 우리가 꾸준히 갖추면서 하나님 말을 접근하고 비가 되시길 기다시작 사진 나도 결혼과 이용해달라 우리나라에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