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가능성이 만드는 미래
지난 금요일에 영등포 당산동에서 고등학교 동창 둘을 만났다. 이젠 지친 무더위가 가을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을 만큼 늘어진 저녁 시간이었다. 친구 중 하나는 십수 년 혹은 몇 년에 한 번쯤 만나다 보니 늘 처음부터 호구조사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만남 후에도 옛 졸업앨범을 들춰보면서 대화를 복기하는 즐거움이 있다. 가물거리는 기억이 정상일만큼 퍽 오래 전 일들이다.
짧은 몇 년 새, 학위를 마쳤다며 두터운 논문집을 건넸다. 아주 오랜만에 경험하는 정겨운 학위 후 의례인데, 아직도 이런 딱딱한 표지의 검정색 논문집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듣자니 문외한인 나도 경탄할 만큼 노(老)학우의 고생이 남달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26년만에 다시 만났던 친구는 그즈음 가까운 외교부에서 감리회본부를 방문하여 두툼한 사전류의 책을 전해주었다. <중국소수민족연구>(2007)라는 무려 천여 쪽이 넘는 방대한 연구서를 살펴보며 “과연 너답다”고 덕담한 기억이 새롭다.
이번에 쓴 박사학위 논문은 <漢代 北燕·朝鮮지역 어휘 연구>로 고조선 시대의 어휘를 조사한 것이다. 고조선 시대의 낱말이라니, 당장 시야가 흐려질 만큼 가늠하기 어려운 범주의 일이다. 대체로 고조선과 같은 상고사들은 역사 이전으로 취급받거나, 지배층을 중국의 고대 이주민쯤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도한 역사왜곡도 우리의 안목을 가렸지만, 우리 자신도 스스로 폄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연구의 씨앗과 같은 고조선의 어휘는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날 대화의 절반쯤 논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 입장에서 역(逆)동북공정을 진행하였다. 서기 1세기 초, 양웅(揚雄)은 황제의 명을 받아 당시 한나라에 편입된 지역들의 언어를 수집하였다. 그것이 중국 한대(漢代)에 편찬되어 전해오는 <方言>이란 기록이다. 여기에 채록한 고조선 지역의 어휘는 60개이다. 연구자는 이 단어들이 고대 중국어가 아닌, 바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말임을 증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논문집은 온통 한자, 중국 음운, 낯선 고대어로 가득하였다. 마치 암호문을 해득하기 위한 암호해독 프로그램을 닮았다. 비록 귀로 듣는 것은 그럭저럭 통했으나, 논문을 이해하기에 배경지식은 물론 문해력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연구업적을 치하하면서, 결과물로서 그의 수고를 위로하였다. 놀랍게도 친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자신을 다그쳤다.
그동안 우리 학계의 상고사 연구는 역사기록 부재 등 자료제약을 이유로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고조선 어휘를 연구하면서 계속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기존 학계와 샅바싸움이 불가피하였다. 생경한 논문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고정관념과 역사적 편견과 맞서 설득하려면 불편한 증명과정을 치뤄야 한다고 했다. 아마 뉴라이트 수준의 선정적 논쟁이 아니라, 역사학계는 물론 국어학계와 치룰 또 다른 의미의 동북공정일 것이다.
연구자와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도서부에서 함께 지냈다. 당시에도 그는 우리나라 상고사에 대해 이런저런 확신을 갖고 이야기했지만, 그저 들뜬 애국주의로 느꼈다.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외교관이 되고, 평생 중국전문가로 국익을 위해 씨름하였고, 마지막에는 중국과 몽골에서 총영사와 대사로 공직을 마무리하였다. 흥미롭게도 소년시대의 관심사를 놓지 않고, 지금도 진보 중이니, 정말 남다르다.
토요일에 다녀온 우리 동네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전시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젊은이들의 발표가 진행 중이었다. 졸업을 앞둔 16명의 프로젝트 연구자들은 10개월 동안 자신이 정한 주제에 따라 지적 가능성을 펼치고, 상상력의 결과를 낳았다. 이번 주간에는 연구보고서를 공개하고, 과정과 성과물을 시각적 방식으로 전시한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는 수백 명 앞에서 소개하고, 질문을 받는다. 까까머리 우리 시대는 물론, 수능과 수시를 앞두고 날마다 전투를 치루는 요즘 아이들과도 남다른 일이다.
내가 만난 연구자는 논문 주제가 ‘고백(告白):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함’이다. 무려 열 달 동안 고민하고, 미술과 문학에서 구현된 선행 작품을 해석하며, 그림과 시로 표현하고, 글로 정리하였다. 이를 고등학교 졸업논문으로 제출한다니 대단한 일이다. 16가지 전시를 두루 살펴보면서 내린 결론이 연구자들은 이미 작가요, 학자이며, 철학자이고, 예술가였다.
이런 관심사가 평생으로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희망적일까? 우리 시대 늙고, 또 젊은 연구자들에게 감동 어린 갈채를 보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