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특집 │ 김양숙
물의 집 외 2편
──섬
김양숙
아버지는 그녀를 막다른 골목에 눕히고
섬이라고 명명하였다
오래된 섬은 사시사철 겨울이다
빙하를 지나온 겨우살이에 핀
피의 지도를 꺼내 비린내를 받아먹는 아버지
그녀의 쇄골에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산의 유적이 그녀의 몸 속을 휘돌아 나가고
고요, 또는 수평 그 뒤편 천개의 자궁에서
울컥 쏟아내는 두말치
솟구치는 본능에는 죽음 바깥으로만
흐르는 유전자가 있다
물은 몸 속 어디에 건재 하는가
불은 몸 속 어디에 건재 하는가
뼈가 엉켜드는 등나무 아래서
캄캄한 비를 받아먹고 제 속을 열어
최초의 눈물을 보여주기도 한 그녀
울음의 뼈가 닳고 있다
제단 위에 올려진 삭정이 같은 그녀를 본다
물을 길어 올리던 수맥은 말라
버석거리는 가지 끝
한 번도 만진 적이 없는 자궁 속 풍경이 닳고 있다
아직도 툭 꺾인 골목에서 발톱 뭉그러진 비둘기를 키우고
바퀴에 깔린 지렁이에게 썸머타임을 불러 잠을 재운다
잠의 깊이로 건너야 하는 섬
아버지는 닳아버린 발꿈치에 통증을 슬어 놓고
그녀의 몸 속을 뒤졌다
미끌거리는 물의 속도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지느러미의 날선 각도에서
아버지가 천천히 익어갔다
물비늘 안쪽에 숨어있는 달을 찾을 수 있을까
제단 위로 다시 늙은 구름이 흘렀다
이어도
──전설
바람이 천개의 바다를 뒤집던 날
돌아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리던 할머니
늙은 바다 속으로 입술을 집어넣고
바위섬이 뱉어낸 토막말을 받아먹고 살았다
수평선 위에 초승달을 띄워 놓고
날마다 “이어도 사나”를 부르며 노를 저었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묻지 않았다
아니 태어난 곳이 어딘지 묻지 않았다
물살 깊숙이 숨겨놓은 피안의 섬
해진 치마*에 남은 몇 개의 돌덩이로 만든 미완의 섬
이어도가 설문대할망**의 치맛자락 안쪽이란 걸 몰랐다
사내를 보내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고팡 속 항아리 뚜껑을 뒤집어서 제단 만드는 일이었다 심지에 불을 붙이고 미친바람을 달랬다 달이 부풀어 오르면 내상처럼 빛나던 눈은 바람코지 앞에서 넘어졌다
올레길에서 앞서 들어서던 뱀을 놓쳐버린 할머니 허물을 끌어안고 아랫목에 누웠다 돌아오지 않는 사내에게 묻고 싶은 말 대신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를 불렀다 이른 저녁 휘파람을 불면 기어나오는 안개 그 너머로 섬이 떠올랐다 젖은 숨비소리를 타고 전생의 악보가 연주되었다 등뼈 아래로 손을 넣어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할머니는 이어도 쪽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설문대할망이 너무 오래 입어서 해진 치마.
**제주에서 선문대할머니를 이르는 말.
야반도주·1
──통영統營
늙은 물살이 치마 끝을 잡아당기면 찻길보다 뱃길이 더 많이 모여드는 곳이 있네 풀어진 바짓단을 밟고 포장마차에 앉아 안주 없는 술 대신 강구안*을 마셨네 취한 신발들은 뱃길을 걸으며 흔들렸네 술국을 마시고 다시 취하면 천 원짜리 몇 장을 수척한 꿈과 바꾸었네
야반도주해서 가고 싶은 곳을 지도에 그려놓고 막차를 타지 못했네 군데군데 깨진 손금이 달 뒤편에 모이면 캄캄한 굴속으로 들어가 길게 누웠네 돌돌 말린 길 안쪽에서 오징어 내장을 빼고 무를 버무렸네 버무려진 여자가 맵싸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 만나는 여자마다 양념에 무쳐서 뒤집어 보고 싶었네 오래된 생광목 꺼내 쪽물을 들였네 물들다 만 바다가 금 간 바지랑대를 물고 속살을 달구었네
벌어진 가랑이를 핥으며 빠져 나간 늙은 물살을 기다리던 곳
내미는 낯선 손마다 제 치마끈을 풀어 쥐어주는 바다가 있는 곳
맵싸하게 버무려진 여자가 있는 곳
통영에 와서는 얇아진 주머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네
아버지의 바다
원초적 슬픔을 간직한 채 섬으로 태어난, 슬퍼서 아름다운 제주도. 제주도를 떠올리면 아픔과 인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역사적 많은 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뎌온 인내와 그 많은 사건들을 피멍들게 가슴에 새긴 제주도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래서 아픔, 인내, 슬픔, 아름다움 등은 같은 선상에 맞닿아 있는 단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한다는 것은 여행지의 슬픈 속살을 만져보거나 아름다움의 뒤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제주도의 해안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해안을 따라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로 음용수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제주도에 못 가보신 분이 있을까? 물론 못 가보신 분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한라산을 등산한다거나, 골프를 치기도 하고, 제주도의 오름을 갔다 왔거나, 올레길을 걸어 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용천수를 직접 마셔보거나 손으로 만져보고, 피곤한 몸을 담가 본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물론 제주도에 가서 용천수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본다면 제주도 사람들은 대부분 용천수가 무엇이냐고 되물어올 것이다. 용천湧泉이란 물이 솟아나는 샘 또는 지하수가 자연 상태에서 지표로 분출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물들이 제주도의 해안선을 따라 해안마을마다 여러 개씩 있다. 그리고 용천수들은 제각각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 언제나 두 말 정도의 물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두말치, 바위 언덕 밑에서 솟아난다는 엉물, 마을의 중앙에 있는 물이라고 해서 정중당물, 마을에서 제일 큰물이라는 뜻의 대물, 큰물, 모래 사이에서 솟아난다고 해서 붙여진 몰래물, 안무기물, 고두물 등 나름대로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올레길처럼 용천수의 이름들을 따라 걸어보는 여행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용천수들을 잘 보존하고 아름다운 이름들을 풀어낸다면 오름과 올레길과 더불어 제주도의 또 다른 관광 아이콘이 될 것이다.
제주도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특히 한라산 근처의 강수량은 다른 지방 같으면 홍수가 될 양인데도 홍수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물줄기를 품어주는 큰 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제나 배를 들어내고 누워있는 내창이 있을 뿐이다. 내창이란 마른 강을 말한다. 그래서 비가 오면 순식간에 건천乾川은 강을 이루며 넘쳐 바다로 흐르거나 한라산 중턱의 곶자왈에서부터 섬을 적시고 어루만지며 섬의 속살로 스며들어 한동안 품어 있다가 핏줄을 따라 흐르듯 흘러 해안가에 다다라 용천수로 솟아난다. 그래서 용천수를 만진다는 것은 제주의 속살을 만져보는 일이며, 용천수를 마신다는 것은 제주의 슬픔을 맛본다는 것이고, 용천수에 몸을 담그는 일은 제주도의 아픔을 함께 한다는 일인 것이다.
서너 살 때쯤으로 기억한다.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비석거리에 있는 점방에서 과자며 사탕을 샀던 일. 그 것이 내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첫 번째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아버지는 군복무 중이셨고 어머니 혼자서 나를 키우며 동생을 낳았다. 기억하기로 동생은 깊은 밤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산통을 느끼면서 고통스러워 하셨고 밖거리에 사는 고모를 불러오라고 했다. 그러나 네 살짜리에게 마당은 너무 길고 무서웠다. 불빛도 없는 마당을 가로 질러가서 “고모”라고 짧게 부르고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중학교 다닐 때로 기억하는데, 장티푸스에 걸려 걸어다니지도 못할 만큼 아픈 나를 등에 업고 아버지는 시내 병원으로 달려가셨다. 그때 아버지의 등이 아주 많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고향집에 가보면 네 살짜리 조그만 발로 걸어가던 마당은 변함없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도 그 집에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친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여러 할머니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셨다. 그런 과정에서 아버지의 마음 깊숙이 생긴 상처가 트라우마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피상적이지만 아버지의 얘기를 시로 쓴 적이 있다.
아버지가 장가 든 얘기라고 했다/ 할아버지를 일본에 두고 건너왔던 바다라고 했다/ 스무 살에 세상 건너는 할머니를 붙잡지 못했다고 했다/ 머구낭방장대*가 곡을 했다고 했다/ 손끝에서 잡히는 가시밭길을 할머니 혼자 걸어가셨다고 했다// 바다를 지고 뭍에 오른 고등어/ 어머니는 소금을 뿌리며 바다를 절였다/ 소금 속에 갇힌 지느러미가 흔들리며/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고등어를 굽다 뒤집을 때 조심하세요/ 뼈를 발라내지 못한 반쪽에서 여러 갈래 길이 쏟아지거든요/ 어느 길로 갈까 한눈 파는 사이/ 엎어진 바다 속으로 모든 길이 갇히거든요/ 한라산이 보이지 않거나,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이 어디냐고 묻지 마세요// 한 번도 솔직하지 못 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 전에 제주도라고 말했다/ 섬에서 한 발짝도 더 내딛지 못 하는 아버지를 두고/ 호적이 인천으로 됐다는 얘기는 더더욱 하지 못했다// 자주 짙은 선글라스를 썼다/ 바다가 고등어 등 위로 눕고/ 가벼워진 오름은 자꾸 위로 솟아올랐다/ 오름에 대해 묻는 이에게/ 대답 대신 늘어진 젖무덤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짚는 지팡이.
──졸시 「껍질에 대하여」
예쁜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큰딸을 위해 장끼의 꼬리에 달린 깃으로 펜대를 만들어 주시고, 그 펜촉에 잉크를 묻혀 대나무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셨던 아버지.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한국 사람의 눈은 가는 반달을 먼저 그리고 아래로 다시 누운 반달을 그리면 된다고 하신 아버지. 그 후 서울에 와서 사는 딸에게 선물하려고 한라산 중턱에서 제주의 바닷바람을 흠뻑 품은 억새를 꺾어다가 소금물에 쪄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 일주일을 말린 억새를 한아름을 가득 가슴에 안고 공항에 내리셨던 아버지. 원래 아버지는 로맨티스트셨다. 그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내가 지금 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짧지만 이 글로 아버지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 드리고 싶다.
김양숙 /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금은 뼈를 세우는 중이다』가 있고 제2회 한국시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