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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현장에 바람 잘 날이 없기는 하지만,
오늘도 참으로 해괴한 문제로 유가족들과 신부님들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오전에 경찰 근무교대를 서면서부터 준변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의경이 아닌 '직원' 근무자들 이었습니다.
남일당 현장은 경찰에 의해서 다섯 명의 철거민들이 희생당하고,
아직도 장례도 못 치루는 유가족들이 상주하는 곳임으로
경찰들은 최소한 도의적인 책임을 갖고서라도 정숙, 조신하는 것이 적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직원 근무대는 아침부터 어수선하게 웅성거렸습니다.
과거 근무자들과 달리 길거리 중간까지 나와서 3열 종대로 서서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남일당 옆 거리를 3열 종대로 서서 위세를 떠는 경찰의 모습]
참으로 답답한 경찰들의 모습입니다.
급구 부인해서 자신들의 과오로 철거민들 다섯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300일 전 돌아가신 희생자들에 대해서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감이라도 느낀다면,
길 한쪽에 조용히 서서 근무서면 될 일을, 저렇게 길 중간에 나서서 위세를 떨면서
도발을 해야 직성이 풀렸나 봅니다.
더군다나 이 경찰들은 현장에서 작전지시를 하는 중에,
“사람들이 뭐 옮기려고 하면 무조건 뺏어”라고 하는 얘기를 레아 2층에 있는
시민의 귀에 들리도록 크게 이야기 합니다.
하여 ‘말 소리 좀 조용히 하시라’고, 1차로 주의를 줬습니다.
잠시 후 유가족인 김영덕 여사가 지나가는데 길 중간에 경찰들이 서 있기에
이에 대해서 (평소 하던 대로)“한쪽에 좀 서 있어라”고 얘기하자,
경찰들은 들은 체도 안습니다.
그리고는 “안보이니 좀 이쪽으로 나와서 보자”하면서,
평소 근무서던 반대편 길에까지 나오는 도발을 보입니다.
이에 김영덕 여사가 따져 묻자, 경찰은 “시비걸지 마요!”라며 “씨발”이라고 덫붙입니다.
하지만 김영덕 여사는 괜히 소란 피울 듯해서 그냥 남일당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도 경찰들은 계속 길 중간에 서서 위세를 떨고 있었고,
“좀 한쪽으로 가서 서 있으라!”고 항의하는 시민에게도 “씨발”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하여 이 상황을 들은 신부님들과 전철연 식구들과 유가족들이
도저히 참아서는 안된다고 판단해서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터집니다.
시민들이 경찰에 대해서 항의를 하는 중에 뒤쪽에서 경찰이 채증을 합니다.
이에 신부님이 채증을 못하도록 제지하려 하자,
경찰이 문정현 신부님의 몸을 잡아 쓰러트립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경찰에게 잡혀 옆으로 쓰러져 구르는 모습]
수염이 허연 칠순의 어르신을 길바닥에 쓰러트리는 것이 바로 대한의 경찰입니다.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이러한 어르신의 대접을 안 해주니,
경찰들도 ‘개새끼’ 소리 듣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 때 ‘대추리’에서는 경찰청장 급이 문정현신부님 옆을 붙어 다니면서
혹시나 의경들이 손을 대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늘 주의시켰다고 합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신부님 배려 차원에서 지시를 내렸겠지요.
그런데 이 정권 들어서는 이제 갓 이십대의 의경이나 전경이 시도 때도 안 가리고
신부님을 밀치고, 팔다리를 꺾고 넘어트리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신부님도 더더욱 분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다보니 계급이 높은 ‘나이든’ 경찰들을 본 ‘젊은 시민들’이 삿대질 하면서
‘개새끼’ ‘소새끼’하며 욕설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대우를 해 주지 않으니 똑같이 대우해 주는 것이지요.
경찰이 신부님을 쓰러트린 직후,
한 시민이 달려와 문정현 신부님을 쓰러트린 경찰에 항의를 하자,
다른 경찰이 달려와서 그 시민을 넘어트려 또 바닥을 구르게 했습니다.
이에 유가족들과 전철연 식구들과 시민은 계속 항의를 했지만,
담당 경비과 직원들은 ‘모르겠다.’, ‘문정현신부님 혼자 넘어졌다’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잡아서 넘어트리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보았는데,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경찰이 욕을 먹습니다.
[“문정현 신부님 혼자 길에서 넘어졌다”고 얘기하는 용산경찰서 경비계 계장]
사건 직후, 경찰들은 레아 건물 좌우로 쇄도해서 길을 봉쇄합니다.
그리고 일절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들의 사과는 없다고 합니다.
[레아 건물 좌우를 가로막은 경찰들]
한참의 분란이 있은 후, 유가족과 신부님, 전철연식구와 시민들은
원래 경찰들이 근무 서던 곳에서 밀어내고 그곳에 고구마 통을 세웁니다.
[용산참사 이후 경찰 근무지를 시민이 차지한 것은 처음 일]
문정현 신부님은 “참사 300일이 되는 날까지 이렇게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경찰의 행태를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곳 경찰 근무지를 기필코 사수하시겠다며,
단호한 결의로 칼바람이 몰아치는 이곳 용산 4구 골목에 자리를 깔고 앉아 계십니다.
지금 2009년 11월 15일 오후 두시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이 자리에 경찰이 근무 설수 없게 하겠다”시며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시는 신부님]
* 상복을 입은 유가족에게 경계 서는 경찰이 “씨발”이라고 욕을 하고,
20대 경찰이 칠순의 신부님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담당 지휘관은 “모른다”, “신부님이 혼자 넘어졌다”고 변명해서 대충대충
사건을 무마하려하고...
지금 용산에서 빚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
첫댓글 민중과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촛불이 불타오르길..........
안타깝게도 촛불은 나와 상관없는 남을 위해 타오르지 않습니다.
참 답답한 현실이군요...ㅠㅠ
대추리 바람이 몹시 매서웠는데 용산바람도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참혹한 현장이라서 더욱 춥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젠 왜그리 추웠는지요. 춥고 매서운 곳에 노구의 신부님을 남겨놓고 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신부님 건강이 안좋다는 말씀을 들었는데..그새 다시 참사현장을 지키고 계시군요..이정권에서는 용산은 남의 나라 일인가봅니다..
대추리는 해방공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너른 들과 노을이 있었지요. 용산은 참혹한 현장과 아스팔트. 매연, 눈뜨면 악다구니로 덤비는 경찰과 용역이 있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저만 보면 힘들다. 외롭다. 아프다 하십니다.ㅠㅠ
부끄러운 왜나라당과 부끄러운 정권이 숨기고 감추고 싶은 곳에 사람사는 세상이 있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