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관객'을 위해 만들어져야
지난 14일 강남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한 KBS 김의수 PD의 친동생이 "형의 자살시도는 KBS에 원인이 있다"고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김 PD는 KBS와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방송영화 제작지원 사업' 의 제작 PD로 선정되면서 올해 초부터 스태프와 배우를 섭외하는 등 본격적인 영화제작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김 PD는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시나리오를 반 이상 수정하는 등 계획에 차질을 보이자 심한 압박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김 PD의 가족이 공개한 유서에 의하면, 김 PD는 KBS 제작팀으로부터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는 달리 의상이나 세트 지원을 거절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제작비가 줄어들면서 스태프에게 줄 임금조차 청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퇴직금과 회사에서 나오는 위로금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자신이 죽은 뒤 전세금을 빼서 밀린 임금을 나눠주라는 말을 유서에 남겨서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영화판은 비정하다 공중파 방송 PD가 ‘극장용 영화’도 아니고 ‘방송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작비를 조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은 다소 충격적으로 들린다.
유서를 읽어 보면 김 PD가 자살한 배경에는 ‘예술갗로서의 고민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자식의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거나 TV문학관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이 엿보인다.
또한 작품에 너무 깊게 몰입하여 객관성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영화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어제오늘 있어온 일이 아니다.
‘영화판’의 제작자들이 일컫듯 ‘영화는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고 할 정도로 불안정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
중견감독으로 알려진 여균동 감독은 지난 8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시장을 보고 있으면 공포감이 든다"며 비운의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여 감독도 김 PD처럼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3억원을 지원받아 ‘저예산 극장영화’를 제작했었다.
그가 만든 영화 ‘비단구두 사가지고’는 배급사를 못 찾아 극장에 내걸지 못했고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 3명이 밀린 임금을 달라며 여 감독 재산에 가압류를 신청하는 등 진퇴양난에 빠지기도 했다.
여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꽤나 유명한 영화감독으로 알려졌지만 1994년 '세상밖으로'로 데뷔한 이후 지난 10여 년간 장편영화를 고작 5편밖에 찍지 못했고, “한국의 중견감독이 집도 없고 절도 없고, 무엇보다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며 절망적인 심정을 담담하게 전하기도 했다.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감독인 여 감독도 그런 현실이니 입봉도 하지 않은 김 PD가 10억이 넘는 제작비를 조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독립영화로 성공하거나, 자살하거나 김 PD가 지원받은 5억은 극장용 영화에서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지만 독립영화나 120분 드라마 제작비로 볼 땐 상당히 큰 금액이다.
극장용 영화는 스케일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5억원의 저예산 영화로 극장에 내걸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KBS의 방영이 결정된 만큼 탄탄한 영화를 만드는데 주력했더라면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시장에 내 놓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김 PD가 제작하려던 영화는 거대자본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독립영화’로 부를 수는 없지만 제작비가 적은 ‘저예산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독립영화 제작자 입장에서 보자면 5억원의 예산은 영화 2~3편은 족히 제작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김 PD가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험한 제작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감독’으로서의 자질부족 이전에 방송계와 영화계의 열악한 현실이 엿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어차피 ‘돈’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나 ‘돈’은 작품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람이 만드는 예술이다.
어떤 감독이 제작했는가, 어떤 시나리오인가, 어떤 배우를 썼는가가 중요하다.
좋은 시나리오 작가나 좋은 배우는 인지도나 개런티로 결정되지 않는다.
개런티나 스타성이 반드시 관객동원력에 비례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교과서적인 상식을 뒤엎고라도 영화는 감독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이전에 ‘관객’을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돈’은 결국 관객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은 개런티 비싼 배우와 스케일 큰 영화를 좋아한다.
여기서 김 PD의 딜레마가 엿보인다.
김 PD의 쾌유를 빈다! 정희옥 기자[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신문-업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