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진보집단, 염치조차 상실...이제 그 외투 벗는다”
김자아 기자
입력 2023.04.24. 15:08업데이트 2023.04.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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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연합뉴스
노동운동가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탈(脫)진보를 선언했다. 한 총장은 민노총에서 조직실장과 사회연대위원장, 비상대책위원 등을 지낸 노동운동가로 살아왔다.
한 총장은 24일 ‘나는 이제 진보 외투를 벗는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매일노동뉴스에 냈다.
기고문에서 한 총장은 “남들은 진보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되지 외투까지 벗을 필요가 있냐 했다. 한석호가 보수로 넘어갔다는 비난도 따랐다”며 “한편 자신도 하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 했다며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젊은 시절의 나는 진보와 보수를 선과 악으로 구분했다. 그러다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반인권·반환경·불평등 심화 등이 자본주의 못지않다는, 감춰진 사회주의 운동사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접했다”고 했다. 이어 “보편복지를 진보가 아닌 보수가 열었다는 역사를 배우면서, 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접하고서, 이리저리 세상 경험이 쌓이면서 선악 구분법을 버렸다”며“그러면서도 진보 외투를 벗지는 않았다. 진보는 진보의 오류를 성찰하며 진보 가치를 올바르게 실현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제는 그만, 진보 외투를 벗는다. 최소한 대한민국 안에서는 진보 외투를 걸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대통령 욕해도 감옥가지 않아…87체제 역사적 소명 다했다”
탈진보를 선언한 이유에 대해 한 총장은 “이른바 ‘87체제’는 탄핵 촛불과 문재인 정부를 끝으로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했다.
이어 “’87체제’를 규정한 핵심 특징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였다.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의 전신은 반민주의 상징이었고, 진보를 대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의 상징이었다”며 “그랬던 두 세력의 상징성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누구나 대통령을 욕하고 시위를 해도 감옥에 가지 않을 만큼 시민 민주주의가 정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가 아직도 국민의힘을 반민주로, 민주당을 민주로 착각하는 것은 ‘87체제’의 관성이 만든 착시일 따름”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진보 대표 민주당…도덕성마저 상실”
특히 한 사무총장은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는 “대한민국 진보 진영의 사회적 대표성은 민주당에 있다. 인물의 대표성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조국(전 법무장관)에게 있다. 민주당은 도덕성마저 상실했고 조국은 내로남불의 상징이다. 진보 이미지는 오염될 대로 오염돼 버렸다”며 “그 상황을 타개하려면 진보진영 내에서 진보의 가치를 다시 세우려고 성찰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전히 일각의 진보 정치인·지식인·언론인 등은 그들을 옹호하고, 다수는 침묵하고 알리바이 면피성 대응에서 그친다”고 했다.
이어 “진보를 통한 출세의 미련, 얽히고설킨 관계, 민주당과 조국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기에 상황을 무시해도 된다는 비사회적 인식, 국민의힘이 더 큰 적이라는 ‘87체제’의 잔영 따위가 작동해서 나타나는 서글픈 상황”이라며 “그 상황에서 소수가 몸부림치며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역부족이고, 되레 외톨이가 되거나 미친놈 취급받는 형국”이라고 했다.
◇”체제에 안주하는 진보…염치조차 상실한 집단”
한 총장은 한국의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처럼 체제에 안주하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는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소외계층이 체제 불안요소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따뜻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비해 진보는 급격한 변화도 마다하지 않고 체제를 바꾸려 한다. 그래서 가치를 중시하는 냉철함을 특징으로 한다”며 “그런데 진보가 냉철함을 버리고 체제에 안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상위 10%가 총소득의 절반 가까이 점유하는 심각한 불평등 국가다. 하위 50%를 향한 상위 10%의 양보와 나눔이 필요한 사회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더는 높아지지 않도록 해당 구간에 대한 증세도 시급하다”며 “그러나 보수와 함께 상위 10%를 분점한 진보는 하위 50%에게 양보하고 나눌 의향이 없다. 상위 10% 구간에 대한 증세 생각도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조국 사태에서 확인하듯, 불평등한 성채 안의 삶을 더 공고히 하고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표창장을 위조하는 등의 반진보 행위를 옹호하는 암담한 상황도 벌어진다”고 했다.
특히 한 총장은 “보수는 사회적 위법 상황이 발생하면 꼬리라도 신속하게 자르는데, 진보는 옹호하거나 뭉개는 대응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진보 스스로 자신을 사회적 염치조차 상실한 집단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평등 가치를 실현하기는커녕 불평등에 안주하거나 심화하는 데 일조하는 그런 진보, 진영논리로 대통령 부인을 조롱하며 여성 인권을 훼손하는 그런 진보, 주장만 선명하고 삶은 자본에 철저하게 포섭된 그런 진보, 반 국민의힘 전선이 진보의 모든 것인 양 사고하고 행동하며 진보의 가치를 훼손하는 그런 진보, 고작해야 ‘조중동’ 인터뷰 안 하는 것을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진보, 더는 그런 진보 외투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기고 전문
얼마 전 페이스북을 통해 운을 띄웠다. 남들은 진보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되지 외투까지 벗을 필요가 있냐 했다. 한석호가 보수로 넘어갔다는 비난도 따랐다. 한편 자신도 하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 했다며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욕먹을 것 뻔히 알면서도 진보 가치를 다시 세우려는 특유의 싸움 방식 아니겠냐며 이해한다는 반응도 있었다.젊은 시절의 나는 진보와 보수를 선과 악으로 구분했다. 그러다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반인권·반환경·불평등 심화 등이 자본주의 못지않다는, 감춰진 사회주의 운동사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접했다. 또 보편복지를 진보가 아닌 보수가 열었다는 역사를 배우면서, 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접하고서, 이리저리 세상 경험이 쌓이면서 선악 구분법을 버렸다. 그러면서도 진보 외투를 벗지는 않았다. 진보는, 진보의 오류를 성찰하며 진보 가치를 올바르게 실현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 진보 외투를 벗는다. 최소한 대한민국 안에서는 진보 외투를 걸치지 않으려 한다.
이른바 ‘87체제’는 탄핵 촛불과 문재인 정부를 끝으로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 ‘87체제’를 규정한 핵심 특징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였다.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의 전신은 반민주의 상징이었고, 진보를 대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의 상징이었다. 그랬던 두 세력의 상징성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누구나 대통령을 욕하고 시위를 해도 감옥에 가지 않을 만큼 시민 민주주의가 정착했다.
민주주의 성숙도를 떨어뜨리는 대표 영역이 정치인데, 그 점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도긴개긴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아직도 국민의힘을 반민주로, 민주당을 민주로 착각하는 것은 ‘87체제’의 관성이 만든 착시일 따름이다. 달은 이미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월출의 강렬한 기억에서 멈춰 버린 손가락이 아직도 동쪽을 가리키며 손가락에 때가 끼고 굳어 버린 것일 따름이다.대한민국 진보 진영의 사회적 대표성은 민주당에 있다. 인물의 대표성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조국에게 있다. 민주당은 도덕성마저 상실했고 조국은 내로남불의 상징이다. 진보 이미지는 오염될 대로 오염돼 버렸다. 그 상황을 타개하려면 진보진영 내에서 진보의 가치를 다시 세우려고 성찰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전히 일각의 진보 정치인·지식인·언론인 등은 그들을 옹호하고, 다수는 침묵하고 알리바이 면피성 대응에서 그친다. 진보를 통한 출세의 미련, 얽히고설킨 관계, 민주당과 조국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기에 상황을 무시해도 된다는 비사회적 인식, 국민의힘이 더 큰 적이라는 ‘87체제’의 잔영 따위가 작동해서 나타나는 서글픈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소수가 몸부림치며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역부족이고, 되레 외톨이가 되거나 미친놈 취급받는 형국이다.
보수는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소외계층이 체제 불안요소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따뜻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비해 진보는 급격한 변화도 마다하지 않고 체제를 바꾸려 한다. 그래서 가치를 중시하는 냉철함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진보가 냉철함을 버리고 체제에 안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상위 10%가 총소득의 절반 가까이 점유하는 심각한 불평등 국가다. 하위 50%를 향한 상위 10%의 양보와 나눔이 필요한 사회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더는 높아지지 않도록 해당 구간에 대한 증세도 시급하다. 그러나 보수와 함께 상위 10%를 분점한 진보는 하위 50%에게 양보하고 나눌 의향이 없다. 상위 10% 구간에 대한 증세 생각도 없다. 심지어 조국 사태에서 확인하듯, 불평등한 성채 안의 삶을 더 공고히 하고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표창장을 위조하는 등의 반진보 행위를 옹호하는 암담한 상황도 벌어진다.
보수는 사회적 위법 상황이 발생하면 꼬리라도 신속하게 자르는데, 진보는 옹호하거나 뭉개는 대응을 되풀이하고 있다. 진보 스스로 자신을 사회적 염치조차 상실한 집단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평등 가치를 실현하기는커녕 불평등에 안주하거나 심화하는 데 일조하는 그런 진보, 진영논리로 대통령 부인을 조롱하며 여성 인권을 훼손하는 그런 진보, 주장만 선명하고 삶은 자본에 철저하게 포섭된 그런 진보, 반 국민의힘 전선이 진보의 모든 것인 양 사고하고 행동하며 진보의 가치를 훼손하는 그런 진보, 고작해야 ‘조중동’ 인터뷰 안 하는 것을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진보, 더는 그런 진보 외투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진보 외투를 벗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