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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그러나 적자 상태가 지속돼 미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준비자산으로서 신뢰도가 저하되고 고정환율제도 붕괴될 것이다.”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1927~1993). 벨기에 출신의 미 예일대 교수로 1950년대부터 1993년까지 왕성히 활동한 경제학자. 인플레이션과 리세션(경기후퇴)의 합성어인 ‘인페션(Infession)’이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유럽통화기금과 유럽중앙은행 창설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달러를 대체하는 세계통화와 세계중앙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서 <금과 달러의 위기: 태환의 미래(Gold and the Dollar Crisis: The Future of Convertibility)>를 통해 트리핀의 딜레마를 역설했다.
베네치아공화국의 두캇(Ducat), 네덜란드의 길더(Guilder), 대영제국의 파운드(Pound). 이들 화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다시 말해 국제무역에서 사용되었던 국제통화들입니다. 지금은 달러(Dollar)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를 기축통화라고 하지요.
한자로는 ‘基軸通貨’라고 쓰며, 영어로는 ‘key currency’라고 합니다. 한자어 ‘축’은 어떤 활동이나 회전의 중심부 또는 동력을 전달하는 기계부품을 의미합니다. 즉 기축통화란 국경을 넘나드는 경제활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중심축을 이루는 통화라는 뜻입니다. 영어 표현도 마찬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용어는 벨기에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교수가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1942년 미국으로 귀화해 예일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1960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한 연설과 저서를 통해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내포한 문제점을 역설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 기축통화 달러의 ‘돈 찍어 돈 먹기’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UN통화금융회의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결정합니다. 물론 반대도 만만찮았지만 미국은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게 됩니다. 미국이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 나라의 통화를 기축통화로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세뇨리지(seigniorage) 효과’, 즉 주조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세뇨리지란 화폐의 액면 가치와 실제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 간의 차익을 말합니다. 예컨대 40센트를 들여 100달러짜리 화폐를 찍어내면 정부는 99달러60센트를 거저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 내에서만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적용되는데 기축통화를 찍어내는 미국은 앉아서 막대한 세뇨리지를 누리게 됩니다. 미국이 누리는 세뇨리지 효과는 연간 150억 달러 이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발권국인 미국은 통화발행의 권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대외정책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직후 벌어진 자본주의 살리기 작업인 유럽부흥계획은 미국의 막대한 달러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를 통해 미국은 명실상부한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지위를 갖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비용이나 베트남, 이라크 전쟁처럼 미국의 이익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에 소요되는 막대한 전비 역시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연방준비제도)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권위 있는 군축관련 연구기관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07년 미국의 군사비 지출액은 6,280억 달러(전 세계 군사비 1조2,000억 달러 중 45%)로 나머지 상위 14개국의 총액을 초과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기축통화 발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세뇨리지라는 경제적 이익은 물론 정치, 군사적 패권전략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맘껏 사용해 왔던 것입니다.
■ 트리핀의 딜레마, 달러의 저주
그렇다면 이와 같은 미국의 이익은 무한정 계속될 수 있을까요? 미국으로서는 대단히 아쉽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트리핀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의 주장은 아주 단순합니다. 달러가 세계 무역거래의 결제화폐로 사용되기 위해서 미국은 언제 어느 때나 달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공급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세계의 무역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달러의 공급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만약 미국이 적자를 줄인다면 달러공급이 중단되거나 줄어들어 트리핀 교수의 말대로 세계무역거래는 커다란 혼란에 빠지거나 위축되고 말겠지요.
거꾸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경기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달러화의 과잉 공급으로 말미암아 달러가치가 점차 하락해 결국 기축통화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기축통화 공급 시스템이 세계경제의 불균형과 왜곡의 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주 거론되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s)’과 미국의 과소비가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중앙은행(Fed)에서 찍어낸 달러로 외국 상품을 수입하고 수출국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물건을 판매합니다. 즉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방출한 달러가 수출주도 성장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죠. 세계 제일의 수출국가인 중국은 작년 한 해 대미 무역흑자액이 1,780억 달러에 이릅니다.
적자가 계속되면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와서 메워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더미에 올라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경상수지 적자는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년에 GDP 대비 6%(7,636억 달러)에 이르렀다가 2008년에 4.9%로 약간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위기에 따른 소비 위축과 수입 감소로 인한 것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이라는 것은 빚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능력보다 5% 이상을 과소비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재정적자는 더욱 심각합니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2010년도의 재정적자가 1조3,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GDP의 10%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문제는 현재의 금융위기로 인해 적자 폭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 세계 최고의 빚쟁이, 미국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이 빌린 빚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월5일, 미 연방하원은 정부의 부채한도를 증액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 정부의 국가부채가 12조3,000억 달러로 법정한도에 육박하자 국가 부도를 방지하기 위해 법정 부채한도를 늘린 것입니다. 이로써 미국의 빚은 GDP의 90%에 육박하는 수준, 원화로 환산하면 우리가 말로만 들어왔던 ‘경(京)’이라는 단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결국 신용평가기관인 피치나 무디스는 미국에게 재정적자를 줄이지 않으면 신용등급(현재는 최고등급인 AAA)을 강등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계 최강의 나라인 미국은 외국으로부터의 빚에 의존해서 경제를 지탱해 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빚을 내 과소비를 하고 미국에 싼 물건을 판매한 수출국들은 벌어들인 달러로 미 국채를 매입해 미국의 빚을 보전해 준 것입니다. 결국 수출국가의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로 미국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독점 자본가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세계적 착취구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최대의 수출국가인 중국이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액은 2009년 말 2조4,000억 달러에 이릅니다.최근 들어 미국이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미 국채를 한 순간에 시장에 내놓는다면 미국 달러의 가치는 붕괴될 것이며 그에 따라 미국 경제도 파탄을 맞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국처럼 막대한 달러표시자산을 보유한 나라(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됩니다.) 역시 그러한 파국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보유한 미국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뿐더러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 자국의 수출을 늘려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거대 수출시장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 현상은 트리핀의 딜레마가 지적한 달러의 숙명이라는 사실이지요.
■ 영국도 트리핀 딜레마 극복 못하고 기축통화 자리 내줘
그렇다면 이러한 불균형과 세계경제의 왜곡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날고 긴다는 수많은 전문가들도 이 문제에 대해 ‘대안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트리핀의 딜레마는 기축통화국이 직면하게 되는 필연적인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영국의 파운드화도 기축통화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도 이 딜레마를 견디지 못해 결국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기축통화의 지위를 내주었습니다. 달러 역시 가치폭락을 이기지 못해 1971년 일방적으로 ‘달러의 금태환 중단’(닉슨 쇼크)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적자가 줄어들지 않자 1985년에는 당시 최대의 대미수출국이었던 일본(엔화)에 평가절상 압력(플라자 합의)을 가해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숙명처럼 미국을 괴롭히고 있는 달러의 저주가 극단적으로 불거질 때마다 미국은 강력한 패권을 배경으로 이를 돌파해 왔던 것입니다.
최근 들어 미국이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군말 않고 수용했던 일본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중국의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인정하라면서 달러의 유일 지위를 위협하는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두 거대제국의 충돌을 관망만 하기에는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력과 파급력이 대단히 크기에 새로운 국제통화질서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저자> 여경훈님
■참고- 차이메리카'의 신호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보완관계를 상징하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신조어를 만든 경제사학자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최근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달러 단일패권시대는 분명 끝나고 있다"라고 명백하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빈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퍼거슨 교수는 "중국 지도부 내부에서는 당장이라도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해 위안화의 기축통화 만들기에 나서자는 주장도 있으며, 이런 환율정책의 급변은 10년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되면 위안화는 지금의 유로화에 버금가는 위상을 확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달러 외에 위안화를 포함해 최소 2~3개의 통화가 기축통화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급성장하는 중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이는 위안화의 지위를 점점 공고히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추세대로 간다면 중국이 경제패권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주장을거부할 수가 없다. 중국은 점점 환율규제를 없애고 위안화를 자유롭게 환전 가능한화폐로 만들려고 할 것이며, 만약 중국이 자유변동환율제를 선택한다면 그 파장은 쉽게 예측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세계 석학들은 말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간 상태다.
이런 기회에 리스크를 감수하며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자는 주장도 중국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달러화의 독보적인 지위가 무너지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 듯 하다.
이제까지 10년간 양대 통화가 달러화와 유로화였다고 한다면, 이제 몰락하고 있는 유로화를 대신해 위안화가 차지할 시기와 파장을 생각해 둘 때다.(국제경제부장)
■ 인터뷰 내용
http://economy.hankooki.com/lpage/worldecono/201007/e2010072610440269760.htm
-팍스시니카(Fax Sinica)는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봅니까.
지금 아시아의 상황으로 봤을 때 중국은 충분히 아시아 지역에서 높은 지배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급성장하는 중국 수출에 의존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배적인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 어떻게 공존할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중국이 지배적 영향력을 가진 것은 200년 만의 일이기 때문에 이건 아주 새로운 상황입니다. 한국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일본에는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달러패권이 유지되는 한 중국의 패권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중국이 경제패권을 차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중국은 점점 환율규제를 없애고 위안화를 자유롭게 환전 가능한 화폐로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올해와 내년은 아니지만 중국은 그렇게 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자유변동환율제를 선택한다면 그 파장은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의 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국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갔습니다. 중국은 오는 2020년께로 예상했던 곳에 지금 서 있습니다. 중국의 급진적 고위층은 리스크를 감수하며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자고 합니다. 보수인사들은 너무 리스크가 크니 그런 상황까지 몰고 가지 말자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중국만큼 크고 영향력 있는 국가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축통화가 여러 개 설정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20년대 당시 파운드가 기축통화였을 때도 달러가 그에 맞먹는 힘을 가졌습니다.
-달러 단일 헤게모니는 끝나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달러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달러 외에 적어도 2~3개의 화폐가 추가로 기축통화 역할을 할 것입니다. 현재 달러는 거의 위험부담이 없는 화폐처럼 여겨지지만 미국의 재정상황은 너무 불안합니다. 달러만이 유일한 기축통화인 현재 상황은 아주 오래 유지되지 않을 것입니다. 시장은 언젠가 미국의 부채와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질겁할 것입니다. 달러 패권주의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더 이상 2차 대전 직후와 같은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자원이 없습니다. 미국은 점점 약해지는 추세이고 미국에 큰 선택권은 없습니다.
-앞으로 위안화가 달러의 최대 라이벌로 떠오르는 겁니까.
그럴 것입니다. 유로화는 달러의 경쟁통화가 될 기회를 놓친 데 반해 중국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아마 10년 이내로 중국 환율제도에 큰 변화(자유변동환율제 채택)가 있을 것입니다. 위안화가 현재 유로화의 위상을 확보할 기회를 맞는 것이지요.
원문
http://economy.hankooki.com/lpage/worldecono/201007/e20100726104402697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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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런거였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