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8. 열여섯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조용림 권사, 염성섭 장로, 이원준 장로, 하경숙 권사(549)
성경말씀 마가복음 1:1~8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3시부터 행복한 성도 되세요.
찬송 210 내 죄 사함 받고서
광고 코로나 19 전수 검사 협조에 감사(이명숙 간호사께 감사)
임순옥 집사님 병원 입원(임파선 암 진단 검사차)
찬송 209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요즘 목사인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심었던 느티나무 그늘에 서서 요양원 증.개축 공사를 지켜보느라
얼굴이 새까맣습니다.
우리 백춘자 권사님께서 새카맣게 그을린 제 얼굴을 보고 안타까워서
목사님 모자 쓰고 일하세요.
목사님을 이렇게 사랑하시는 우리 권사님들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느티나무 그늘에 서서도
느티나무가 초록초록 우거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메마른 가로수는 벌써 초록색 여름옷으로 새 단장 했습니다.
오늘 가시는 길에 우거진 숲들을 보시며
산소같은 신선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절,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첨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절,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절,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절,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8절,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요즘은 이런 습관이 생겼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우리 강순옥 집사님께서 김밥과 녹차를 제 책상 위에 얹어 놓습니다.
예배 준비하면서 힘내시라고
그리고 좋은 복음 주시라고 격려를 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 강순옥 집사님이 오시지 않는 토요일이면
강순옥 집사님이 길들여 놓은 습관 때문에
제가 김밥을 사다 놓습니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길들인다는게 무슨 뜻이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넌 아직 내겐 수많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아.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1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는 마태, 누가, 요한복음서 중에서
복음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제자입니다.
마가복음에는 661개의 문장이 있습니다.
그중에 600문장이 마태복음에,
350문장은 누가복음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마가복음이 네 복음서의 원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복음서의 원석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뭡니까?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입니다.
4절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일 거야.
어린 왕자의 말을
이렇게 다시 인용합니다.
광야가 아름다운 건
세례 요한의 고독한 외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극기주의자였습니다.
극기주의克己主義 stoicism은
도덕적, 종교적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
정신적, 육체적인 욕망 및 세속적 명예나 이익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자신과 싸우며 살았습니다.
6절입니다.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요즘 방송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가 인기입니다.
복잡다단複雜多端한 도시 생활을 접고
나 홀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의 로망입니다.
당시 세례 요한은 깊은 산속은 아니었지만
요단강 가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사는 자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풍자도 있습니다.
산다는 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아~ 하하하하~
세례 요한은 타락한 세상을 향해서 금욕적인 절제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 예루살렘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요단강에서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당시 세례 요한은 엄청난 정신 계몽운동가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9절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의 세례는 회개, 자기성찰이 전제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세례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회개입니다.
누가복음 3장 11절입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이렇듯 요한의 세례는 양심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연세대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도대체 신학이 무엇인가? 의문이 많았습니다.
회의감도 있었습니다.
결론은 신학은 인간학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목사인 제가 세례 요한의 삶에 대해서만 설교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예수님의 삶의 이야기만 설교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앙꼬없는 찐빵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목사인 제 삶의 모습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인 저는
매주 토요일 커다란 창문 앞에 앉아서 설교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커다란 슬픔이 있습니다.
한 주를 잘 살았을까?
Who am I ?
요즘 요양원 리모델링 일로 극도로 피곤하고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그래서 목소리가 한없이 높아졌습니다.
엊그제 지붕판넬 자재 때문에 서수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커다란 공장 사무실에 젊은 청년 둘이 앉아 있었습니다.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은 속삭이듯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명료하게 들렸습니다.
그 순간 저의 거친 목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창문 앞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으며
슬픔에 잠겼습니다.
어린 왕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drunkard.
술고래였습니다.
왜? 술을 마시나요?
잊으려고.In order to forget.
무엇을 잊고 싶은데요?
부끄럽다는 것을 잊고 싶구나.To forget that I am ashamed.
I am ashamed of drinking!
그가 술을 마신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우리 유태규 집사님도 알콜릭입니다.
그래서 간경화에 체장암입니다.
그래서 요즘 말이 전혀 없고 우울합니다.
그리고 우리 진인섭, 이재열 성도님도 알콜릭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알콜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도취해 얼마나 자만합니까?
그래서 목사인 저는 괴롭습니다.
목사인 제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대의 최고 인기가 많았던 세례 요한은 전혀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7절입니다.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어떻게 이렇게 겸손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당대 최고였던 세례 요한이
전혀 이름도 없는 예수님을 대하시는 모습이 신발 끈을 풀어주는 종의 모습입니다.
정말 인간이 이렇게까지 겸손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인 제가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을 만나려면 여러 경로를 거쳐야 합니다.
비서실, 행정 목사 등을 거치고 거쳐야 합니다.
참~ 하하하하~ 웃지요.
이럴 때 어린 왕자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봐야만 똑바로 보이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운 것입니다.
정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약에 오늘 오후 네 시에 주님이 온다면,
우리가 세시부터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3시부터 행복할 수 있는 좋은 성도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