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와 앙샹 레짐(Ancien Régime 舊體制)
자다가 중간에 잠을 깨었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더 자야할까? 에라! 뭐하려고... 그래도 아인슈타인 만큼은 잤을거니. 티비를 켜니 전원일기를 방영 중이다. 요즘은 어느 채널에서 연속 방영이다. 1,000회가 넘으니 하루 세편이라도 1년을 때울 것이다.
내가 아직도 자주보는 전원일기, 노총각 명석이가 장가를 갔는데, 동네 친구들이 신혼여행에 따라 나섰다. 그게 말이 되냐고? 안될 것도 없어 보인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신혼여행이니 호텔에 숙소를 잡자는 남자들, 그러나 여자는 펜션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여자는 호텔에서 자면 좋는 꾸느냐며, 친구의 회원권을 빌려 반값에 구했단다. 그래도 석굴암, 첨성대 등 구경은 다 할거란다.
마트에서 식재료 사다가 직접 음식을 해먹는데, 취사는 남자들 몫일 수 밖에 없다. 밤에 나이트를 가서 함께 춤을 추다가 같이 부루스를 추자고 접근한 여자의 뀀이 빠져 응삼이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내가 전원일기를 보는 이유는 드라마의 내용에 흥미를 느껴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 정신을 두면서 깔아놓은 밑밥이다. 집중력 약한 학생이 공부를 하면서 라듸오를 켜두는 것과 같은 행동이랄까? 나는 찐하게 공부를 해본적도 없지만, 라듸오를 켜는 스타일이에 속한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으니 굳이 화면을 보지 않고 글을 쓸 수있어 노느니 염불한다는식이 되고 만다.
또 한가지 드라마가 방영된 시대의 생활상과 현재를 비교하며 조명해 보는 것이다. 농촌엔 자가용 한대없고, 트랙터도 없었지만,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음식 돌리며 나누어 먹던 그리운 시절이 떠오른다.
1980년 부터 2년간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마을 청년들이 내 나이 또래가 중심이었다. 그때의 드라마 출연자들도 이제 더러는 세상을 멀리했다.
드라마에는 양평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자주 나오는데, 주요 촬영지는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일명 전원일기 마을) 이란다. 언젠가 강화도 마니산을 등산하고 돌아오다 시외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던 김포의 양촌면에서 전원일기 촬영지라며 출연진들의 단체사진이 크랗게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우리 사회, 이젠 전원일기속의 그 가슴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국민이 누리고 지켜야할 기본적인 권리.의무 확보는 관심이 뒷전이고, 노력보단 요행을 바라는데 더 큰 관심을 갖는다. 민족의 고유풍습인 줄서기(?)가 유행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나는 안하면서 너는 해라'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내려 놓아라?' 내가 가진 것은 끔찍히도 아끼면서 남이 가진 것은 모두의 것(공유)로 취급하려 든다. 요즘 골치아파하는 주식투자도 떼돈을 벌기위한 투자라기 보다는 안하면 나만 바보된다는 '포모현상'이 더 커다고 하였던가.
'토지공개념'이니 뭐니 하며 개인의 재산을 강탈하려는 심보가 그렇다. 공연히 생겨난 재산이라면 공유물로 매김될 수 있을지언정, 개개인이 피땀흘려 마련한 것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각자도생보다 훨씬 더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은 노동의 유연성과 일자리 확보이다.
요즘 언론에는 프랑스가 많은 뉴스 거리를 제공한다. 프랑스도 끝장이 나는 것 같다. 시청이 불타고, 명품관들이 약탈 당하며, 공공기물이 파손되고 있다. '시위가 아니라 폭동'이라 말한다. 발단은 교육예산의 부족에서 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다지만, 결국에는 일반 시민들이 가세했고, 인근 유럽지역으로 번져 나간다고 전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동안 지속된 포플리즘 정책과 무분별한 이민정책이 주요 원인이라 하였다. 그래서 폭동을 선동하는 무리 중 상당 수가 이민자들에 의해서라니, 미국이 이민자들을 강력히 단속하는 그 이유를 알만하다.
예술의 도시, 세느강과 에펠탑, 시계, 핸드백, 의류의 대명사인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쿠리스찬 디올, 까르띠에, 생로랑, 지방시, 발렌시아가, 셀리너, 고야드...
프랑스에 명품 브랜드가 많은 이유는 17세기 절대왕정 시대부터 이어온 왕실의 사치 산업 육성정책,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한 예술적 차별화, 그리고 파리를 중심으로 구축된 문화적 헤게모니 때문이란다.
프랑스는 일부 첨단 공업제품도 생산하지만, 근원적으로 농업국가이다. 어쩌면 앞의 세계 최고급 명품들이 자국의 원료 생산을 만들졌을 경우도 있겠지만, 좋은 자연환경 때문에 돈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세월이 평생을 가나? 세계 경제가 어렵고 양극화가 심해지니, 돈많은 사람 수는 줄어들고, 남따라 시장가던 충동구매도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땀흘려 일하기 보다는 놀며 즐기는 방향으로 국민성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는 구호를 외칠 필요없이 스스로 나라 살림이 기우는건 뻔한 일이다.
'예술은 길고(비싸고?) 인생은 짧다(빈약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 '프랑스 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은 구제도(앙시앵 레짐)의 심각한 모순과 국가 재정의 파산, 그리고 계몽사상의 확산이었고, 혁명은 1789년부터 1799년까지 지속되었다.
인구의 98%를 차지한 시민 계급, 농민, 노동자 등은 막대한 세금과 봉건적 의무를 부담했으나 정치적 권리는 박탈당했다. 프랑스가 7년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하면서 막대한 전쟁 비용을 지출해 국가 재정이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 왕실의 과도한 사치도 한몫을 했단다.
18세기 루소, 볼테르 등의 계몽사상이 확산되면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 주권재민 사상이 시민들 사이에 퍼졌다. 앞서 성공한 미국 독립 혁명의 영향으로, 구체제를 개혁하고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극을 얻었다. 지금의 사태, 뭐든 해본 사람은 또 할려는 마음을 먹는다. 그 방법과 결과를 알기에 그렇다.
프랑스는 저성장에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외국인 보유 자산이 많다. 담세율은 OECD 평균이 34.3%에 비하여 43.5%로 높다. 세금을 더 올리면 기업이 빠져나가고, 가계 부담이 는다. 여기서 프랑스 혁명이 떠오른다. 지출 중 사회보장비 예산이 많고, 연금비율이 14.1%로 높다는 일본의 9.1%보다 더하다. 특히 보건의료비 등의 의무지출이 많다니 예산집행 우선순위의 재량권이 적은 편이다.
국가채무가 120%인 상태에서 국가예산을 감축하니 교사부족, 과밀학급, 낙후된 학교시설(냉난방 등)들로 인하여 이번 사태가 유발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여 최근들어 제도개선과 긴축재정을 편성하였다. 그러나 원숭이 마져 같은 수를 주어도 '조삼모사'가 좋다는데, 하물며 간사한 인간에게 주다가 중단하니 가만 있을리가 없다. 내년이면 10년 마크롱 임기가 끝나고, 대통령 선거가 있으나 그래도 국민들의 표를 더 얻으려면 포플림즘 정책을 내세워야 한다니,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인들 다를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자신이 당선되면 돈을 얼마를 주겠노라는 해괘망측한 선거공약을 해댄다. 나라를 망국으로 이끄는 길이지만, 단물 냄새맡고 모여드는 개미처럼 그곳으로 유권자는 몰려들기 마련이다.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세금을 거두어 나라를 경영해야지 퍼주기식 대책없는 국가는 희망이 없다. 결국엔 프랑스와 같은 결말을 초래할게 뻔하다.
세금만 올린다고 해결날 문제도 아니다. 납세자들이 거부하면 국가가 강제로 재산을 압류한들 그걸 사들일 사람이 있겠는가? 그걸 사면 뻔히 그만큼의 세금을 더 내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알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었다. 일용은 친구들에게 여자들과 망년회 그룹미팅을 가자고 거짓말을 하였고, 기대찬 청년들을 태운 봉고차가 도착한 곳은 고아원이다. 일용이 에전부터 남몰래 봉사를 해온 곳이다. 상황을 알게된 청년들은 아이들과 공차기를 하며, 모은 회비로 라면과 장난감 학용품을 사서 나누어 준다. 청년들은 최고의 망년회를 가졌다며 내년에도 그곳에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장은 은행에서 돈을 찾아 휴대폰 가게앞은 서성이다가 친구를 만났다. 두사람은 식당에 들러 술을 마신뒤 술값을 서로 내겠다고 싱갱이를 한다. 밤이 되자 아버지를 모시려 온 두 아들과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집으로 가스렌지가 배달되었다. 김회장이 주문한 것이다. 가스렌지 구입을 손자인 영남이도 생각하였지만, 엄마인 며느리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주는게 좋다며 고전적인 방식을 택했었다.
일용네가 계돈을 타서 돈을 센다. 가족들이 외식을 한번 하잔다. 순길이가 외식이 뭐냐고 물으니, 일용이 하는 말, "한번도 외식을 안해 보았으니 애들이 외식이 뭔지 알 수가 있나?" 라고 말한다. 가족들 외식 타령에 일용 마누라는 내일 도시락 싸서 야외로 가자고 하며, 밖에 나가 밥먹는게 외식이지 뭐가 외식이냔다. 가족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때마침 창수네가 계탄 소식을 듣고, 돈을 빌리려 왔지만 일용네가 돈이 없다며 돌려세운다. 일용 엄니가 웬만하면 빌려주지 왜 그러냐니, 따로 쓸데가 있다고 말한다. 며느리 몰래 일용엄니가 새로 살림을 맡은 용식네에게 돈을 빌려준걸 알게된 창수네가 따지고 들었고, 일용이 대신 사과를 했다.
드라마 막간 광고로 '국경없는 의사회'가 나왔다. 온갖 질병이 창궐하는 오지에서 젊음을 바쳐 봉사하는 그들, 그러나 우리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그들을 예전처럼 따뜻한 눈으로 보지 않는다. 일부 모금단체의 부도덕한 행태가 알려진 탓이다.
나는 왠지 전원일기가 끝난 40여년 세월의 자연환경이 지난 수만년처럼 느껴지고, 사람들의 감정변화는 프랑스 혁명기처럼 수백년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칙과 도덕이 무너진 이 사회, 어느 정치인이 무슨 말을 할지언정 믿지못할 불신의 사회로 변해 버렸다.
프랑스는 다소나마 체제가 바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접국가인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들이 기득권의 앙샹 레짐(Ancien Régime : 舊體制 구체제)을 배격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지를 지켜볼 일이다.
끝으로 국가민속문화유산인 구례의 고택 운조루가 생각났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쌀뒤주를 항상 채워두었다는 곳, 빨찌산들도 그 사연을 알아 불지르지 않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