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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10:10~14 다니엘의 하나님 24.10.6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다니엘의 하나님”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이름 중에 ‘엘’이 들어가는 이름이 많습니다. 다니엘, 사무엘, 엘리야 등. ‘엘’은 하나님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임을 알려주기 전에는 ‘엘로힘’으로 불렀습니다. 엘로힘은 세상의 창조자, 권능자, 통치자라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엘로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을 또 다르게 엘로이(감찰하시는 하나님, 살피시는 하나님 창16:13), 엘사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엘올람(영원하신 하나님), 엘칸나(사랑하시는 하나님) 등으로 불렀습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 자존하신 자’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사람 이름에도 엘이 들어가면 하나님을 뜻합니다. 엘리야(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엘리사(하나님은 구원자), 사무엘(그의 이름은 여호와), 엘리(하나님은 존귀하시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 외 천사의 이름도 가브리엘, 미가엘, 루시엘 등으로 불렸습니다. 다니엘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서를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부르는데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이란 무엇입니까? 심판입니다. 다니엘의 이름에 심판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기원전 586년보다 20년 전에 이미 그의 친구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국땅 바벨론으로 잡혀간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나중에 바벨론의 총리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여 총리가 되도록 준비시키고 쓰신 것처럼 멸망하는 유대 민족을 위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먼저 바벨론으로 보내어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데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되길 축복합니다. 크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준비되는 자도 있는가 하면, 지역 사회를 위해서나 아니면 적어도 자기 가족을 위해 준비되는 것입니다. 마중물로, 그루터기로, 불쏘시개로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 역사에 잊지 못할 아픔 중에 하나가 임진왜란입니다. 1592년 4월에 시작되어 7년간 치렀습니다. 그 전에 통신사를 보내어 일본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율곡 선생이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지만 무산됩니다. 그래도 유성룡이 세 명의 장군을 천거하여 요직에 배치했는데 정기룡, 권율,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5계급 특진을 시켜서 전라좌수사로 내려가게 했고 정기룡 장군은 젊은 장수였는데 전쟁이 나자 육지에서 60전 60승을 거두었고 권율은 46세에 문과에 합격한 사람인데 문무를 겸하였으므로 대장군에 임명했습니다. 이 세 장군이 아니면 조선은 정말 끝났을 것입니다. 이들을 미리 준비시킨 서애 유성룡의 통찰력이 대단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위해 다니엘과 세 친구를 먼저 바벨론에 보내어 준비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도 준비시키셨고 모세도 준비시키셨고 사무엘도, 엘리야와 엘리사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먼저 데리고 가서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이렇게 사람을 준비시켰습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분이 아닙니까.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본문 앞의 9장은 다니엘이 자기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한 내용입니다. 다니엘의 대표기도이자 중보기도입니다. 철저히 죄악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만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마지막 장면인 9장 19절에 보시면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도성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니 당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용서하소서, 구원하소서, 지체하지 마시고 일하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1.다니엘의 하나님은 먼저 일으켜 세우시는 분입니다. 본문 10,11절에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11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주저앉히는 분이 아니라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개혁을 단행한 요시야 왕 때 대제사장이 힐기야인데 그 아들은 엘리야김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김의 하나님, 즉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넘어지게 하는 분이 아니라 넘어진 자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미시는 분입니다.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지시는 분입니다. 10장 16절에도 보시면 “인자와 같은 이가 내 입술을 만진지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도 어루만지십니다. 머리도, 다리도, 연약한 무릎도 어루만져주십니다. 히12:12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께 그리하지 마시라고 하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이처럼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게 하고 과거에 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절망하고 낙망하게 하는 자입니다. 주저앉게 하고 일어서지 못하도록 누르는 자입니다.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그가 사탄입니다. 딤전4:1에 보시면 사탄을 일컬어 미혹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미혹이 뭡니까. 진리에서 떠나도록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계20:1에 보면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인데 만국을 미혹하던 것을 더 이상 못하게 잡아 무저갱에 던질 것을 말씀합니다. 사단이 왜 미혹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은혜 받지 못하도록, 충만하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큰 일로 미혹하지 않습니다. 작은 일로 미혹합니다. 그런데 작은 일에도 넘어지는 게 사람입니다. 길을 가던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큰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듯이, 벽돌에 걸려 넘어지지 빌딩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없듯이... 그러니 늘 작은 것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연약한 무릎에 힘을 주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본문 뒤 18,19절에 보시면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19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라고 합니다. 다니엘도 “나를 강건하게 하여”, “강건하라 강건하라”,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힘을 주시니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건하여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기를 원하시고 걸어가도 뛰어가도 고단치 않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2.이어서 다니엘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본문 12절에서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시고 19절에도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고 하십니다. 사도바울도 딤후1:7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도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말씀합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창21:17)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니까 블레셋 왕이 빼앗습니다. 이삭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또 이동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창26:24).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두려움을 걷어 가시고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평안을 어떻게 주십니까. ‘평안하라’라고 직접 말씀을 선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약속, 이루시겠다는 약속, 그 약속들이 주어지면 평안이 함께 임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확신이 없을 때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왜 평안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평안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누가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뤄주시고 지켜 보호해 주시겠다는데 그보다 더 평안함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사 41:10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으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왕이 그에게 자기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해몽까지 하라고 했을 때도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죽음을 명령한 왕에게 평안하게 한 마디 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어찌 이리 급하뇨?”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지겠다는 조서를 발표했을 때도 하나님은 다니엘의 마음에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전에 하던 대로 윗층에 올라가서 창문을 열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또한 다니엘의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11,12,14절에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깨닫게 하시는 분이고 깨닫게 하려고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다른 사람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1:17에 보시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라고 합니다. 단 10:1에서도 후반절에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라고 합니다. 그러니 다니엘에게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거룩한 신의 영이 머무는 자”(단4:18,19)
누가 지혜자입니까. 깨달아 아는 자가 지혜자입니다. 단 12:10에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다니엘에게 찾아왔을 때 뭐라고 합니까. 단 9:22에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천사를 보냈습니다. 즉 깨달아 알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다니엘은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 지혜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였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지혜자보다 더 뛰어난 지혜였습니다.
4.끝으로 하나님은 은총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합니다. “큰 은총을 받은 다니엘아”(11절),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19절) 누구에게 은총을 받은 것입니까. 하나님께 은총을 받았습니다. 사람에게 은총을 받는 것도 기쁜 일이거늘 하물며 하나님께 은총을 받는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다니엘은 그냥 은총도 아니라 큰 은총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하면 될 것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니 사람에게도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데 사람이 어찌 막겠습니까. 우리도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다니엘의 하나님은 일으켜주시는 하나님,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 지혜를 주시어 깨달아 알게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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