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己未年·1919) 이후 인심이 극히 날카로운 가운데 대종사에 대한 관헌의 지목이 날로 심하여, 금산사에 계시다가 김제 서에서와, 영산에 계시다가 영광 서에서 여러 날 동안 심문당하신 것을 비롯하여 평생에 수 많은 억압과 제재를 받으셨으나, 조금도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바가 없이 늘 흔연히 상대하여 주시었으며, 대중에게도 이르시기를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따름이요,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따름이라, 우리의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면 누구인들 끝내 해하고 막지는 못하리라.]
☆ 어구 해석
관헌 : 관청(官廳)의 법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관리). 일제하에서의 원불교는 다른 많은 민족종교와 마찬가지로 관헌들의 엄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지목 : 사물이나 사람을 어떻다고 가정 내지 확신하는 것으로 누구를 어떠란 사람이라고 가정, 주시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금산사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했고,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불의 수기를 받고 중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조선 인조 4년(1626)에 재건된 것이다. 신라 법상종(法相宗)의 근본도량이었다. 경내에 진표율사가 만들었다는 미륵상과 13층 사리탑 등 국보·보물급 문화재가 많다. 혜덕왕사·진묵대사·소요선사·남악선사 등의 고승들이 거쳐 간 유명한 사찰이다.
이 절 아래에 있는 용화동에서 강일순(甑山姜一淳)이 미륵불로 자처하며 활동을 했고 현재도 증산교계의 여러 교파들이 이 절 주변에 운집되어 있다. 1919년(원기4) 법인기도를 마친 소태산대종사는 8산 김광선과 함께 휴양 겸 교법제정을 위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금산사 송대(松臺)에 얼마간 머문 일이 있었다. 이 때 송대 벽상에 처음으로 일원상을 그려놓았다고 한다. 이로 보아 소태산은 이때 이미 자신이 깨친 진리를 일원상으로 표현하고 이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교법을 제정할 것을 내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 소태산은 이곳에 있는 동안 독립운동가로 지목되어 김제경찰서에 얼마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김제 서 김제 서는 현재 전북 김제시 중앙로 213에 위치한 김제 경찰서로 일제강점기 때 소태산대종사가 금산사에 머물다가 호출되어서 여러 날 심문을 받았던 경찰서이다. 기미년(己未年, 1919) 이후 인심이 극히 날카로운 가운데 소태산에 대한 관헌의 지목이 날로 심하여, 소태산은 금산사에 머물다가 김제 서에서와 영산에 머물다가 영광 서에서 여러 날 동안 심문당한 것을 비롯하여 평생에 수많은 억압과 제재를 받았으나, 조금도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바가 없이 늘 흔연히 상대하여 주었으며, 대중에게도 말하기를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따름이요,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따름이라, 우리의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면 누구인들 끝내 해하고 막지는 못하리라”
흔연 : 기쁘고 홀가분하게 임하는 모습.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