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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형벌
손 창 섭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상권은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조급해진다. 마지막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거나, 학과를 다 마치고 직원실에 돌아와 잔무 정리를 하려면, 도무지 머리나 손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어른 없는 집에서, 아버지 돌아오기만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을 어린것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수없이 문밖을 내다보며 아버지를 기다리다 못해, 오뉘가 서로 붙안고 울다울다 지쳐서 아무 데나 쓰러져 자는 꼴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한다. 상권은 자연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어두운 표정으로 애꿎은 담배한 연거푸 피워 물며 시계를 보고 보고 한다. 그러다가 5시만 되면 아무렇게나 가방을 챙겨 들고 누구보다도 먼저 밖으로 뛰어나와버리는 것이었다. 시 변두리에 있는 학교라, 집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한 소로였다. 조그만 등성이를 넘어서서 마주 바라보이는 산허리에 상권이네 집 이 있었다. 작년 여름 방학 때, 아내와 함께 손수 짓다시피 무리를 해서 간신히 장만한 주택이었다. 널찍한 방 하나에 비교적 쓸모 있는 부엌과 조그만 마루가 딸려 있을 뿐이지만, 인가에서 뚝 떨어져 있는데다가 양지발라서 , 셋방살이에 오래 시달려온 상권이 부처에게는 마치 별장에라도 온 것같이 흡족하였다. 학교에서 20분 가량 걸렸다. 교문을 나선 상권은 부리나케 등성이를 추어 올라갔다. 길 좌우에 길길이 우거졌던 잡초는 이미 누렇게 시들어버 린 지 오래다. 드문드문 남아 있는 솔포기만이 여느 때 없이 엉성해 보인다. 이윽고 마루턱에 올라선 상권은 맞은켠 산허리부터 건너다보았다.
집 근처에는 어린것들의 모양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방구석에 쓰러져 자나보다 싶으면서도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구불구불 휘어진 비탈길이 밑바닥까지 내려와서 빙그르르 커브를 도는 모퉁이에 조그마한 찬가게가 있었다. 거기서 상권은 저녁과 내일 아침 찬거리를 몇 가지 샀다. 거스름돈 대신에 어린것들 주려고 양과자를 몇 개 집어가지고 돌아서려니까,
“어째, 오늘은 애기들이 마중을 나오지 않는군요.”
하고, 주인 아주머니가 궁금하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아마 기다리다 지쳐서 자나봅니다.”
“온 어린것들이 가엾어라. 어서 애기 어머니가 나아서 돌아오셔야 허실 텐데요.”
그 말에 대답 대신 상권은 그저 쓸쓸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걸음을 옮겼다. 가게 아주머니의 말대로 정말 어린것들이 가엾었다.
네 살잡이 남철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섯 살 먹은 남숙이까지도 여태 엄마 품에서 아양을 떨고 응석을 부려야 할 철부지였다.
그런 것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영원히 잃고, 말았으니, 앞으로 구김살 없이 성장할 수 있을는지가 의문이었다. 벌써부터 두 어린것은 시들은 풀잎처럼 생기가 푹 꺾여버리고 말았다. 나날이 눈에 보이게 심신이 위축되어갔다. 요즈음은 전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마를 부르며 보채지 않는 대신, 겉모양이 야위어 꺼칠해가는 한편, 어딘가 얼빠진 애들처럼 허랑해 보였다. 어미가 있을 때는 그토록 옹글차고 똘똘한 애들이었다. 상권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별로 거르는 일 없이 마중 나와주는 애들이었다. 남철이 놈은 누구보다 더 열심이었다.
상권이가 가방을 끼고 경사진 길을 스적스적 내려오노라면, 집마당에서 놀고 있던 남철은 어느 틈에 아버지를 발견했는지, 고꾸라질 듯한 기세로 고르지 못한 언덕길을 쏜살같이 뛰어 내려오는 것이었다.
부자가 마주치는 지점은 대개가 이 찬가게 앞이었다. 남철은 숨이 차서 할딱거리며,
“아버지.”
하고 불러놓고, 만세라도 부를 때 모양 두 팔을 번쩍 들고 상권에게로 뛰어드는 것이다. 덮어놓고 아랫도리를 쓸어안고 매달려본다.
상권이가 걸음을 멈추고 등을 투덕거려주면, 남철은 그제야 만족한 듯이 한 걸음 물러서며 이번에는 아버지 손에서 가방을 받아 드는 것이다.
그 가방은 남철이 힘에는 벅찬 짐이었다. 무거워서 양쪽 손으로 연방 번갈아 들면서도, 남철은 노상 양보하지 않고 가방을 든 채 앞장서 걷는 것이다.
얼마쯤 가다가 남철은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쳐다본다.
“아버지.”
“왜?”
“이 속에 뭐 들었어?”
상권은 그놈의 속이 빤드름히 들여다보여서 빙그레 웃으며,
“책이 들었지.”
일부러 그래본다.
“책 말구 또 뭐가 들었어?”
그래도 남철은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뒤를 캐묻는다.
“책 말구, 책 말구는 색 연필이 들었지.”
“그거 말구 또 뭐가 들었어?”
“그거 말구는 자가 들었지.”
“그 댐엔 또 뭐가 들었어?”
“그 댐에는…… 가만 있자, 옳지 도화지가 들었다.”
“그리구 또 뭐가 들었어?”
남철은 차차 초조해져서 재우쳐 물었다.
“그것뿐이다.”
“그거 말구 다른 건 아무것두 안 들었어?”
“다른 건 아무것두 없다.”
그러자 남철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근데, 이렇게 무거워?”
그러고 나서 남철은 두 손으로 가방을 흔들어보는 것이다.
그런 때 만일 상권이가 시원찮은 대답을 할 양이면, 남철은 대뜸 울상이 되어,
“그럼, 나 이 가방 안 가주구 갈 테야!”
그리고 팽개치듯 땅바닥에 가방을 탁 놓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권이가 빙긋이 웃으면서,
“글쎄, 그놈의 가방이 어째 그리 무거울까? 옳아, 그 속에 아주 맛있는 게 들어 있는 걸 깜빡 잊고 있었구나. 우리 남철이 주려고 사온 거란다.”
그럴 양이면 남철은 담박 신이 나서 곧장 가방을 펴보자고 덤벼드는 것이다.
전에는 그러던 남철이었다. 남숙은 계집애니까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남철이 못지않게 팔팔한 애였다. 그렇듯 생기 있고 자냥스럽던(재잘거리는 소리가 듣기에 똑똑한 데가 있는) 오뉘가 어미를 잃고 나서부터는 시무룩하니 기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사다주어도 시들한 표정이었다. 언동에 도무지 활기가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상권을 바라보고도 전처럼 다급히 뛰어서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오뉘가 손을 잡은 채 비실비실 걸어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시 아버지 말고 기다릴 사람이 없는 그들 오뉘는 하루 종일 맞은편 길만 지켜보다가 아버지 모양이 눈에 뜨이면 마중 나오기를 잊지 않는 것이었다.
간혹 오늘처술 거르는 날이란 어디 몸이라도 아프거나 그동안 쌓여온 심신의 피로에 눌려 잠들어버 린 때뿐이었다.
상권은 은근히 마음이 쓰여서 단숨에 언덕길을 추어 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보니, 짐작대로 아이들은 한구석에 옹크리고 누워서 자고 있었다.
오뉘는 아무것도 덮지 않고, 새우처럼 허리를 꼬부린 채 서로 꼭 부둥켜안고 자고 있었다.
상권은 얼른 다가가서 애들의 머리부터 짚어보았다. 남철의 이마에는 약간의 미열이 느껴졌다.
별반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일어서기 전에, 애들의 뺨에 입을 맞추려던 상권은 주춤하였다. 오뉘의 얼굴에는 똑같이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채 마르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잠든 지 오래지 아니한 모양이었다. 이제나 이제나 하고 아버지를 기다리던 끝에 그만 지처서 울다울다 잠이 들어버렸나보다.
상권도 어느새 코허리가 시큰했다. 얼른 일어나서 요를 깔고 어린것들을 살며시 옮겨 눕힌 다음 그 뒤 에 담요를 잘 덮어주었다.
상권은 이미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갔다. 서투른 솜씨로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상권은 내처 아이들의 처지와, 행방을 알 길 없는 아내의 생각에 가슴이 쓰렸다.
상권의 아내가 남편과 어린것들을 버리고 별안간 행방을 감추어버린 지도 어느새 석 달 가까이나 되었다.
그 석 달 가까이 되는 동안을 상권은 어떻게 날을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밤이면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고 울며 보채는 통에 며칠 동안은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할 수 없이 결근계를 내고 이틀 동안은 학교를 쉬었다. 사흘째부터는 꽤 떨어져 있는 이웃집 노파에게 어린것들을 부탁해놓고 출근했다.
맞은쪽 등성이를 넘어설 때까지, 엄마와 아빠를 부르며 우는 어린것들의 울음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암담한 기훈에 짓눌려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며, 상권은 핏덩이 같은 것이 속에서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았다.
어찌 생각하면 어린것들 이상으로 집을 나간 아내의 심정이 가긍했다. 지금 와 돌이켜보니, 작년 여름 집을 짓고 난 뒤부터 아내의 태도는 수상한 데가 있었던 것이다. 느닷없이 아내는 멍하니 어떤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안색도 좋지 못하고 어딘가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런 때,
“여보, 혼자서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우?”
하고, 상권이가 물으면 아내는 쓸쓸하게 웃고 이내 외면해버리는 것이었다.
상권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집을 짓노라고 피로한데다가, 다소의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러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아내의 그와 같은 태도는 차차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심해졌다.
어떤 때는 밥을 먹다 발고도 어떤 때는 밤중에 자다 말고도, 곰곰이 무슨 생각에 잠겨버리는 것이었다.
몹시 몸이 거북해 보였다. 그래서 상권은 어디 아픈 데가 없느냐고 캐묻기도 했다.
“아니 에요. 아무렇지두 않아요.”
아내는 한결같이 쓸쓸한 표정으로 외면하고 도리질을 하였다.
“그러면, 나 모르는 무슨 걱정 이라두 있소?”
상권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 물음을 슬쩍 던져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역시 아내는 아니라고 하며 외면을 하였다.
아내는 차츰 상권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밤이면 잠자리를 으레 따로 폈다. 더러는 상권이가 무리로 끌어당기려고 해도 아내는 기를 쓰고 거부하는 것이었다.
상권은 은근히 불안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마침내 엉뚱한 소리를 끄집어냈다.
“요즘두 가끔 양이(良伊)를 만나세요?”
“아니, 새삼스레 건 또 무슨 실없는 소리요?”
상권은 놀라면서도 속이 약간 짚였다.
양이란, 상권이가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밀접한 교섭을 가졌던 여자였다.
그 당시 상권을 비롯해서 아내나 양이는 같은 국민학교의 교사였다.
그때 상권의 아내인 혜순은, 양이네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고, 상권은 거기서 여남은 집 떨어진 곳에서 역시 하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연히 셋은 출퇴근 때마다 같이 다녔고, 따라서 퍽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무슨 애정적인 삼각관계 같은 것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역시 세 사람은 은연중에 서로 정이 깊어갔다. 혜순이나 양이도 똑같이 상권을 생각하였고, 상권이 역시 두 여자를 다 진정으로 대했다.
그러는 동안에 상권이가 들어 있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중신을 서 상권이와 양이 사이에 혼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양이 어머니나 오빠도 상권의 인품에 호감을 품고 있던 차라 이야기는 극히 순조롭게 진전되었다. 물론 상권이나 양이 자신도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이 혜순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혜순에게 대해 무슨 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서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러한 눈치를 챈 혜순은 어느 날 저 혼자 학교를 조퇴하고 와서 미리 물색해두었던 딴 집으로 벼락같이 하숙을 옮겨버린 것이다.
학교에서 만나도 혜순은 될 수 있는대로 상권이와는 모르는 체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양이는 혜순이와 조용히 단둘이 만나자, 머리를 푹 숙이고 상권이와의 약혼을 양해해주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혜순은, 양해구 뭐구 할 게 있느냐, 도리어 두 분의 행복을 빌 뿐이노라고 했다.
그날 밤 혜순은 하숙에 돌아와서도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편 상권이와 양이 사이의 약혼설은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약혼식을 하기 꼭 한 주일 앞두고 뜻하지 않았던 6·25 사변이 돌발했던 것 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사이에 10여 일이 흘러갔다. 괴뢰군 측에 자진 아부하는 사람, 그들을 피하여 숨어 다니눅 사람, 형세의 추이만을 관망하며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얼키고설켜 숨 막히는 하루하루가 질서 없이 연장되어갔다.
교직원들 사이에도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듯이 괴뢰 측과 접촉하며, 사사건건이 선봉을 서서 흥분한 얼굴로 구호를 외쳐가면서 주먹을 내두르는 사람이 생겼고, 반면에 재빨리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밖에는 대부분이 스스로 결단성 있는 태도를 갖지 못하고 초조히 눈치만 살피며 대세를 엿보고 있는 축들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상권은 서울이 괴뢰군의 점령하에 들자 며칠 안 되어 행방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고향인 황해도에서 수년간 교편을 잡다가 탈출 월남한 사람이었던 것 이다.
국군을 쫓아 남하하려다가 한강을 건널 기회를 종시 놓쳐버리고만 상권은, 5∼6일 동안을 이리저리 친구네 집으로 옮아 다니다가 어느 날 동정을 살피기 위해서 잠깐 학교에 얼굴을 나타낸 일이 있었다.
혜순이와 양이도 학교에 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들 사이에 친밀한 사람에 취할 수 있는 교내와 분위기는 아니었다.
10분도 채 못 되어서 상권은 도망치듯 학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와버리고 만 것이다. 갑자기 뒤에서 상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상권의 눈앞에 혜순이와 양이가 나란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비교적 한가한 뒷골목을 골라 거닐며 상권의 처신 문제를 의논했다. 상권은 우선 학교 근처나 현재의 하숙에 있는게 불안하니 몸을 피하고 싶다고 했다.
두 여인도 동감이었다. 그러나 성큼 짐을 갖다 맡길 데가 없다고 하며 상권은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박 선생네 집에 갖다 맡기시죠!”
혜순이가 얼른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의 안색을 살폈다. 상권이도 양이의 눈치를 보았다.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리는 양이의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우울하게 내리덮였다. 얘기를 듣고 보니, 양이의 큰오빠나 둘째 오빠는 팔에다 붉은 완장을 두르고 마치 자기 세상이나 만난 듯이 으스대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양이 모녀가 아무리 말려도 무가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오빠들은 도리어 양이마저 자기들과 행동을 같이 해주기를 강요하고 있 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상권은 할 수 없이 자기의 짐을 혜순이 하숙에다 가져다 맡겼다. 짐을 챙길 때 양이도 몹시 불안하고 우울한 낯으로 찾아와 거들어주었다.
짐이라야 별것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수십 권의 교육에 관한 장서만은 잘 보관해주기를 상권은 혜순에게 거듭 부탁해두었다.
헤어지기 전에 혜순은 만일 형세가 부득이해지면 자기도 서울을 떠나 김포 방면에 있는 고모네 집에 가 있겠노라고 했다.
물론 짐도 다 그리로 옮겨다둘 터이니 만일 피신처가 마땅찮거나, 난리가 수습이 되면 그리로 찾아오라고 상권에게 주소와 약도를 그려주었다.
그날로 상권은 두 여자와 헤어져 서울을 떠났다. 이대로 괴뢰군 점령하에 있다가는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이북에 있을 때 반동분자라는 낙인 밑에 체포령까지 내렸던 그였기 때문이다.
상권은 백방으로 국군을 따라 남하할 계획을 해보았으나 나날이 전진하고 있는 괴뢰군의 전선 지역을 도무지 돌파하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점령지 내의 공기는 시시각각으로 긴박해져서, 반동이라는 지목을 받지 아니한 사람일지라도 청장년은 무사히 배겨날 도리가 없이 되어갔다.
상권의 처지도 차츰 더 절박해갔다. 남하의 희망은 고사하고, 우선 당장 숨어 지낼 곳조차 없어졌다. 또한 한군데 구겨 박혀서 먹고 지낼 양식도 돈도 없었다.
마침내 상건은 거의 절망적인 심경으로 혜순이 고모네 집을 찾아갔다.
비굴한 생각도 들었으나 생사를 가려야 할 판국이니 별수가 없었다.
혜순의 고모네 집은 김포 방면의 구석진 산기슭에 위치한, 20여 호밖에 안 되는 촌락의 한 모서리에 있었다.
마침 혜순이도 와 있다가 반색을 하였고 그의 고모 내외분도 싫지 않게 상권을 맞아주었다.
상권의 짐들이 고스란히 윗방 구석에 쌓여 있었다. 근 보름 동안이나 걸려서 혜순이가 6∼7차나 서울을 왕래하며 일일이 져서 날랐다는 말을 그의 고모가 설명해 들려주었다.
상권은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맙습니다. 세월만 바로잡히면 기어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상권은 진정으로 하는 말이었다.
혜순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
비교적 잠잠하던 이 부락도 차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상권이 언제까지나 안심하고 은신할 처소는 못 되었다.
마침내 상권은 혜순이 고모부의 지시에 따라 거기서 10리 가량 되는 산중턱 에 있는 조그만 절간에 피신하였다. 혜순이 고모네와는 잘 통하는 절이어서 안심하고 숨어 있을 수가 있었다.
9·28을 맞이하기까지 한 달 가까이 상권은 그 절에 내처 숨어 있었다.
거의 하루 걸러 한 번씩 혜순이가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러 오곤 하였다.
어떤 날은 특별난 음식을 장만해가지고 오기도 했다. 상권에겐 혜순의 내방이 다시없이 반갑고 고마웠다. 무척 기다려지기도 했다. 상권은 희망과 절망이 교착되는 복잡하고 초조한 심리 속에서, 자주 혜순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만이 단 하나의 즐거움이요, 위안이었다.
10리 거리의 험한 산길을 이틀에 한 번 정도로 꼭꼭 찾아와주는 혜순의 심정 또한 족히 헤아릴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고모네 집에서 성장해온 혜순은 어떤 날 이런 말도 꺼냈다.
“고모가요, 저보구 결혼기가 되었다고 하며, 주 선생하구 좋아하느냐구 물으셔요?”
“그래서 뭐라구 대답하셨습니까?”
“저는 주 선생님을 좋아하지만요, 주 선생님은 저보다 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구 했어요.”
상권은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잠시 가만히 하고 있었다. 얼마 뒤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구 보니 이번 흉란은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고야 말게 되었습니 다.”
그러고 혜순을 돌아보는 상권의 눈이 여느 때 없이 번득였다.
그 눈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의미를 전파처럼 발사하였다.
며칠을 지나니 절에서도 포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시시로 그 소리는 더욱 심해졌고, 또 접근해오는 것 같았다.
유엔군 항공기의 활약도 한충 더 눈부셨다. 상권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희망이 뿌듯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어느 날 혜순이가 숨이 턱에 차서 쫓아 올라왔다. 내처 달음박질을 치다시피 해서 온 모양이었다. 혜순은 상권을 보자 유엔군 인천 상륙의 희보를 알렸다.
순간 두 사람은 정신없이 부둥켜안았다.
그로부터 유엔군과 국군이 들어오기까지의 며칠 동안을, 혜순이도 상권과 함께 산사에서 묵었다. 하루하루가 밤이나 낮이나 두 사람에게는 처음 당하는 흥분과 감격 의 연속이었다.
날이 갈수록 혜순의 우울증은 더하여만 갔다. 심신의 피로감도 심해갔고, 눈에 보이게 날로 의기 저상해갔다.
혜순이 자신은 전이나 다름없이 명랑한 태도로 남편을 대하려 애쓰는 모양이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것은 반대 현상으로 나타났다. 상권은 아내에게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다.
혜순은 몇 번 병원에도 가본 모양이었으나, 남편이 묻는 말에,
“아무렇지두 않대요. 걱정하지 말래요.”
그러고는 역시 쓸쓸한 표정으로 외면해버리는 것이었다. 갈수록 상권은 아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밤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역시 딴 자리에서 자는 아내를 상권은 힘껏 끌어당겼다.
혜순은 기를 쓰고 항거했다. 상권은 완력으로 혜순을 꼼짝 못하게 했다. 그러자 혜순은 자기의 가슴을 잔뜩 끌어안은 상권의 한쪽 팔을 꽉 깨물어버렸다.
상권은 그만 비명을 지르고 물러나 앉았다. 상권은 흥분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요? 왜 이렇게 당신 태도가 표변했소?”
그러고 나서 상권은 한참 동안이나 아내를 노려보다가,
“나는 아내로서의 당신을 인제는 의심하는 수밖에 없소! 솔직히 말해줘요. 당신은 나와의 부부 생활을 청산하지 않을 수 없는 무슨 비밀을 간직하구 있을 거야. 그렇지? 얼른 속 시원히 말 좀 해봐.”
그렇게 따지고 들었던 것이다.
혜순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 남편을 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죽음과 같이 암담한 빛이 있었다. 영원히 구원받을 수없는 불행을 의식하게 하는 눈이었다. 아내의 입은 금시 무엇을 말할 듯 말할 듯 하다 말고 종시 도로 다물어지고 말았다.
아내는 마침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 자리에 푹 고꾸라져서 어깨를 추며 울기 시작했다. 한참 뒤 둘이는 각기 자기 자리에 도로 누워서도 도무지 잠이 오치 않았다. 혜순은 저쪽으로 돌아누운 채 어둠 속에서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저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두 불행해지게 되었어요. 당신이나, 어린것들이나, 양이나가, 다 저 때문에 불행해지게 되었어요. 그러나 제 죄만은 아니 에요!”
“뭐라구? 좀더 속 시원히 말해봐요. 당신은 지금 와서 새삼스레 나와 양이 사이를 의심하고 있는 게 아냐. 그러구 엉뚱한 일을 저지른 게 아냐?”
상권은 도로 벌떡 일어나서 따지고 들었다.
“만일 제가 죽든지 없어지든지 하면 당신은 양이를 아내로 맞아들이세요. 당신을 위해서나 저것들을 위해서나 양이를 위해서나,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일 거예요. 부탁이에요.”
혜순은 그런 말을 하고 나서, 상권이가 무슨 소릴 하든 귀담아들으려고도 않고 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혜순이와 6∼7년간 결혼생활을 해오면서도 상권은 양이에게 대해서 미안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여서 둘이는 가끔 그런 뜻의 말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부부는 양이가 어서 행복해지기만을 진심으로 빌어온 것이었다. 그것은 6·25 사변을 전후해서 양이가 여성으로서 너무나 불행한 고비를 겪어˙왔기 때문이다. 괴뢰에 부역한 두 오빠를 어떻게 구출할 수는 없을까 하는 기대에서, 9·28 수복 직후, 어떤 가짜 기관원의 협박과 꼬임에 넘어가 정조를 유린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두 오빠는 끝내 처형을 당하고 말았고, 그 가짜 기관원도 상습 범행자로 당국의 손에 체포되어버렸고, 남은 것은 실신 상태에 있는 노모와, 올케와, 조카들과, 임신 몇 개월이라는 양이 자신의 짓밟힌 육체와 환멸과 고민과 저주와 생활고뿐이었다. 양이는 몇 번이나 낙태를 시키려다 말고, 1·4 후퇴 후에 부산에서 종시 해산을 하고야 말았다. 현재도 역시 양이는 그 저주받은 어린것과, 노모와 함께 서울에 살며 모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것이다.
1년에 한두 번씩은 어찌다가 무슨 회합 같은 데서 상권은 양이를 만나는 일이 있었다. 그런 때마다 상권은 죄의식과 동정심에서 가슴이 저렸다.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상권은 으레 양이 얘기를 했고, 아내는 눈물을 머금곤 했다. 상권이 부처는 양이를 위로하기 위해서 더러 양이를 청하는 일이 있었으나, 양이는 그들의 초청에 꼭 한 번밖에 응하지 않았다. 양이가 찾아온 날 두 여자는 하루 종일 울고 이야기하고, 또 울고 이야기하노라고 모처럼 장만한 음식이 그대로 남았었다. 그 뒤에도 아내는 자주 양이를 만나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상권은 그때마다 통 못 만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우에,
“뭐 더러 만나셔도 저한테 숨기실 필요 없어요.”
혜순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상권은 혹시나 아내는 자기와 양이 사이를 은근히 의심하고 있지나 않나 싶어 단순히 농담으로만 흘려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 관계로 미루어, 상권에게는 요즈음 아내가 남편과 양이의 사이를 의심한 나머지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럭 나는 것이었다. 그러한 의심이 아내에게서 팔을 물린 그날 밤에는 더욱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로서 실감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권이 자신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의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은 지 한 달이 채 못 가서 아내는 놀라운 글발을 남겨놓고 돌연 집을 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할 말이 무척 많은 것 같으면서도 막상 적으려고 드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자식을 두고,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지로서 무슨 말을 남긴들 가슴속 깊이 맺힌 한이 풀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한 마디, 어디를 가나, 죽을 때까지 저는 당신이나 어린것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죽어선들 어찌 잊으리까. 그러면 그동안 그렇게도 망설이다가 종내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떠나가는 까닭을 아뢰겠습니다. 저는 IEPRA(나병) 환자입니다.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결정적인 병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신과 의논해서 병 치료에 힘써볼까도 했으나, 여러 가지로 제가 알아본 결과 완치될 가망도 없을뿐더러 그 달 그 달 생활에도 쪼들리는 우리 형세에 그 비용을 어디서 염출할 수가 있습니까? 오랫동안 망설이고 궁리하던 끝에 어찌할 도리 없어 이러한 행동을 취하오니, 과히 탓하지 마시옵고 또한 아예 저를 다시 찾을 생각을 마시옵소서. 다만 어린것들에게 제 병이 유전되지 않을까 그 점 가슴에 걸리오니, 미리부터 조심하시어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라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상권은 눈앞이 아찔해서 한동안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어느새 석 달 가까이 전 일이었다.
그 뒤 부엌에 나가거나, 고리짝 같은 것을 뒤질 적마다, 상권은 아내의 색각에 새삼스레 설음이 복바쳐오르곤 했다.
어느 것 하나 아내의 손때가 오르지 않은 것이 없고 정성이 깃들지 않은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옷가지들에 이르러는 소소한 데까지 아내의 마음씨가 스며 있었다.
철따라 입을 내의에서부터, 마구 입는 옷가지며 겉옷은 물론, 이부자리나 손수건에 이르기까지, 빨 건 빨고 기울 건 기워서 차곡차곡 정리해두고 간 것이다. 특히 의복 한 가지 한 가지에는 꼬리표 같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일일이 누구의 것이라는 것이 밝혀져 있는 외에, 그것들을 입을 절기와 순서까지도 명기해 있었다.
남편과 남숙의 털내의도 한 벌씩 새로 떠서 넣어두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그것을 내어 입는 상권의 손은 자꾸만 떨렸다. 남숙에게도 내어 입혔다. 그러나 남철의 털내의만이 없었다. 낡은 것이 있음직한데 그것마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남철에게는 메리야스 내의를 골라 입히고, 다음 일요일에는 거리에 데리고 나가서 털내의를 한 벌 사 입혀야겠다고 별러오던 중이었다. 그러한 상권에게 오늘 뜻밖에도 소포 몽텅이가 한 개 학교로 날아 들어온 것이다.
발송인의 이름을 들여다보는 순간, 상권은 대뜸 가슴이 찌르르 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아내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주소는 전라남도 어디로 되어 있었다. 그 속에는 남철의 멋진 스웨터가 한 벌 들어 있었다. 물론 아내가 새로 떠서 보내온 것이었다.
완전 소독제라는 쪽지도 들어 있었다. 무슨 편지 같은 게 없나 뒤져보았으나 그런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상권은 다소 낙담하였다.
퇴근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상권은 그 소포 꾸러미를 소중히 옆에 끼고 학교를 나왔다. 어슬어슬해오는 등성이의 비탈길을 그는 바삐 추어 올라갔다.
마루턱에 거진 다다랐을 때였다. 앞쪽에서 어린애들의 지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상권은 주춤 걸음을 멈추고 몇 걸음 앞을 바라보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길가에 앉아 울고 있는 두 어린것은 다름아닌 남숙이와 남철이었다.
오뉘는 오득오들 떨면서 서로 의지하고 울고 있는 것이다. 상권은 놀라 뛰어가서 두 어린것을 한꺼번에 부둥켜안았다.
“추운데 뭣하러 예까지 나왔니?”
“남철이가 자꾸만 아빠한테 가자구 울면서 떼를 쓰는 걸 뭐!”
남숙은 입이 얼어서 똑똑찮은 발음으로 그렇게 말하고 더 섧게 울기 시작했다.
남철은 자꾸만 몸을 떨며 아버지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오냐, 아빠가 왔다. 아빠다. 자 인제 울지 마. 그리구 여기 엄마두 왔다. 여기…….”
코허리가 시큰해지며 정신없이 중얼거리는 상권은, 한 손으로 소포 뭉치를 힘차게 흔들어 보이는 것 이 었다.
-끝-
2016년 10월 2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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