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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현실과 전설(명작의 공간 씨리즈, 아테네 가는 배), 문화일보 인터뷰( 2016-9-30 일자 31면 전면)
정소성
작성시간14:17 조회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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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부부애가 분단의 고통을 일깨울 수 있을까- 중편소설 ‘아테네 가는 배’
정소성(鄭昭盛, 소설가, 단국대명예교수)
한 사람의 개인이 지구 상에서 삶을 영위할 경우, 그는 필연적으로 어떤 하나의 민족에 속하기 마련이고, 어떤 국가의 국민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삶은 민족보다 국가가 더 직접적이고 구속적이다. 개인은 의식주와 신체의 움직임같은 인간생명체로서의 기본적인 요건 이외에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나라 잃은 서러움은 죽음만큼 심각하다.
우리 민족은 36년간 나라를 잃었다가, 타국의 힘으로 되찾았으나 반동강이가 난 상태 였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갈라진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을 치뤘고 국토는 분단된 상태 그대로다.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의 민족이 두 개 혹은 서너개의 국가를 형성할 수도 있고, 반대로 여러개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민주주의를 구가하지만, 심각한 민족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이 무엇이길래 이렇듯 강고한 본질을 어떤 인간지혜로도 녹지지 못하는가.
민족이란 전설적인 어떤 한 사람의 피를 누대적으로 이어받아서 번성한 혈연적인 개념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그럴듯한 개념이지만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다. 지구상에서 그런 형태의 인간존재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민족은 혈연적인 관점에서는 확정짓기 어려운 점이 있다. 아프리카 흑인과 유럽 백인과의 DNA는 98.5% 동일하다는 것이 학계의 이야기이다. 민족을 가르는 기본적인 개념은 결국 문화의 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족을 논할 때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있다. 민족을 국가와 연결지워서 생각할 때, 하나의 민족이 건국한 국가를 단일민족국가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이다. 한민족이 세운 나라이다. 우리민족을 한(韓)민족이라고 하지만, 같은 민족을 두고 북한은 조선족(朝鮮族)이라고 달리 부른다.
문화의 차이란 결국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먹고 자고 놀이하는 방식이 곧바로 문화이다. 놀이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림 그리고 책쓰고 전쟁하는 것도 놀이하는 방식에 포함된다.
결국 문화의 차이란 인간이면 이 지구상에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 즉 먹고 자고 노래하고 춤추고 생각하면서 책쓰고 전쟁하고 농사짓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화, 즉 비슷한 삶의 방식을 가진 어떤 인간의 집단은 필히 어떤 일정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의 본질같은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문화는 어떤 일정한 지역적 공간 속에서 특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문화와 지역성은 필수적이다.
체격이 비슷하고 얼굴모양과 머리털색갈이 비슷하다고해서 같은 민족이 아니다. 같은 삶의 방식 즉 문화가 같아야 단일민족이다. 인도에 가면 한국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외양의 한 종족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인도인은 세 개의 이질적인 모습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인과 같은 아리안 계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계, 그리고 동양족이 그들이다. 동양족 중에서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을 둘러뺀 족속이 있다. 그런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족이 아니다. 문화가 틀리기 때문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주한 인도 대사가 서울의 도심에서 승용차의 속도를 위반하여 교통에게 붙잡힌 적이 있었다. 교통경찰은 그에게 운전면허증 제출을 요구하였으나 이 사람은 횡설수설하면서 영어로만 뭐라고 씨부렸다고 한다. 화가 난 교통은 이 자를 파출소로 데리고 가서 구치소에 쳐넣어버렸다. 그러나 뒤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주한 인도대사였다는 것이다.
동일한 삶의 공간은 민족형성의 기본 조건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을 치른 브라질의 경우, 국가 브라질을 형성하는 민족은 누구일까. 브라질국민은 원주민과 폴투갈족의 혼성민족이다. 인디안 계열의 원주민도 아니고 정복자 폴투갈 족도 아니다. 인디안폴투갈족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다른 민족이다.
텔리비젼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이들의 정치지도자들의 얼굴을 보면 유럽서양인을 닮은 이도 있고, 브라질 축구영웅 펠레처럼 검은 얼굴도 볼 수 있다. 이들을 인디안폴투갈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두 민족간의 피의 섞임 탓도 있으나, 브라질이라는 새로운 국토에서 같이 살면서 이루어진 동질의 문화의 탓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폴투갈인들은 약소민족적인 자각에서 비롯된 유순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투우를 해도 스페인들은 소를 죽이지만, 폴투갈인들은 소를 죽이지 않는다. 바스코 다 가마 등 폴트갈인들이 대서양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선 동기도 영국 스페인 프랑스인들과 같은 강력한 정복의지 탓이 아니었다. 그들은 브라질을 정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에서 같이 산 것이었다. 즉 혼혈을 한 것이다.그래서 새로운 민족이 탄생한 것이다.
한인들의 삶의 터전, 즉 문화의 공간은 한반도이다.
한(韓)이란 말은 연나라 사람 위만에게 망한(BC 194) 고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이 남쪽 한으로 도망하여 한왕을 칭했다는 말에서 기원한다. 그후 삼한이란 국호가 있었고,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왕을 칭했는데, 거기에서 유래되었으며, 해방후 남한만의 건국명을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한민족이란 단일민족 개념은 통일신라기에서 정립되었다.
한민족의 문화공간인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문화공간이 둘로 갈라진 것이다. 민족도 갈라졌다.
1985년도 제 17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중편소설 ‘아테네 가는 배’의 가족은 한반도의 갈라진 국토를 따라 둘로 갈라졌다. 남편은 북에 남고, 아내는 남으로 내려가 한남동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면서 늙어가고 있었다. 그 할머니의 아들 종식은 프랑스로 유학을 간 것이다. 종식은 박사학위를 끝내고 그리스의 아테네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이태리반도의 장화 뒷굼치쯤에 해당하는 브린디지에서 프랑스의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던 한국인학생 주하를 만난다. 그도 아테네로 가는 중이었다. 주하는 그리스의 북단도시 테살로니키로 가는 중이었다. 그는 거기서 연인의 아버지인 주 북한 불가리아 대사와 먼저 가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올 연인을 함께 만날 계획이었다. 대사는 휴가차 그 도시에 와 있었다. 종식은 주하와 동행한다. 연인의 아버지를 통해 북한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한남동의 어머니의 머리채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증거였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만난 대사는 북한에 살아있는 주하의 아버지가 너무나 노쇠하여 도저히 기동할 수 없으며 사람을 알아볼 수도 없다고 전한다.
소설의 전편에 그리스의 신화 한편이 던지는 주제가 흐른다. 트로이를 함락시킨 그리스의 왕이 절세미녀인 트로이 왕의 아내를 그리스로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했으나 도무지 마음을 주지 않아서, 그녀가 트로이에 살던 때의 궁전과 똑같은 궁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궁전에서 하도 많이 울어서 궁전 앞으로 강이 생겼다는 전설이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 소설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남북관계는 엄중했다. 지금은 탈북자들도 있고, 비정규적으로나마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도 있다. 그러나 당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외국으로 나갈 때에는 누구도 예외없이 안기부로 가서 사전반공교육을 받았고, 귀국해서는 보고서를 써내야 했다. 그리고 여권에도 외국여행중 목적지 외에 환승지나 임시기착지도 필히 기재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남북사람들이 얼굴을 대할 수 있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죽어서 저승에서 만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이란 있을 수 없으니 소설 속에서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나지는 못할망정 생사의 소식이라도 전하면 천만다행이었다. 하기야 지금이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상황이 크게 개선된 것도 아니다.
민족은 공통된 삶의 터전 즉 문화의 공간을 가진 인간의 집단이다. 보리밥 먹고 된장국 마시고 김치먹고 씨름대회하고 윷놀이하는 이런 삶의 모습을 우습게 보지 말라. 이것이 우리 민족이 이룩한 문화의 공간이다. 이것을 행하는 공간이 국제정치력의 농간으로 둘로 찢어졌을 때 그 같은 놀이공간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같이 놀이하던 삶의 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멍석을 깔아주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놀이의 흥은 이미 없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실수로 민족의 힘이 바닥을 길 때, 우리를 농간한 소위 강대국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한다. 우리나라는 오천년 동안 단일민족이었다. 덩치는 작지만 잘만 다스렸다면 강대국의 반열에도 오를 수 있는 규모의 땅과 인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로를 믿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관계로 강대국들의 농간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약소국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여러가지 다른 의미의 얼개로 이루어진 공간의 제시이다. 단일민족의 삶의 터전, 즉 문화의 공간을 떠받치는 얼개들은 여러개가 있다. 이런 여러개의 얼개들에 의해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
전설과 현실의 시간적 인식의 공간
한반도 남북의 정치적 공간
아내와 남편의 부부애의 공간
프랑스와 한반도의 지리적인 공간
정상인과 불구자의 안타까움의 공간(주하는 지팡이를 짚는다)
정소성의 작가노트(아테네 가는 배)
중편소설 ‘아테네 가는 배“는 민족분단의 비극을 다룬 중편소설이다. 분단가족이건 아니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민족분단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민족을 분단민족으로 만든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강대국들이다. 한말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본부터, 역사적인 종주권을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파병한 중국과, 일본과의 태평양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카이로회담에서 미국의 권유를 받고 가로늦게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소련 등이 한국을 두 개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다. 루즈벨트는 스타린에게 만주와 38도선 이상의 북한에 소련군의 진주를 허용했다. 지독하게 죽자살자식으로 버티는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중국 미국 소련 이 네 나라가 한반도 분할의 당사국들이다. 소위 세계 4대강국들이다. 태평양 전쟁의 종말과 더부러 상해임시정부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깨끗이 한반도에서 물러났더라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야기되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끝내고 혼자서 그리스여행을 했다. 이태리까지는 기차로 가서, 배를 타고 아테네까지 갔다. 이 이야기는 그것을 뼈대로 해서 민족의 비극을 생각해본 소설이다. 그 때 내가 타고간 배의 이름이 이오니안스타 호였던 것이 일기장에 적혀 있다.
나는 지금까지 다섯권의 단편집과 열네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단편집, 아테네 가는 배, 타인의 시선, 뜨거운 강, 벼랑에 매달린 사내, 혼혈의 땅,
장편소설, 천년을 내리는 눈, 여자의 성, 안개 내리는 강, 제비꽃, 사랑의 원죄, 악령의 집, 최후의 연인, 태양인, 운명, 두 아내, 바람의 여인, 가리마 탄 여인, 설향, 소설 대동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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