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들에게 기름진 차밀을 먹게 하고
바위의 꿀로 그들을 배부르게 하련마는
(시편81,17).
이 시편의 마지막 절은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지는 축복된 삶을 묘사한다.“기름진 참밀”은‘최상의 밀’을 뜻한다(신명32,14;시편147,14참조).시인이‘기름지다’고 한 것은 영적 은총의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다(히에로니무스).
“바위의 꿀”은 바위 사이에 벌집에서 나온‘야생 꿀’로 가장 달콤한 꿀이다.구약성경에 나오는 꿀은 대부분 대추야자에서 얻는 당밀이다.주님이 백성을 데리고 들어가신 그 땅은 실제로 밀과 꿀이 생산되는 곳이고 그들은 그것을 먹고 스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었다(신명8,8.10참조).실제로 주님은“바위에서 나오는 꿀을 빨아 먹게 하시고 차돌 바위에서 나오는 기름을 먹게 하셨다.엉긴 소젖과 양의 젖을 어린양들의 굳기름과 함께 먹게 하시고 바산의 숫양과 염소들을 기름진 밀과 함께 먹게 하셨다”(신명32,13-14).
“그들을 배부르게 하련마는”은 직역하면‘내가 너를 배부르게 하련마는’이다.‘내가 너를’은 9절의 “나 네게”라는 계약의 언어를 상기시킨다.주님의 물이 아닌 꿀로써 영적으로 백성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긴다(히에로니무스)
시편 81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81편은 기쁘게 예배드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오직 주님만을 섬기도록 인도한다.하느님은 백성이 기쁨으로 드리는 찬양예배를 통해 그들을 축복을 내리신다.본문에서 등장하는 온갖 악기들은 찬양예배를 더욱 빛나게 한다.올바른 예배는 찬양뿐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포함한다.이 시편은‘듣다’라는 낱말을 다섯 번이나 사용하여 특별히 ‘들음’을 강조한다.단순히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hear것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지만,경청하는listen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더욱이‘샤마’에는‘경청하다’만이 아니라‘따르다/순종하다’라는 뜻도 있다(탈출24,7;창세22,18).곧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예배는 음악적이고 전례적인 것일뿐 아니라 회중이‘하느님의 듣는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다(메이스).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은 하느님께 충성심을 가져야 한다.그들은“너희에게는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아니 돤다.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아니 된다”(10절)라는 1계명을 명심해야 한다.주님은“내 말을 들어라”(9절)고 하시지만‘그들이 참으로 들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며,그에 대한 대답은 그들이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12절).그들은 주님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돌아감으로써 그들의 욕망대로 걸어갔다.이에 대한 주님의 벌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그러나 주님은 비록 그들을 내버려 두셨지만 그들을 포기할 수는 없으시다.그래서“내 백성이 내말을 듣기만 한다면”(14절)하고 생각하신다.주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들을 기회를 주신다.하느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본질은 든는 능력에서 발견된다(쉐퍼).이 시편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길을 걸으면(14절)축복을 주신다(17절)는 점을 깨닫도록 이끌어 준다.그리고 미사에서 말씀과 강론을 경청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되새기도록 도와준다.예수님도 군중을 가르치실 때 수차례“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또는“새겨들어라”하고 말씀하셨다
(마태11,15;13,9.18.43;마르4,9.23.24;루카8,8;14,35).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3-2 시편 42-89편/전봉순 著/바오로딸)
(칠궁 10/19)
Ⅱ.새로운 국가적 지역적 정책을 위한 대화
176. 국가들 사이뿐만 아니라 가난한 나라의 내부에도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기에,그 가난한 나라들 안에서 차등적 책임이 적용되어야 합니다.그래서 환경과 경제 발전과 관련된 문제들이 더 이상 국가 간 차이의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되며,국가적 지역적정책에 대한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177. 인간의 능력이 무책임하게 오용될 가능성에 당면하여,개별 국가는 자기 영토 안에서 수행하는 계획,조정,감시,제재의 기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한 사회가 끊임없이 과학 기술적 혁신을 도모하면서,어떤 방식으로 그 미래를 계획하고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감시와 조정의 기능을 담당하는 요소에는 법률이 있으며,이는 공동선에 비추어 허용되는 행위 규정을 마련합니다.건전하고 성숙하며 자주적인 사회가 마련해야 하는 제한에는 예측,주의,적절한 규정,규정 적용 감시,부패 척결,생산 과정의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에 대한 효과적 대처,불확실하거나 가능한 위험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있습니다.기업 활동으로 발생되는 오염을 줄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늘고 있습니다.그러나 정치적 제도적 틀은 단지 나쁜 관행의 방지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관행을 장려하고,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창의력을 증진하며,개인적
집단적 제안들을 장려해야 합니다.
178. 즉각적인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계획은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단기적 성장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정부는 선거권자들의 이해에 부응하여 소비 수준에 영향을 미치거나 해외 투자를 위협하는 조치로 국민들을 쉽사리 자극하려 들지 않습니다.근시안적인 정권 수립으로 환경에 관한 장기적 안건들이 정부의 공공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것을,곧 권력의 자리를 장악하는 것보다 과정들을 이루어 내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일 때에 언제나 더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정치적 위대함은 어려운 시기에 중요한 기본 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며 장기적 공동선을 배려하는 것에서 드러납니다.국가적인 계획에서 정권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179.일부 지역에서는 협동조합들이 생겨나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지역적으로 자급자족을 하고 남는 에너지를 팔기까지 합니다.이 단순한 사례는 기존의 세계 질서가 책임을지지 못하는 반면에,지역의 개인과 단체들이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지역의 개인과 단체의 차원에서는 더 큰 책임감,더 강한 공동체 의식,특별한 보호 능력, 더 많은 창의력,자기 땅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남겨 줄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이러한 가치관은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때로는 부패로 법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정치적 결정에는 국민들의 압력이 필요합니다.비정부 기구와 중간 집단들을 통해 사회는 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더욱 엄격한 정책과 절차와 통제 방식을 만들어 내도록 해야 합니다.시민들이 국가와 지역과 지자체의 정치적 권력을 통제하지 않으면 환경 피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또한 이웃한 공동체들이 합의하여 동일한 환경 정책을 지지하면 지자체의 법률이 더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180. 획일적 해결책은 없습니다.나라나 지역에 고유한 문제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정치 현실에서는 잠정적 조치나 기술을 시행 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이는 강제적 의무 조치를 단계별로 할 수립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그런데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 장려와 같은 할 일이 여전히 많습니다.여기에는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와 원료 사용 절약을 통한 산업 생산 방식의 촉진이 있습니다.그래서 에너지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거나 오염을 가중시키는 상품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게 됩니다.또한 여기에는 교통 체제를 개선하고 에너지 소비와 오염 수준이 낮은 건물의 신축과 개축의 권장도 포함됩니다.지역 차원의 정치 활동은 소비의 변화,쓰레기 처리와 재활용 경제의 발전,특정 생물종의 보호,그리고 윤작을 통한 다품종 농업 계획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가난한 지역의 농업은 농촌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통하여 개선될 수 있습니다.새로운 형의 협력이나 공동체 조직의 촉진으로 소규모 생산자들의 이익을 증진하고 지역 생태계를 착취에서 보호할 수 있습니다.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181. 연속성도 필수적입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와 관련된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결과를 얻어 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임기 내에 뚜렷한 효과를 이끌어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그러한 까닭에 국민과 시민 단체의 압력이 없다면 당국은 언제나 개입을 거릴 것입니다.특히 문제를 긴급히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정치가가 이러한 책임과 함께 그에 따르는 비용을 감내하는 일은 오늘날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효율과 단기적 성과의 논리와 충돌하게 됩니다.그러나 그럴 용기를 낸다면 정치가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인간 존엄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그러한 역사 안에서 여정을 마치게 되면 그들의 헌신적 책임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제도를 개혁하고 조정하며 최상의 실천을 증진하고 부당한 압력과 관료적 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정치가 절실히 요구됩니다.그러나 모든 사회에 고귀하고 탁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위대한 목표와 가치,그리고 인본주의적이고 깊은 의미가 있는 이해가 결여된다면 휼륭한 조치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소년이 온다/한강)
행복한 가을 날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