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의 시인들|최백규
유월 새벽 외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거실을 서성인다
이제 폐허뿐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끝없이 마주해야 하는
오늘은 세 건의 일정이 있고
길어진 머리카락도 돌아오는 길에 자르고 올 생각이다
불이 켜진 집
불이 꺼진 집
이 소파에 누워 있던
웃음소리가......
시곗바늘이 간다
여름이 가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노인이 된 모습을 상상한다
이것을 사랑이라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멀다
나는 여기 서서 기약도 없이 다시 살아야 한다
네가 없이
한적한 분위기가 감도는
세상을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삼루수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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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냄새
파도가 쳐도
절벽은 끝나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나는 울 것 같다가
지루하도록
조용해진다
어제는
슬픈 생각을 했다
검은 물속에 두고 온 것이
출렁거렸다
어둡고 축축한 흙을 덮고
한참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았다
비와
웃음과
새와
음악과
천국
오랫동안
흙탕물이 나를 쓸어가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파도의 상처가
절벽의 흉터로 번지듯
구름이
느려서
최백규
1992년 출생. 2014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등단했으며 창작동인 ‘뿔’로 활동 중이다.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시선집 『이 여름이 우리의 첫사랑이니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