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 이 표현은 지금부터 진술될 내용의 권위를 보다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은 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바울의 독특한 어법으로서(엡 1장) 이것이 맹세의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사심으로'라는 표현으로 맹세했던 것과 일맥 상통한다.
바울은 자기의 말과 계시의 최종적인 권위를 나타낼 필요가 있을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 - 바울에게 있는 큰 근심과 고통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것이다. 비록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역을 하고 있으나 자기 동족에 대한 깊은 애정은 여전함을 보여 주고 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
본 구절에서 바울은 자기 동족에 대한 자기의 애정이 거짓이 아님을 더욱 확증하고 있다. 초두에서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란 표현으로 자신의 진술의 권위를 세운 반면 본 구절에서는 자기와 함께 계시며 자신의 생각을 다 아시는 '성령'의 이름으로 자기 마음의 진실성을 입증시키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성령 안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기 동족에 대한 큰 근심과 고통의 비중(比重)과 지속성 그리고 그 깊이를 보여 주고 있다.
[롬 9:2] '절과 같음..."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따라 났으며 언약과 약속에 참여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내 자신이 저주를...끊어질지라도 -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에 있어서 공통된 저주의 의미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멸망당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저주가 되신 사건도 이러한 의미의 저주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러면 바울은 실제로 자기 동족을 위해 저주를 받기를 원했는가 ?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던 모세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죄를 속(贖)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탄원했다.
이때 모세는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열심에서 그런 기도를 했다. 이것은 자기를 정말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과 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절에서 바울은 자기 동족에 대한 연민과 열심을 나타내기 위해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즉 바울은 모세와 같이 자기 구원을 포기할 만큼 자기 동족을 사랑하고 있음을 로마 교회의 유대인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롬 9: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양자됨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구약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자 관계는 고대 근동 지방의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 당시 왕은 신하와 백성의 어버이와 같은 존재이자 신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어버이와 같이 경배되었던 것이지 신약 시대와 같이 친밀한 가족 관계에 있어서의 부자(父子)관계로는 파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증거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문이나 기타 다른 문헌에 하나님의 성호가 가족적인 의미의 친밀한 용어인 '아바'(압바)로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댈 수 있다.
영광 - 여기서의 영광은 조직 신학적인 포괄적 의미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영광'은 머레이가 지적한 대로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나타나셔서 임하던 그 영광이며, 성막을 덮었던 영광이며, 지성소의 시은좌에 나타난 영광이며, 성전을 가득 채웠던 영광이다.. 그리고 좀더 비약하자면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언약들 - 구약의 언약)은 로버트슨에 따르면 아담(시초의 언약, 창 3:14-19), 노아.약속의 언약, , 모세, 그리고 다윗등과 맺은 다섯 가지 언약이 있다. 물론 혹자는 아브라함에게 맺어진 동일한 의미의 두 언약만을 본절의 '언약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다른 언약들을 배제하지는 않는다.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체 인류 구속을 목표로 하는 언약들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세우신 것 - 모세를 통해서 시내 산에서 율법이 공포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 백성으로 보증하시는 선언이었다...예배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제사 제도는 우상 숭배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포함하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 제도에 계시된 구속사적 의의를 망각하고 형식적인 예배의 본질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데 있음을 가르치셨다(요 4:23). 약속들 - 특별히 '언약'이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성립된 것에 강조점을 두는 반면,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속들에게 주신 말씀 자체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성을 강하게 반영하며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개별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시사한다. 따라서 '언약'이 '약속'에 비해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용상 이를 명백히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안 된다. '언약'과 '약속'은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롬 9: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조상들 - 족장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을 일컫는다. 그런데 혹자는 '조상들'을 세 사람의 족장으로 국한시키는 것을 반대하며 다윗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1:3에서 예수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본장에서 그리스도의 나심을 세 족장들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으므로
굳이 다윗을 '조상들'의 범주에 넣을 필요가 없다.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 본 구절은 골 1:15-17과 더불어 바울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묘사한 독특한 표현이다. 그런데 혹자는 본 구절을 의도적으로 변형시켜 '저는 만물 위에 계시면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그 하나님께 속한 자이시다' 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이단으로 낙인찍힌 소시니안파의 견해에 가까운 해석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바울의 이해는 사도 요한의 그것과 내용상 차이가 없다. 한편 본 구절은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 세세에 찬양이 있으리로다 아멘'과 같은 송영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형식상으로 다른 송영과 비교할 때 송영이 아니라 분명히 주장을 내세우는 진술이다.
아무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가 신적 권위를 지니고 있는 구세주이심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