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지뽕 나무
낯선 나무다. 자그마한 몸집에 가시가 잔뜩 돋아 있다. 가까이하기엔 찔릴까 봐 껄끄럽고, 멀리하기엔 늘 텃밭 가장자리에 서 있어 신경이 쓰인다. 먼저 주인이 떠나며 선물로 한그루 심어 놓았다.
하필이면 가시 붙은 나무일까. 탱자나무, 산초나무, 쥐엄나무, 아까시나무 등 가시 붙은 나무가 수없이 많은데 들어 본 적이 없는 꾸지뽕나무다. 가까이 접해보니 다른 나무에 비해 가시가 까탈스럽고 예민하다. 그래서 그 옆을 지나가려면 행여 찔릴까 봐 무척 조심스럽다. 군 복무 시절, 철책 부근 지레 밭을 지날 때처럼 주변을 살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그해 여름이다. 장마가 그치자, 텃밭 주변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뱀이 나올듯하여 낫을 들고 풀을 모조리 깎아볼 심산으로 닥치는 대로 풀을 움켜잡고 깎던 중이다. 어느 틈엔가 날 선 가시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풀숲 사이에 있던 꾸지뽕나무가 나를 침입자로 여겼던 모양이다. 예리한 가시를 사납게 내민 거다. 손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욱신거려서 이를 앙다물고 동네 병원으로 달렸다. 의사는 손바닥에 불빛을 비추더니 심각한 표정이다. 그는 잠시 후, 가시가 깊이 박혔다며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의 뜻에 따랐으나, 덧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강산이 두 번쯤 변한 지금, 그 나무를 바라보면 지난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밭 가장자리에 의젓하게 자리 잡고, 칼처럼 곤두섰던 수많은 가시가 눈에 띄게 줄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모처럼 찾아왔다. 그는 천천히 밭을 둘러보다가 붉은 열매를 보더니 한 마디다.
“ 붉게 익은 열매가 탐지네, 손님상에 올렸으면….”
그 말을 들으며 같은 나무인데도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예전에 상처를 주었던 나무가 이제는 열매를 내어주다니 놀라운 일이다. 나무가 변한 것인지. 나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 물음 앞에서 불현듯 지난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타인의 서운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마음이 상하여, 꾸지뽕나무처럼 마음에 가시를 세웠다. 그때는 그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세상과 부딪치며 자신을 보호하려고 마음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왔던 거다. 그 나무는 어떤 이유로 가시를 내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제 몸을 지키기 위한 간절한 몸짓 아니었을까. 다만 그 나무는 말없이 한 자리에서 그렇게 지켜냈고, 나는 말과 감정으로 수많은 이의 가슴속을 아프게 넘나들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나만의 고해성사다. 지난날을 유영하다 보면 허물이 부지기수나 돌이켜 참회할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예민하게 굴었다. 누가 내게 모함하거나 험담하면, 또 누가 내게 무례하거나 거칠게 행동하면, 여지없이 예리한 가시로 찔러댔다. 어린 시절 구슬이나 딱지치기하는데 누가 훼방을 놓거나, 젊은 날 가만히 있는 내게 누가 시비를 걸어오면 시정잡배처럼 말보다 손이 먼저 올라갔던 기억이 하나둘 걸어 나온다. 그러니 꾸지뽕나무처럼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놓은 게 분명하리다. 이제 용서를 구하고 보석을 받아야 할 텐데.
요사이 깊은 혜윰 끝에 ‘역지사지’란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부처님 가운데 도막처럼 성품이 온화해진 건 아니다. 아직도 가끔은 마음에 가시가 돋아난다. 다만 예전처럼 곧바로 세우기보다 한 번쯤 심호흡하고 다시 생각해 본다. 근래 들어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날들이 많다. 아름다운 꽃이 지면 씨를 숨기는 속씨식물처럼 모든 서운함을 드러낼 이유도 없고, 한걸음 물러서는 일이 지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꾸지뽕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 그 앞에 선 내 마음도 예전과 다르다. 지난날에는 가시만 보였지만, 이제는 그 너머 익어가는 붉은 열매가 보인다. 누군가 날 선 모습을 보면 나름의 사연과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뿐 아니다. 다른 이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도 분노나 혐오보다 연민이나 사랑의 꽃으로 피어난다.
나도 모르는 새 가을이 영글어간다. 햇살의 기울기와 바람의 결이 달라졌지만, 꾸지뽕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아프게 찔렀던 나무가 이제는 책상 위에 관념이 아닌, 살아있는 스승처럼 다가온다. 어느덧 내 마음의 모서리도 무디어지고 조금씩 여물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나무 곁을 천천히 지나며 말없이 성호를 긋는다. 나무를 향한 작은 감사인지, 지나온 나를 위한 기도인지 모른 채….
첫댓글 유병덕 수필 <꾸지뽕 나무>를 잘 읽었습니다.
자주 찾아 오시는 것도 감사한데
유 작가님 자신의 수필을 올려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을 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