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고인다 / 이문재
봄이 고이더라
공중에도 고이더라
바닥 없는 곳에도 고이더라
봄이 고여서
산에 들에 물이 오르더라
풀과 나무에 연초록
연초록이 번지더라
봄은 고여서
너럭바위도 잔뿌리를 내리더라
낮게 갠 하늘 한 걸음 더 내려와
아지랑이 훌훌 빨아들이더라
천지간이 더워지더라
봄이 고이고
꽃들이 문을 열어젖히더라
진짜 만개는 꽃이 문 열기 직전이더라
벌 나비 윙윙 벌떼처럼 날아들더라
이것도 영락없는 줄탁 줄탁이러니
눈을 감아도 눈이 시더라
눈이 시더라
블라인드 사이드( The Blind Side)란 영화가 있습니다.
참 감동 깊은 영화였습니다.
사각지대.
보이지 않는 곳.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약물 중독에 걸린 엄마와 강제로 헤어진 후,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커가던 ‘마이클 오어’. 건장한 체격과 남다른 운동 신경을 눈여겨 본 미식축구
코치에 의해 상류 사립학교로 전학하게 되지만 이전 학교에서의 성적 미달로
운동은 시작할수도 없게 된다. 급기야 그를 돌봐주던 마지막 집에서조차 머물 수
없게 된 마이클.
이제 그에겐 학교, 수업, 운동보다 하루하루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날들만이 남았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밤, 차가운 날씨에 반팔 셔츠만을 걸친 채 체육관으로 향하던
‘마이클’을 발견한 ‘리 앤’.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확고한 성격의 리 앤은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마이클이 지낼 곳이 없음을 알게 되자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잠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낸다. 갈 곳 없는 그를 보살피는
한편 그를 의심하는 마음도 지우지 못하던 리 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이클의
순수한 심성에 빠져 든 리 앤과 그녀의 가족은 그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리 앤 가족의 도움으로 성적까지 향상된 마이클은 본격적으로 미식 축구 훈련을
시작하며 놀라운 기량과 실력을 발휘하고, 리 앤은 그의 법적 보호자를 자청하며
마이클의 진짜 가족이 되고자 한다. 주변의 의심 어린 편견, 그리고 마이클이 언젠가
자신을 떠나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뒤로 한 채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게 된다.
실화랍니다.
수학전공을 한 두 후배 이야기입니다.
A는 대학 다닐 때 공부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B는 공부는 물론 책도 읽기 싫어했습니다.
같은 지역으로 발령을 받은 그들 이었습니다.
A에게 수학을 배운 학생들은,
“아! 수학은 저렇게 푸는 거로구나” 감탄을 하였고,
B에게 배운 학생들은,
“아! 수학은 저렇게도 푸는구나” 생각했답니다.
모두들 A가 승진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A는 여전히 평교사이고, B는 대전에서 교장을 하고 있습니다.
B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승진하게 된 것은 세계수학올림피아 대회에 출전하는
학생들을 맡았는데 그 학생들이 은상을 받은 공로로 연구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저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재수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다가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
그가 한 일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나라고.
고등학교 1학년을 가르칠 때입니다.
중간고사에서 0점을 받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게시판에 그림이 있었는데 잘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누가 그린 그림이냐고 했더니 바로 그 학생이었습니다.
“그래 넌 앞으로 0점 맞아도 좋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본드와 비행을 일삼는 문제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넌 목회자가 되야 한다”
지금 그는 문경에서 목회자로 있습니다.
장효조라는 야구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코치로 있을 때 한 사람을 발견하여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인물이 될터이니 잘 좀 돌바 주라고 했습니다.
그가 지금 외국에 나가 활약하고 있는 이대호란 친구입니다.
여러학교를 다니다 보면 수학은 잘 못해도 뛰어난 재질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종이로 백조 접는 학생.
수를 기가 막히게 잘 놓는 학생.
시와 그림을 잘 하는 학생.
만들기를 잘하는 학생............
병아리는 어미 닭이 알을 품은 지 21일이 되면 깨어납니다.
그렇게 깨어나는 병아리들은 혼자 힘으론 알을 깨고 나올 수가 없나봅니다.
그래서 어미 닭이 위에서 함께 쪼아 준다더군요.
여기서 생긴 말이 졸탁(啐琢)이랍니다.
알 속에 병아리가 껍질을 깨기 위해 쪼기 시작하면 이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 닭이
같은 부위를 동시에 쪼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지요.
한자어를 보아도 재밌습니다. 쪼을 졸(啐)에 쪼을 탁(琢)입니다.
갑자기 아래서 쪼기 시작하니 위에서도 탁탁 쪼아준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졸탁동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내가 먼저 변화하기」입니다.
두 번째는「경청」입니다.
어미닭이 아기 병아리가 부화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려면 또 어느 부위를 두드릴
것인지를 먼저 시그널(signal)을 잘 듣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타이밍」입니다.
아무리 좋은 변화와 혁신이라도 상대방이 갈망하고 있는 때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입니다.
내가 알의 안쪽을 쪼았다고 반드시 상대방이 바깥쪽을 쪼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경우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상대방의 묵묵부답으로 온갖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어제도 CCTV가 없는 곳에서 폭행을 당했던 학생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허공에 날리는 소리만을 발할 게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며 지도하는 게 바로 그 피교육자의 마음에 생명을 심어주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일이겠지요.
저 역시도 놓친 학생들이 더 많아서 참 후회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