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이 되면 필자가 생리의학상 후보로 ‘미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 컬럼비아대 찰스 주커 교수와 미 국립치과・두개안면연구소 니콜라스 리바 박사로, 조만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사람은 ‘미각의 과학’을 정립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일을 했는데, 기본 맛 다섯 가지의 수용체를 모두 밝혔다(물론 많은 연구자와 학생들이 거쳐 갔다). 즉 2000년 쓴맛 수용체를 시작으로 2001년 단맛 수용체, 2002년 감칠맛 수용체, 2006년 신맛 수용체, 2010년 짠맛 수용체를 규명했다.
이들은 뇌에서 맛이 어떻게 처리되느냐로 관심을 넓혔고, 지난 2011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즉 맛의 정보가 처리되는 뇌의 미각 피질(gustatory cortex)에서 기본맛에 따라 영역이 나뉘어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사탕을 먹으면 설탕 분자가 혀의 미뢰에 있는 단맛 수용체에 달라붙으면서 신호가 발생해 미각 피질의 단맛 담당 뉴런으로 전달되는데, 이 뉴런들이 한 곳에 몰려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4년이 지난 2015년 학술지 ‘네이처’에 약간은 엽기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즉 맛 가운데 영양이라는 정보로 좋은 맛인 단맛과 독이란 정보로 싫은 맛인 쓴맛을 담당하는 뉴런에 빛을 쪼이면 생쥐가 정말 그런 걸 먹을 때처럼 행동한다는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광유전학기술을 써서 뉴런이 빛의 신호를 미각 수용체에서 온 신호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미각 피질의 단맛 뉴런을 자극하자 단위시간(5초) 당 맹물을 핥는 횟수가 설탕물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쓴맛 뉴런을 자극하면 맹물을 핥는 횟수가 맛이 쓴 물을 핥을 때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즉 혀에서 오는 신호가 없더라도 맛을 지각하는 뇌를 조작하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뇌섬엽에 위치하는 미각 피질에서 맛에 따라 담당하는 뉴런이 공간적으로 분리돼 존재한다는 사실이 2011년 밝혀졌다. 쓴맛(빨간색), 짠맛(오렌지색), 감칠맛(노란색), 단맛(녹색) 뉴런의 위치를 보여준다. 한편 당시 조사한 생쥐의 미각 피질에서 신맛 담당 뉴런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 사이언스
미각 피질에서 편도체로 맛 정보 보내
한편 미각 피질의 뉴런이 활성화되면 뇌의 다른 부분으로 맛 정보가 전달되고 동물은 그에 따라 적절한 반응(행동)을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맛에 대한 가치판단이다.
즉 단맛에 대해서는 계속 추구하는 행동을 할 것이고 쓴맛이 나는 건 피할 것이다. 그렇다면 뇌의 어느 부분이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일까.
학술지 ‘네이처’ 6월 7일자에는 맛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건 미각 피질이지만 그 가치를 판단하는 건 편도체라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역시 두 사람의 작품으로 미각 피질 뉴런이 뻗어 나가는 배선(축삭)을 조사한 결과 편도체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편도체는 뇌의 측두엽 안쪽 깊숙이 한 쌍 존재하는 구조로 정서적인 정보를 처리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공포반응으로 편도체를 없앤 생쥐는 고양이 앞에서도 겁이 없다. 미각 피질의 뉴런이 편도체에 연결된다는 것은 맛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흥미롭게도 맛에 따라 뉴런 말단이 도달하는 편도체 부위가 달랐다. 즉 미각 피질에서 단맛에 반응하는 뉴런은 기저측 편도체(BLA)에 연결됐다. 단 걸 먹으면 혀를 통해 미각 피질로 정보가 전달되고 BLA도 반응한다는 뜻이다.
한편 미각 피질에서 쓴맛에 반응하는 뉴런은 중앙 편도체(CEA)에 연결됐다.
연구자들은 광유전학기술을 써서 이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BLA에 뻗어있는 단맛 뉴런 말단에 빛을 쪼여줘 뉴런 말단이 신호를 일으키게 했다.
그러자 생쥐는 맹물임에도 마치 설탕물을 먹을 때처럼 단위시간(5초) 당 핥는 횟수가 크게 늘었다.
반면 CEA에 뻗어있는 쓴맛 뉴런 말단에 빛을 쪼이면 맹물을 핥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이는 2015년의 실험과 같은 결과이지만 하나가 다르다. 즉 당시는 미각 피질에 있는 뉴런을 자극한 것이고 이번에는 편도체에 있는 뉴런 말단을 자극한 것이다.
즉 설탕물이 맛있다고 판단하고 쓴 물은 맛이 고약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미각 피질이 아니라 편도체라는 말이다.

미각 피질의 뉴런은 축삭을 뻗어 뇌의 여러 영역에 맛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편도체다. 최근 연구결과 쓴맛에 반응하는 뉴런의 말단(빨간색)은 중앙 편도체(CEA)에 도달하고(왼쪽), 단맛 담당 뉴런의 말단(녹색)은 기저측 편도체(BLA)에 위치한다(오른쪽)는 사실이 밝혀졌다. 쓴 물은 맛이 고약하다고 느끼고 설탕물은 맛있다고 느끼는 건 편도체의 다른 부위가 반응한 결과다. ⓒ 네이처
그렇다면 편도체에 연결된 뉴런이 작동하지 않으면 단맛과 쓴맛에 대한 선호도가 사라질까.
연구자들은 먼저 BLA에 뉴런을 마비시키는 약물을 주사한 뒤 설탕물을 줬다. 그러자 5초 동안 핥는 횟수가 맹물일 때와 차이가 없었다.
다음으로 CEA에 약물을 투입한 뒤 맛이 쓴 물을 주자 역시 5초 동안 핥는 횟수가 맹물일 때와 차이가 없었다. 물의 맛에 대한 정서적 가치판단, 즉 선호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혹시 맛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결과는 아닐까.
연구자들은 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했다. 먼저 공간 한쪽에는 설탕물을 담은 통이 다른 쪽에는 맛이 쓴 물을 담은 통이 있다는 걸 알게 한다. 한동안 물을 안 줘 목마른 생쥐에게 설탕물 또는 맛이 쓴 물을 맛보게 하고 같은 맛이 나는 통쪽으로 갔을 때만 상으로 맹물을 준다. 며칠 동안 학습시키자 90% 넘게 성공했다.
이 생쥐들의 편도체에 약물을 주입해 연결된 뉴런을 마비시킨 뒤 테스트를 한 결과 설탕물을 맛보았을 때는 설탕물 통 앞으로, 맛이 쓴 물을 핥았을 때는 맛이 쓴 물이 담긴 통 앞으로 갔다.
즉 맛의 정체성은 지각하고 있지만 편도체가 맛의 정보를 얻지 못해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거세된 사람이 미녀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끌리지는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연구로 맛에 대한 정체성은 미각 피질이 담당하고 가치판단은 편도체가 담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정서적인 반응이므로 이쪽에 전문인 편도체가 맛에 대한 평가에도 관여한다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주커와 리바 두 사람이 ‘미각의 과학’에 얼마나 더 기여해야 노벨상이 주어질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