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참 많이 걸었습니다. 서호 주변부터 시작해서, 하노이에 왔으니 호치민기념관은 방문해 주는 것이 예의이니 택시를 타고 호치민기념관으로 갔습니다. 이틀간 참 보기 힘들었던 하노이사람들이 서호와 호치민기념관으로 다 몰렸는지 인파가 장난이 아닙니다.
호치민기념관 안쪽은 관광객들으로 붐비지만 그 주변도로는 차와 오토바이, 사람까지 뒤엉켜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설날이라 그런지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과 아이들이 꽤 많습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아보이는 외국인 비율. 어딜가도 군중 속에 서양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눈에 뛸 정도로 많습니다. 편의점같은 마트에서도 쉽게 만납니다.
호치민기념관 입장은 국제공항 수준의 몸과 짐 수색을 거쳐야 합니다. 제법 까다로운 절차를 필요로 할만큼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기에 꽤 넓은 광장에서도 호치민기념관 주변 가까이는 제한구역이라고 팻말 여러 개도 모자라서 흰제복의 경비병들 여러 명이 지키고 있습니다.
마오쩌뚱을 기념하는 중국 천안문 규모까지는 못되어도 베트남 최고의 영적 이데올로기 지배자인 호치민을 얼마나 숭배하는지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습니다. 마오쩌뚱이 그렇듯 호치민도 시신이 방부처리되어서 아직도 이 세상 사람인양 정신적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호치민기념관이란 곳은 관광객 접근이 안되니 멀리 뒷배경으로 사진만 남길 수 있을 뿐 따로 마련된 호치민 박물관 건물만 입장료 지불하고 둘러볼 수 있습니다. 사상적 업적이 주인 통치자의 박물관이니 글과 사진 위주라서 다소 지루하고 찬양적 측면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사회의 정신을 그래도 긍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역사 속 통치자의 기념관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란 용어는 거창해도 한 시대의 불가피한 저항이나 다수의 정신적 방향을 한 곳으로 이끌어가는데 막대한 힘을 발휘한 통치자나 지도자들이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 힘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가 관건이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예수나 석가모니, 마르크스 등은 정말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인풀루언서들이고 호치민 또한 대단합니다.
필리핀 마닐라에 가면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살의 기념관과 공원이 여기 호치민기념관 수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호세 리살은 필리핀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금을 아우르는 우리의 정신적 영웅은 누구일까? 이런 게 너무 약한 것이 한국입니다. 더우기 고금을 넘나드는 진정한 시대정신을 놓고도 임시 막강통치의 힘으로 민족의 아픔을 다시 구시대로 돌리는 현 통치자의 우중정책들이 이 시대에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 그런게 가능한 나라가 또 한국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아쉽지만 베트남 경제부흥에 꽤 영향이 클듯한 한국의 위상은 듣고 있는 것보다는 영 딴판입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승용차에서 한국차는 드물게 보입니다. 일본차와 유럽차들이 다수입니다. 베트남 가정집에서 서너대는 보유하기 마련인 오토바이 역시 우리네 브랜드가 있을리는 없습니다. 중형버스는 한국차가 좀 눈에 뜁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사회와 문화의 짙은 영향하에 그 내면도 현재의 외면도 제2의 중국으로만 보여집니다. 젊은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넥타이 정장차림의 중년남성도, 나이지긋한 중년여인도, 정장차림의 멋쟁이 여인도, 젊은 처자들도, 앳되어 보이는 소녀급 여자아이들도, 모두 오토바이족들입니다. 파카입은 사람들이 꽤 있으니 모피걸치고 오토바이 타고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습니다.
관광은 둘째치고 변모의 모습이 꽤 치열한 동남아 국가들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래서 아주 흥미롭습니다. 하노이의 대규모 호수인 서호나 호암끼엔 호수 등도 이제는 걷고싶은 생각이 더 들지 관광대상으로 삼기에 아쉬움이 많습니다. 관광이라면 제주도가 백번 나은 듯 합니다. 시설 가꿈의 수준 차이도 현격해 보입니다. 그래도 서양인들이 여기에 잔뜩 와있는 이유가 뭘까요? 언어소통도 힘든데...
새로 입주한 아파트형 호텔은 서호 뒷편 큰 길 주변 다닥다닥 붙어있는 베트남식 가정집들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베트남 가정집들은 얼핏보기에 식당인가? 착각될 정도로 입구가까이 가족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한 커다란 소파세트나 테이블이 놓인 큰 공간이 바로 보입니다. 꼭 식당에 사람들 모여있는 그 분위기입니다.
가족이라는 개념과 결속이 유교적 영향을 크게 받아 여기도 장유유서, 가화만사성 개념이 장난아니지만 그 개념 그대로 살아감에 사회적 반감은 작아서 드센 여성들의 사회임에도 아직 별 탈없는 듯 합니다. 가족의 결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념만 난무할 뿐 실상은 전혀 다른 한국은 베트남과 미국 중간의 어정쩡한 모습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무엇이 더 낫다 혹은 우세하다는 지금 판단할 일이 아니겠지요.
사회주의 체제에 오니 이것저것 사회학적 발상들이 어쩔 수 없이 길어집니다. 완전 새로 신축한 이 아파트형 호텔은 모든 것이 새거로 다 반짝반짝합니다. 숙소를 나서면 낡은 집들과 비포장의 먼지투성이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철옹성의 자그만 새 아파트입니다.
떠나는 날까지 하노이를 더 깊게 바라보며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아야 되겠습니다. 결국 밥먹고 싶어하는 태균이의 바램대로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어설픈 한식이었지만 김치찌개는 한국보다 맛있었다는 후평을 남기고... 다시 먼 길을 걸어 호텔로 오니 오늘의 걸음수는 15000보를 넘겼네요!
첫댓글 알차게 시간을 보내시는듯 합니다.
무탈하시면 본전은 했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