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들어가기 [25일째]
● 산 페드로 아타까마 - 산티아고
11월 22일 대한민국에 귀국했고 오늘이 12월 22일이니 돌아보기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며칠을 시차 때문에 해롱거리다가, 돌려보기 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25일째 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는 여행은 끝났지만, 돌아보기를 하느라 아직도 여행의 늪에 빠져있어 온전한 일상으로 복구하지는 못했습니다.
후배들을 만나 식사도 하고, 문화 답사가 있는 날은 답사도 가고, 일주일에 두번은 고전을 공부하러 갑니다. 체력 단련, 마음 챙기기 훈련, 영어 공부 등은 의식(Ritual)처럼 진행한 일상 중 아직 회복하지 못한 일과입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또다른 배움의 길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돌려보기를 마무리하여야 합니다. 이 과정을 생략했다면 비쿠나나 다카르 랠리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칠레는 와인, 우리나라와 최초로 자유무역 협정(FTA)을 체결한 나라,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이 생각나는 나라입니다. 뭐가 더 있나 더듬어 보니 석상의 제작과 운반 방법, 존재 이유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도 있습니다.
43일간의 짧은 일정에 중남미 7개국을 훑어보느라, 칠레에는 5박6일의 일정밖에 할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남미 대륙에 길게 늘어져 있는 칠레의 길이와 넓이를 고려해 보면, 이번 여행에서 칠레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을 적게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산 페드로 데 아타까마(San Pedro De Atacama)는 어제 달의 계곡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6시에 숙소를 나와 버스를 타고 공항이 있는 칼라마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아침을 먹으려고 나누어준 빵과 주스를 찾아보니 딴 곳에 두고 온 모양입니다. 커피 한 잔에 비스킷 몇 개로 아침식사를 때웠습니다.
이륙한 비행기는 칼라마를 떠나 2시간 여를 지나 산티아고에 도착했습니다.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답게 깨끗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숙소도 모처럼 널찍하고 깨끗하여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오늘의 일정은 이곳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본격적인 자유여행은 내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렵게 온 곳이고 체류 시간도 짧은데 한나절을 호텔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서 우선 짐을 풀고 아르마스 광장 인근에 있는 핫도그 골목에 가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핫도그 골목은 광장 가까이에 있는 한 블록의 상점들이 온통 패스트푸드만 팔고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흩어진 일행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식당을 찾아갔지만, 좁은 지역이니 서로 만나게 됩니다. 식사 후에는 인솔자의 안내로 구시가지 명소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고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수박 겉핥기란 이곳은 대성당, 저곳은 대통령궁, 얼마를 걷다가 이곳은 아르마스 광장입니다라고 말로만 안내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내 관광은 대부분 역사적 유적지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도움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제대로 시내 관광을 한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일했던 곳에서 가깝기도 하고, 서울의 명소로서 접근하기가 쉬운 곳이어서 여러 번 남산에 올랐었습니다. 최근에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방문하는 곳입니다. 여러 번 가보았어도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서울 전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남산이 남산이지 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문화답사에서의 경험은 이렇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서 내린 다음부터 해설은 시작됩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몇 발자국 걸음을 떼면, 피자를 굽는 화덕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다섯 개 있습니다. 이것은 봉수대로서 삼국시대부터 이용된 정보전달 장치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 때 정비하여 활용한 것으로 국경 다섯 군데로부터 봉화를 받아 병조 근무처인 현재의 세종 문화회관에 전달되고, 최종적으로 어전에 보고됩니다. 제때 봉화가 전달되지 아니하면 곤장을 100대 맞게 되는데, 보통사람은 20대만 맞아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국경 5군데 중 제1로는 함경도 경흥, 제2로는 동래 다대포,… 각 노선별로 몇 군데를 거치게 됩니다. 봉수대가 다섯인 이유는 하나에 연기가 올라오면 국경에 이상이 없고, 두개에서 연기가 올라오면 국경 너머 다른 나라의 군대가 보이고, 다섯개의 연기가 올라오면 전투가 벌어진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지요.
날씨에 따라 맑은 날에는 불로써, 흐린 날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상황을 전달하고, 현재 복구된 봉수대는 … 하며 한참을 설명합니다.
한양의 역사,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이름, 팔각정의 이름과 변천사, 서울의 배꼽인 남산의 표식, 한양도성의 축조가 남산까지 이어온 길, 근처에 보이는 활석으로 쌓은 성곽의 축조 시기, V자형 벤치 설치 사유 등 1시간 넘게 설명을 이어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관광 온 외국인들이 동서남북으로 사진 몇 방 찍고, 자물쇠가 잔뜩 붙어 있는 곳과 팔각정에서 사진을 찍고, 케이블카에서 동영상 찍고, 내려가면 남산을 관광한 것일까요? 제대로 시내를 구경하려면 전문 가이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는 만큼 보게 된다’는 말은 여행에도 적용되거든요.
저녁 식사까지 시간이 남아 인류학 박물관을 찾아갔습니다. 에스파냐의 침탈 이전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 꼼꼼히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저녁은 일행 대부분이 참석하여, 모처럼의 한국식 삼겹살 구이가 나왔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에 처음으로 간 한국 식당입니다. 소주까지 곁들이니 외국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숙소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식당 주인이 코로나 이후로는 도시 중심가도 안전하지 않다며, 권총까지 보여주면서 안전을 신신당부합니다. 무사하게 귀가하여 모처럼 쾌적한 잠자리에 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