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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 청주에 살면서 수차례 산성을 오르내렸지만 역사성에 별관심없이 산책로를 따라 1시간 남짓 걷던 길을 오늘은 늦깍이로 시작한 にほんごの受講生들과 같이 시원한 바람을 벗삼아 여유있게 걷기로 했다. 청주 상당산성은 청주도심 동쪽 해발 419m의 상당산을 주봉으로 하여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상당산성은 청주 도심 주변 넓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서쪽과 남쪽은 경사가 급하고, 동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조선후기 충청병영이 있었던 청주 도심 배후에 위치한 요새같은 산성이다. 이곳에는 백제가 처음 토성을 쌓았다고 하며, 삼국시대 청주지역 유력자였던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가 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상당산성이 갖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과 지형적인 잇점으로 삼국시대 이후에도 산성이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대규모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청주지역으로 서산 해미읍성이 있던 충청병영을 청주로 옮기면서 배후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숙종대에 충청병영에서 석성을 쌓기 시작하여 영조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성벽을 쌓은 수법은 동시에 크게 보강한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과 비슷하며, 성내에는 관아와 산성을 유지.보수하기 위해 동원된 승병들을 위한 사찰을 두는 등 남한산성과 비슷한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산성의 면적은 1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 구룡사 사적비 이 비석은 상당산성 안에 있었던 구룡사의 역사를 알리기 위하여 조선 영조 40년(1764)에 은재거사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써서 세운 사적비이다. 비문에는 숙종 56년(1720)에 충청도 병마절도사 이태망과 우후 홍서일이 군영의 건물을 신축하고 연못을 축조할 때, 도천스님이 구룡사을 창건하였으며 영조 19년(1743)에 극락보전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또한 숙종 42년(1716)에 절도사 유성추가 상당산성을 개축하고 군사적 요충지로 삼았다는 등의 산성관련 내용들이 보여 상당산성과 구룡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구룡사는 이미 없어지고 그 터에 남아 있던 이 사적비만 남문 앞에 옮겨져 지금에 이른다. 비의 형태는 낮은 받침돌 위에 높이 133cm, 폭 56cm, 두께 23cm의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한옥 모양의 지붕돌을 얹었다. ▲ 무신창의사적비(戊申倡義事蹟碑) 조선영조 4년(1728) 조정에 불만을 품은 이인좌(李麟佐)가 모반을 꾀한 무신난(戊申亂) 당시 청주의 선비들이 힘을 모아 의거(義擧)를 일으켜 반군을 격퇴한 무신창의(戊申倡義)를 기념하여 청주각계의 명사들이 청주시의 지원으로 2008년에 건립한 무신창의사적비(戊申倡義事蹟碑)이다. 주차장에서 남문으로 오르려면 잔디광장이 펼쳐지고 오르막길 초입에 세워져 있다. 잔디광장 좌측으로 산책로가 있고 사잇길로 들어서면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청주 상당산성 정문격인 남문인 공남문이다. 상당산성은 조선후기 충청병영에서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쌓은 산성으로 사람과 우마차의 왕래가 편리한 곳에 성문을 두지 않고, 경사진 언덕에 성문을 두어서 방어력을 강화하고 있다. 청주 상당산성 남문인 공남문은 읍성 성문에 비해서 성문의 높이가 높고, 아치형 홍예로 출입문을 만든 홍예식 성문을 하고 있다. 성문은 잘 다듬은 큰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고 있으며, 성문 앞으로 경사가 있기 때문에 성문을 공략하기가 상당히 까다롭게 되어 있다. ▲ 남문(공남문)의 성문 ▲ 남문(공남문)의 우측 성벽 ▲▼남문(공남문)의 좌측 성벽
서남암문은 계곡 동쪽 편 능선을 통해서 산성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으로 암문이란 몰래 드나드는 작은 사잇문이다. ※그림을 Click 하시면 조금 크게볼 수 있습니다.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이곳에 토성을 쌓았을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시대까지도 산성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산성은 서쪽의 청주도심과 북쪽의 청원, 증평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형적 특징으로 볼 때 청주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후 내류지역 주요 거점에 대한 방어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충청병영을 청주로 옮기면서 크게 증축한 것이다. 산성에서 청주도심이 내려다 보이는 남암문을 지나서 서문인 미호문까지는 상당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정상부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고 있으며, 청주도심과 연결되는 지역이라 성벽을 상당히 높고 견고하게 쌓고 있다. 반면에 서문에서 산성 동북쪽 출입문인 동암문까지는 대체로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성벽 바깥 언덕의 경사가 급한편이라 성벽을 낮게 쌓아 놓고 있다. 서문은 청주시 북쪽 청원군 내수읍 지역과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청주에서 진천, 용인, 광주 등을 거쳐 서울로 연결되는 교통로와 연결되는 성문이라 할 수 있다. ▲ 서문(미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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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문을 향하여 걷다가 오른쪽으로 슬쩍 그늘길을 걷다보면 넓직한 쉼터가 나온다.
좀 쉬었다 가자!! 정성스럽게 싸온 대추방울 토마토가 입을 즐겁게 한다. 쉼터를 지나 사잇길로 가프게 오르면 상당산성 북포루 터가 나오고 그곳에 상당산 정상 491.5m의 표석이 있는데 대부분 이곳을 관심없이 지니치기 일수다.
▲▼ 상당산 정상 491.5m의 표석 ▲ 이 터에 북포루를 복원할 모양이다. 동북암문을 지나면 내리막 길이다
▲ 진동문 상당산성 동쪽편은 계곡물이 흘러내려가는 수문 양쪽에 작은 동산이 있고, 동산 바깥쪽에 성문이 설치되어 있다. 작은 동산이 있어서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도 용이하다. 진동문으로 들어오는 길. 남문에 비해서 경사가 심하지 않은 편이며, 산성을 출입하는 우마차들이 이 길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산성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남문에서 진동문 사이는 계곡을 이루고 있으며, 계곡을 막아서 만든 산성내 식수를 공급하던 작은 저수지가 있다. 지금은 산성내 마을로 연결되는 교통로는 계곡을 따라서 만든 도로가 있으며, 그 양쪽에 낮은 언덕이 있어서 계곡을 통해서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쉬운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성 내에는 서쪽 봉우리와 동진문 남쪽 언덕에 2개의 장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중 동장대가 있던 곳에는 최근에 복원한 정자인 보화정이 있다. ▲▼ 보화정
▲ 'おどるポンポコリン' 연습 ※그림을 Click 하시면 조금 크게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저수지는 일제강점기에 홍수로 없어진 것을 1943년에 둑을 쌓은 것이라고 한다.
▲ 송학정에서 백숙으로!!! 우리 회장님 시내버스 정류장 앞에 '상당마실'이 개설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잠시 쉴 수 있는 의자 몇개가 놓여있고 벽에 몇가지 산성에 관한 설명이 붙은 액자가 걸려있다. ※그림을 Click 하시면 조금 크게볼 수 있습니다.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상당산성은 백제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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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Thank you !! 참 '일목요연' 하고 깨끗하게 정리를 잘 하셨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퍼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