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청결한 자(마 5:1-8)
오늘 우리 사회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겉모양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는 퍽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현대 문명의 특징을 "겉치레 문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겉치레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마음보다 겉치레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들은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엄격히 구별했고 어쩌다 부정한 사람을 보거나 부정한 장소에 갔다 오면 반드시 옷을 빨아 입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처럼 손을 닦고 옷을 빨고 하는 것은 위생적인 관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의식적인 것이었습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몸을 닦을 때도 특별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몸은 깨끗한 물로 다섯 번을 씻고 손발은 열 번을 씻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청결에 대해 매우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비난하기를 "당신의 제자들은 전통을 지키지 않고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씻지않은 손으로 먹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유대나라는 동굴무덤인데 안에 시체가 있으면 돌문으로 막아 놓고 깨끗하게 회칠을 하였습니다. 겉은 깨끗하게 보였지만 실상 그 속은 냄새나는 시체가 썩어 가는 것처럼 당시 바리새인들의 실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의 청결개념에 더하신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한 신앙인이 어느날 입이 퉁퉁 부어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그렇게 입이 부었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이놈의 입이 자주 실수를 해서 크게 망신을 당했다고, 그래서 너무 화가나 주먹으로 자기 입을 쥐어박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입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정말 쥐어박으려면 마음을 쥐어박아야 합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머리를 쥐어박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가슴을 쥐어박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입이나 팔 다리가 잘못된 까닭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삐뚫어져서 그렇고 우리의 심령이 더러워져서 그렇고 우리의 생각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엘선지자는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고 외쳤고,
솔로몬은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밭을 갈지 못하고 지키지 못할 때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되고 온갖 짐승이 마음의 밭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팔복의 핵심 또한 마음인 것입니다.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시작하여 오늘 여섯번째 시간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의 중심인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으면 그의 겉이 아무리 화려하고 대단해도 소용없습니다.
마음이 병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죄악이 온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기다리십니다. 마음을 드린다는 말은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시키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쏟아 예물을 함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본문이 말하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1)청결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헬라어로 청결이란 말은 카타로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더러워진 것들을 불로 태워 흔적도 없이 청소하고 때 묻고 더러운 옷을 세탁해서 깨끗하게 만든 상태를 말합니다. 옷에 때가 묻으면 그 옷이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고 좀이 슬어 구멍을 냅니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옷이 더러워질 때마다 세탁을 하여 깨끗하게 보관하는 것처럼 부단히 우리 마음을 씻고 지키지 아니하면 금방 냄새가 나고 더러운 영인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찢고 뚫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몸의 눈은 하루에 약 2만5천번을 깜빡 거린답니다. 그 때마다 눈물샘에서 눈물이 나와 안구를 청결케 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마음에 죄의 먼지가 끼고 욕심으로 더러워지고 상처로 얼룩지게 됩니다. 그 때마다 내 마음을 청결하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이때 내 마음을 씻어내는 작업이 바로 "카타로스" 청결입니다.
하루 2만5천번 주의 보혈을 바르고 말씀과 기도 찬양으로 기름을 발라야 마음이 청결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죄와 상처, 미움과 원망을 바르고 있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더러워져 있겠습니까? 이 카타로스란 말에서 카타르시스란 말이 생겼는데 심리학에서 이 말은 마음과 정서에 쌓여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상처를 깨끗이 씻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이것이 성도의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청결이란 말은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원래 이 말은 포도주에 물을 타지 않은 상태, 금속에 다른 광물과 합금되지 않은 상태를 두고 쓴 말입니다. 이 말을 바클레이라는 성경학자는 "동기가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처음 동기부터 순수하고 깨끗할 수만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그렇게 깨끗한 동기로 따랐던 것만은 아닙니다.
정치적인 이유, 사회적인 이유, 세속적인 욕구, 이기적인 동기 심지어는 빵 한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서 따랐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운데 어떤 성도는 어렸을 때 재미로, 가족에게 이끌려서, 병낫기 위해, 마음의 수양을 위해, 심심해서 등등 별의별 동기로 교회에 나옵니다. 문제는 이 그릇된 동기들이 깨어지고 씻기고 순수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안개가 시야를 흐리게 하듯이 마음이 더러워진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순수하지 못한 마음은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보이고, 명예가 보이고, 이권이 보이고, 자기만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 눈의 들보는 안보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입니다. 그래서 자기 가슴을 쳐야 할 손으로 남을 비난하고, 회개할 입으로 비판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범사에 인정할 때 순수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청결한 마음이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청결해질 때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3)청결이란 말은 순전하다는 말입니다.
무능하고 훈련되지 않은 군인들을 뽑아낸 정예화된 부대에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불순물이 들어간 철광석이 용광로에 들어가 순전한 철로 제련되어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아침에 순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깨끗해지고 순전해지는 것입니다. 롬 5:3이하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란의 과정을 허락하신 것은 여러 가지 불순물이 가득한 우리를 깨끗해지고 순전해져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랬고 야곱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레위기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은 깨끗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깨끗하다'는 말이 구약 전체에 약 150번 정도 나오는데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무려 71회가 나옵니다. 깨끗해진 제물, 상처없는 심령, 옥토같은 마음 밭... 이게 청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깨끗해진 마음, 더러워진 모든 죄악과 욕심을 다 버리고 하나님앞에 영과 진리안에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나는 마음이 청결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청결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외식적인 마음, 정성없는 예물, 자기 안경을 쓰고 교만하게 말씀을 듣는 태도, 고백과 감격이 없는 찬양으로 예배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동서양 많은 철학자들과 위인들이 청결한 마음을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어떻게 이 깨끗한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스가랴 선지자는 놀라운 예언을 했습니다. (슥13:1)"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이 샘은 로마군병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던 순간에 터졌습니다.
이 샘은 보혈의 샘입니다. 이 보혈은 더러운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샘입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찬 254장) 다시 말합니다. 청결한 마음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부패케 한 그 죄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교육도 무능하고 수양도 쓸데 없고 선행도 무익한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또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씀해주십니다. 그 거듭남이란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올 때 예수의 생명을 우리 속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날 때 우리 마음이 청결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우리 마음을 깨닫게 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세우십니다. 말씀이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은혜의 방편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귀로 들려지고 몸으로 체험해야 합니다.(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정신을 차리고 오늘 나에게 여기서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집중해서 들으면 분명히 오늘 여러분 한분 한 분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과 함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여러분의 심령을 깨끗케 하고 계십니다. 마음의 청결을 원하는 자는 말씀을 겸손히 받고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에 순종하게 될 때 그는 비로소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것을 확실히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하면서 우리 자신의 연약한 모습과 죄악된 현실을 보게 만들어서 우리를 정결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욥이 고난 중에 한 유명한 신앙고백이 생각납니다.(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우리를 단련하시는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전한 신앙을 만들어 가시기 위해 우리를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현실의 고통과 아픔, 원치않는 갈등과 시련, 이런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이렇게 매일매일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우리가 다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의 광야생활의 모진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은 백성들을 단련하시고 강퍅한 마음을 깨트리고 낮추어서 청결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겪은 바 많은 연단과 시험들의 최종 목적이 무엇입니까? 역시 저들로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작용한 것입니다.
(신 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대로 더러운 마음으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이 당하는 어려운 고난과 시련 등은 교만한 마음을 낮추시고 믿음의 실상을 알게 하시고 또 마음을 청결케 하며 또 좀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결정적인 길이 되고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욥의 고백에서 명백한 진리를 듣습니다. 욥은 그 많은 고통을 겪고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다 극복하고 나서, 마지막에 고백하였습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그 볼 수 있는 눈은 고난을 통하여 청결하게 된 마음의 눈이었습니다. 시련과 환란, 고통과 핍박 등이 우리의 신앙의 동기를 순수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체험과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핍박과 환란 속에서 전해지는 복음이 순수하며 큰 고통 중에 영접하게 되는 믿음이 더욱더 깨끗한 것입니다.
고통이 사람의 마음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얼마나 단순하였습니까?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종했습니다. 결국 가나안의 거대한 적들을 정복하는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결해진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문제가 많아지고 답답한 일이 자꾸 생기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가 청결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청결해지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청결해지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때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볼때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역으로 이야기하면 마음이 청결치 못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흔들리는 물에는 얼굴을 비쳐 볼 수 없듯이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미래의 영광을 보지 못해 늘 마음에 정함이 없습니다. 사건의 정체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늘 생각하는 것이 오판입니다. 또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해 늘 교만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본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우선, 구약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속성을 보게 됩니다. 육신의 눈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구리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여기 본다는 단어와 온전히 안다는 단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 안다는 단어는 부부가 함께 살고 함께 잠을 자듯 친밀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청결해져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때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영적으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 것도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점점 메말라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볼 때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요, 나의 능력이며 나의 피난처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마음이 청결함으로 하나님을 보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