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족보를 묵상하면
늘 낯설고 새롭기만 합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 족보에 등장하는 이방여인 네명
곧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세바는 마태의 복음적 관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마리아를 제외하고 예수님의 족보를 형성하고 있는 이방여인은
유대인의 선민의식, 그 배타적인 정통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태복음에 수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당대가 아닌 후대의 복음적 이해요, 그 난제가 되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 여인을 기록함으로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서 메시야 사역을 증거하였습니다.
마테복음에 수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하나같이 충격적인 이방 여인의 등장 이외에도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라는 말씀에서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의 족보는 정상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 그의 아들은 요람이요 그의 아들은 아하시야요 그이 아들은 요아스요
그의 아들은 아마샤요 그의 아들은 아사랴(웃시야)요 그의 아들은 요담이요(대상3:11-12)
요람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으로 남 왕국 유다의 5대 왕인데
아마샤의 아들 웃시야(아사랴)는 남왕국 유다의 8대 왕입니다.
마태의 복음적 시선에서 벗어난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는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낳은 3대손입니다.
남 왕국 유다의 다윗 후손이 끊어질 위기를 겪은 격동의 시기에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여호람의 왕후로 모든 왕자를 죽이고 왕이 되어 6년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이 때 여호와의 성전은 바알신당으로 타락하였고
다윗의 언약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달랴의 3대손인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는
모두가 살해되어 죽는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
이십 이세에 왕이 된 아하시야는 재위 1년에 북 왕국의 예후에게 파살되었고
칠세에 왕이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는 재위 40년에
그의 신하, 곧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이십 오세에 왕이 된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는 재위 29년에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여 도망한 아마샤를 라기스에서 쳐죽였습니다.
이렇게 다윗 후손의 왕권을 찬탈한 아달랴의 3대손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는
피살되고 살해되고 쳐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피살된 3대를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서 제거하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선포하였습니다.
한편 아달랴가 왕자들을 다 죽이고 왕이 되는 시점에 홀연히 나타난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젖먹이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키우고 아달야를 죽이고 7세의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신당이 된 여호와의 성전을 개혁하고 퇴락한 곳을 수축하는 등
사독 이후 가장 위대한 제사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역대기와 에스라서는 아론의 후손 제사장 반열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격동의 시기에 사무엘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향년 130년 동안 위대한 믿음의 족적을 남겼습니다.
북 왕국의 엘리사와 동시에 살았던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다윗시대 사독 이후 제사장 가운데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행적을 남겼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서 아달랴의 3대손 뿐만 아니라
요시야 왕의 아들들도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마1:11)
여고냐는 곧 여호야긴이요, 요시야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아들 여호야김의 아들 입니다.
팔세에 왕이 된 요시야는 재위 31년에
바벨론과 갈그미스 전투를 앞둔 애굽과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요시야의 아들 가운데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으나
애굽의 포로가 되어 3개월만에 살해되었습니다.
애굽 왕은 여호아하스를 죽인 후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여호야김이 죽고 그 아들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웠으나
바벨론 왕은 3개월만에 포로로 잡아가고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렇게 이방의 왕들에 의해 세워지고 살해되어 폐위된 왕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를 예수님의 족보에서 제거하였습니다.
마태는 포로로 잡혀간 여고냐, 곧 여호야긴을 요시야의 아들로 입적하고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올렸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재위 3개월만에 애굽의 포로가 되어 살해되었으며
여호야김은 재위 11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재위 4년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행적이 묘연하고
예레미야는 피살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두루마리 책을 불태웠을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와 같은 사역을 하였던 우리야 선지자를 애굽에서 잡아와 처형하였습니다.
☞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렘26:22-23)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느부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대하36:6-7)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렘22:18-19)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사년에 계시를 받아 두루마리 책을 기록하였고
여호야김 오년 구월에 금식을 선포하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역대기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1차 침입 때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잡혀갔는데
예레미야서는 여호야김 오년에 여호야김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바룩을 통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선포한 책을 불살랐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재위 11년이라고 하였지만
여호야김 오년 이후의 기록은 없습니다.
바벨론의 2차 침입 때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재위 3개월만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바벨론의 3차 침입 때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는 재위 11년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처형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방 나라의 왕에 의헤 세워지고 살해되고 폐위된 요시야의 아들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지 못하였고 포로되었으나 끝까지 살아남은 여고냐가 요시야의 뒤를 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 족보는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과 메시야의 새언약을 이루는 복음의 함축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한 다윗은 그 언약을 통하여 메시야를 품었고
마리아를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는 다윗 언약의 실상으로 오신 메시야인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가나안 땅의 구원을 이루는 시내산 언약을 낳았고
그 언약을 성취한 다윗 언약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선지 산맥을 이루었고
성령으로 잉태한 임마누엘 예수는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은 영원한 다윗 왕 곧 메시야입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 족보도 혈통이 아닌 언약의 성취로 이해해야 하고
누가복음의 예수님 족보는 끝없는 족보와 신화에 착념하는 이방인들에게 요셉의 아들 예수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그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맘미암은 만민의 구주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율법과 구약에 정통한 유대인을 위한 메시야의 증거요,
누가복음의 족보는 끝없는 족보와 신화에 착념하는 이방인을 위한 만민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은 요셉의 족보요,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족보라고 하는 주장은
성경을 이해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