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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를 손에 들고
출 23: 14-19
독일 어느 교회 돌판에 새겨져 있는 시(詩)라고 하는데.. 이런 시(詩)가 있습니다
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 날 주님이라 하면서도 따르지 않고
너희 날 빛이라 하면서도 우러르지 않고
너희 날 길이라 하면서도 걷지 않고
너희 날 삶이라 하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날 슬기라 하면서도 배우지 않고
너희 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날 부하다 하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희 날 영원이라 하면서도 찾지 않고
너희 날 어질다 하면서도 오지 않고
너희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날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 날 의롭다 하면서도 두려워 않느니
그런즉 너희들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이 시는 교회 마당에 새겨진 시이고... 교회 다니는 분들이 보라고 쓴 시이기에...
이 시를 듣는 순간.. 뭔가.. 가슴이 찡-하는 그것을 다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21-23).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알고.. 그 은혜와 그 은총, 그 은택 속에 살아온 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 누구냐? - 바로 우리들..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아주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14절입니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자신들을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출하고... 홍해도 갈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감사 드리며 찬양 드리는.. 그런 존재인지 아닌지를..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제는 강제적으로!! 적어도 일년에 3차례 정도는..
절기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3차례의 절기 중 오늘 우리가 지키려는 맥추절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16절입니다.
맥추절(麥秋節)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간단합니다! 첫 열매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그래서 또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첫 열매에 대하여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첫 열매가 갖는 의미는 아주 지대한데...
하나님은 그 지대하다고 생각하는 첫 열매를... 당신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후엔.. 어떻게 하시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첫 열매를 자신에게 바친 사람이나 민족 위엔... 특별한 복을 내려 주셔서...
지경도 넓혀 주시고.. 이웃 나라가 염탐치도 못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출애굽기 34:24)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나라란... 그 면적이 우리나라 남한의 1/3.5 밖에 안되는 나라지만
그 작은 면적이 남북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어서
비록 국토는 작지만 그 작은 국토 안에 다양한 기후가 존재하는데...
그 다양한 기후 중에 가장 특징적인 기후.. 대표적인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이 지중해성 기후라는 것은 우리 나라 기후와는 달리.. 거의 정반대라고 보면 좋을 듯 한데
겨울철은 우리나라처럼 건조한 계절이 아니라.. 비가 오는 계절, 우기(雨期, 11-4월)이고
여름철은 우리나라처럼 장마의 계절이 아니라.. 비가 오지않는 건기(乾期, 5-10월)로서
여름철에는 사막에서 건조하고 뜨거운 동풍(東風)이 불어와 건조할 수 밖에 없고
겨울철에는 지중해에서 습한 바닷바람인 서풍(西風)이 불어와 비가 많이 올 수 밖에 없는
이런 기후입니다.
게다가... 식물을 재배하는 토양도 보면...
우리나라의 비옥한 토양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토양이 석회암으로 된 토양인데...
이런 토양에서 자랄 수 있는 작물은... 밀이나 보리, 그리고 포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맥추절이란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추수한 첫 열매를 바치라는 절기로서..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 추수한 첫 열매를 바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하면...
첫 열매는 거룩히 구별된 것이기에... 그것이 생산되도록 가능하게 하시고
또 그 첫 열매를 인간에게 주시면서 거룩히 구별하여 주신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첫 열매... 그 자체가 거룩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첫 열매도.. 겉으로 보거나 내용적으로 보면.. 일반적인 여타 열매와 다를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첫 열매가 다른 열매와 다른 것은.. 의미적으로 볼 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열매와 달리... 그 구별됨이 의미적으로 볼 때... 거룩히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에스겔 48:14).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로마서 11:16).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의 처음 것!!
첫 열매, 첫 생산, 첫 봉급, 첫 작품, 첫 아이..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것이기에... 이것을 알고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렇게 모든 첫 열매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거룩하게 구별된 첫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의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며
(출애굽기 34:26)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찌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찌며(출애굽기 22:2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언 3:9-10)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고 또 말씀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가?...
여리고성 사건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만난 첫 장벽이... 여리고 성이었는데
이 여리고 첫 장벽을 정복하고 나서 얻어지는 모든 전리품은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첫 장벽을 이기게 하셔서 그 성을 주신 하나님이
그 첫 수확을 거룩하게 구별하였을 뿐 아니라... 그래서 바치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뭐.. 전리품.. 그런 것이 없어서 그렇게 명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건 속에서..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은택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여호수아 6:15-19).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취한 다음 그 모든 전리품은 하나도 가지지 않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물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그 처음 소득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것이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바치라 명하신 것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가지지 않았고 다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치지 않았습니다. 전리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감춘 것입니다.
까짓거... 이런것 쯤 하나... 바치지 않는다고 해서 뭐 어려운 일이 생길까... 이랬겠지만...
그러나... "혹시" 하는 것이 그에게는 "역시"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손을 보셨습니다!!
그 상세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역사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이런 맥락 속에서 맥추절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이라고 하는 이 싯점에서 지난 날을 돌이켜 봅시다.
지난 한주간, 지난 반년동안, 아니 지나온 나날들... 생각해 보면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왔으며.. 내가 노력했으며.. 내가 내가 내가 힘쓰고 애쓰며 살아왔지만...
돌이켜 보면 전적으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이요 은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거룩한 자리에 앉아 있으며, 예배하며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까?
특히 지난 날.. 가슴 졸이며 노력하며 얻었던 모든 첫 소득이나 첫 열매들을 생각해 보면
이것도 물론... 우리의 노력이 들어가기는 들어갔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맥추절의 의미, 맥추절의 교훈은...
과거를 잊지 않고 추억하되..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행동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은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해방되었고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 불기둥이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맛보았고
이런 과정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정착했을때..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그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았지만
얼마가지 못하여 감사는 커녕 불평과 불만, 원망 속에 사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무지몽매한 출애굽 제2세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신명기 16:12).
물론 맥추절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과거!! 종되었던 시절.. 그때 그 어려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결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총을 잊지 말고!! 그러한 자세로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과 말씀들을 통해...
맥추절은 왜 있으며... 맥추절은 어떤 정신으로 지켜야 하는지
그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오늘 본문 16절..처럼
우리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첫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에... 맥추절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첫 열매가 거룩히 구별된 것이기에 맥추절을 지며야 하며
또 출애굽 제2세대에 다시 말씀하시고 교육한 내용을 통해 배운 바 처럼...
지나온 과거, 힘들고 어려웠던 종되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추절에 감사하는 자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첫 열매 첫 소득의 봉헌과 함께
반드시 따라야 할 것, 아니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라고 하는 것이... 은혜를 받은 자가... 은혜를 베푼 자에게 보답하는 행위로서
은혜 받은 자가 또다른 보답을 기대하며 보답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자세로 보답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일찐대...
맥추절의 정신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점을 또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맥추절에 바치라는 그 첫 열매란 반드시... 크고 달고 맛있고 아름다운 것만 바쳐야 하는가?
또 첫 소득, 첫 열매만... 다 하나님의 것인가?
여러분은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가능하면... 크고 달고 맛있고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 할찌라도.. 첫 열매라면!! 다 하나님의 것이며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점을 간과한다면... 못된 사람들 중에는 첫 소득 첫 열매에 흠집을 가해...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지도 못하고... 맛도 없다.. 하면서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착취할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열매도 감사하고... 두번째 열매도 감사하고... 세번째 열매도 감사하며...
크고 달고 맛있고 아름다운 것도 감사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앙이란.. 참 신앙이란!!...
모든 상황... 모든 여건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다면.. 참신앙은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누가 신앙이 좋다!! 그는 예수를 잘 믿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칭찬하지만
정말 그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인지.. 그의 신앙이 정말 훌륭한지는 모르는 것인데..
그의 신앙의 수준, 신앙의 내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는...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내용과 감사의 수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가 정말 잘믿는 그리스도인이고... 그의 신앙이 정말 훌륭하다면
그는... 모든 상황.. 모든 사건 속에서도 불평 불만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지 않고!!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 보고.. 신앙이 좋다... 예수를 잘믿는다!!
아무리 이렇게 말할찌라도..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 형편이 좋을 때만 그렇고..
그렇지 않고... 형편이 점점 어려워지고.. 몸도 아프고.. 되는 일도 없고...
심지어 열심히 믿고 꾸준히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때론 점점 더 욥처럼 죽을지경에 이르게 되면.. 신앙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고.. 하면서
낙망하거나 절망하게 된다면... 어찌 그런 신앙을 좋은 신앙...
그 사람을 예수 잘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믿는 신앙이란 무엇이냐... 이것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해 볼 수 있겠습니다.
참 신앙.. 좋은 신앙.. 잘 믿는 신앙이란
모든 상황..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 될 때
그 신앙을 가리켜 참 신앙.. 좋은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제가 언젠가 이 강단에서 인용한 것 같은데 오늘 한번더 인용하고픈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며 목사님이신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님의 시로서
그는 목회하다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신앙에 흔들림 없고... 자세에 흐트러짐 없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좋다
고훈
내가 암병이라면
모든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좋다.
내가 치료된다면
그들에게 또한 희망이 되어 좋다.
치료되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어 좋다.
내가 암병이 아니라면
모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되지 않아 좋다.
나는
이 일로 내 인생을 돌아보며
단 한 번 위대한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음을 감사할 수 있어
나는
언제나
이래도 저래도 좋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윌리암 로우(William Law)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계 최대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니며..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도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입니까?
누구나 다 예수님을 잘 믿고 싶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겠는데...
오늘 맥추절을 맞이하여 깊이 생각할 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으며 무엇까지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지켜야 할 세 명절
출 23: 14-19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생활의 규범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삶의 규범으로서 세 가지 명절을 지키도록 하신 명령입니다. 이러한 명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깨우쳐 주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무교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14절에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 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을 통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인 정월 14일부터 21일까지 칠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인 무교병만을 먹어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죄악과 부패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의 규례를 정하여 주시고,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는 무교병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깨끗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또 18절에 보면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희생의 피는 유월절에 드리는 어린 양의 피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유교병은 누룩을 넣은 빵으로 누룩은 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과 죄는 함께 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죄를 씻어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곧 주님의 보혈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죄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상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성도의 죄 또한 함께할 수 없는 상극이어야 합니다.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만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성도의 삶 속에 여전히 죄의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하려는 자가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자신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성도들을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릴 때 몸을 깨끗이 씻고 깨끗하고 멋있는 옷을 입으며 하나님께 바칠 예물은 준비하면서도, 지금 자기 안에 죄가 있는지 자신의 삶에 죄가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외모를 깨끗하게 단장하고 많은 예물을 드린다고 해도, 우리 안에 여전히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며 오히려 가증스럽게 여기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깨끗한 심령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이 죄로 더러워져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우리 안에 죄가 있다면 먼저 애통하고 회개함으로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여 깨끗해진 심령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진정 받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유월절을 통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무교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의 규례를 정하여 주시고,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는 무교병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 5:7-8에 보면 이와 동일한 명령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을 이미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을 일주일 동안 지켰습니다. 일주일은 신자의 일평생을 상징하는 기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죽임을 당하시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으므로, 모든 성도들은 도덕적 의미에서 명절을 지켜야 합니다. 곧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과 같은 생활로서, 일생 동안 성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교절의 규례가 오늘날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은 한 마디로 거룩한 생활입니다. 정녕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은 성도는, 자신을 죄로부터 철저하게 구별함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을 받은 성도의 합당한 삶은 곧 감사와 성결이어야 한다는 것이 무교절의 교훈인 것입니다.
2.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때를 기념해서, 자신들이 거둬들인 열매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밭에서 거둬들인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가나안 땅은 물이 귀해 건조하고 농사짓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씨를 뿌릴 때와 수확하기 직전에 때를 맞춰서 비가 내려야만 무사히 수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맥추절을 지켜 자신들이 거둔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며 감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척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열매를 거두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십시오. 세상에는 피나는 노력과 땀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열매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고와 노력의 열매를 거두는 듯하다가 다른 사람에 의해 혹은 천재지변에 의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쭉정이는 거둘 수 있어도 열매는 결코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고와 노력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거둔 모든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중에 열매 거둔 것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 때문이라고 자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감사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로서 하나님께 더 이상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거둔 열매까지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이 있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수확한 곡물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는 절기인 맥추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섬기며 살아간다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에도 맥추절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을 무엇보다도 가장 귀하게 섬기며 살아가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처음 것, 첫 마음, 첫 시간, 첫 재물, 첫 기회, 첫사랑 이런 처음 것들은 모두가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이든 가장 귀한 것, 가장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첫 마음을 드리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이 곧 맥추절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맥추절을 지키는 올바른 마음의 자세는 이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것이 너무나 적은 것 같습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출간하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 청년 1백 명을 대상으로 당신이 앞으로 결혼하여 살아갈 집을 설계하여 보라고 했더니 그 설계 속에는 오디오를 넣어서 음악을 감상하는 방이며, 주방이며 세탁실이며 화장실, 휴게실 등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백 명 중에 한 사람도 부모를 생각하여 부모님이 계실 방을 설계한 청년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일입니다만 자식을 둔 부모로서는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조사 대상자 1백 명 중에 부모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은 아닐 것이며, 부모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들도 자랄 때는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을 것이며, 그들을 길러주신 부모님은 온갖 수고 다하고 모든 것을 그 자식 기르는 일에 쏟아 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식들이 성장 하여서는 늙은 부모 뒷방 한 칸도 주고 싶은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이 세대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점점 감사가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의 회복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3.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수장절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이 감사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른 두 절기 곧 무교절과 맥추절과 함께 하나님이 계신 곳, 예루살렘 성전에 꼭 올라가야 했습니다. 신 16:16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대이동이 전개되는 절기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추석 명절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것과 비교할만한 민족의 대이동이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모여 감사의 축제로 지켜야 했습니다. 축제의 첫날은 아무 노동을 하지 않고 성회로 모이고 칠일동안 초막에서 지낸 후, 제 팔일 째도 다시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이 절기 동안에는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일만 했습니다. 이 감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가을 곡식을 추수하여 수장한 것에 대한 감사, 그래서 곧 수장절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주신 것, 즉 구속의 역사에 대한 감사 곧 초막절로 지켜왔습니다.
셋째는, 수장절인 칠일 동안은 반드시 초막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 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에 거하게 된 것은, 그 해의 추수한 곡식을 저장한 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수장절에다가,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뜻을 접목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광야 생활 40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물로 양식도 자급자족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그들에게 물을 먹이셨고, 먹을 양식과 고기가 없을 때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어떻게 보호해 주셨는가를 회상하면서, 조상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절기가 바로 수장절이요 초막절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이 절기에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칠일동안 지낸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베란다에 초막을 짓고 자녀들과 같이 기거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적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론을 통한 설명적인 교육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체험적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삼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반드시 하나님께 바칠 예물을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요구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물질이 탐이 나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해서일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하지도 탐나지도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물을 요구하신 것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누구나 물질을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물질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진실한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오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물질도 화려한 예배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예배를 드리고 엄청난 예물을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을 보실 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또 저와 여러분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혹시 여러분은 지금 다른 사람의 강요에 못 이겨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체면 때문에, 또는 어떤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시간 낭비이며 여러분이 드린 물질은 헛된 것일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왕에 드리는 여러분의 예배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배와 감사를 담으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3차 명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곧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듯 일년에 삼차 가지키도록 하신 절기는 모두 감사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삼대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의미는 분명합니다. 곧 그러한 감사 절기들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가장 긴 밤' 등을 집필한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매일 아침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이언은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고 물었습니다. 라이언이 대답했습니다. "새날을 맞는 다섯 가지 기쁨이 있소. 첫째,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오. 둘째,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고. 셋째, 병들어 눕기 전에 작품을 탈고한 것이 감사하지요. 넷째, 병마와 싸울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지금 나와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사실이오." 여러분도 이렇게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려고 헌금을 하는 중이였습니다. 서양에서는 헌금 접시를 돌릴 때 만약 큰돈을 가졌는데 적게 내고 싶으면 헌금 접시에 큰돈을 놓고 잔돈을 거슬러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이 흉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 헌금 접시가 어느 눈먼 사람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사람은 1프랑도 헌금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7프랑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헌금합니까?" 눈먼 사람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저는 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 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에 27프랑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 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모은 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 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아름다운 믿음으로 봉헌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감사한 일들이 더욱 넘치도록 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