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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에 머문 지 오래니
(신 1:1-8)
서 론
신명기(Deuteronomy)는 문자 그대로 두 번째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모세가 ‘새
로운 율법을 두 번째로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을 새
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설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근본적인 내용은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
는 것처럼 십계명에 대한 교육입니다. 십계명의 의미와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
이 바로 신명기의 핵심 내용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모두 잘 기억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돌비에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마
음 심비에 새겨야 할 하나님의 법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
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 기록된 십계명과 신명기에 기록된
십계명은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네 번째 계명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네 번째 계명
에 대해 출애굽기 20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셨기 때문 안식일
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창조가 동기가 되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
하신 것입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 출애굽기는 창조동기를 강조하는 반면 신명기
에는 조금 다르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
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
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즉, 애굽에서 구원받
은 것이 동기가 되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창조동기가 구원동기로 바
뀌어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차이는 열 번째 계명에서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20장 17절을 보면 ‘네 이웃
의 집을 탐내지 말라’, 그리고 이어서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기록되
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5장 21절에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그리고
네 이웃의 집도 탐내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신명기에
서는 재산보다도 아내를 더 보호하는 방향으로 내용이 바뀐 것입니다. 어쩌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남의 재산을 도둑질하기 보다는 남의 아내
를 탐하는 일이 더 많았다고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이기 때문에 ‘시내산언약’이
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치고 가나
안에 입성하기 전에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새롭게 해설하고 언약
을 맺었기 때문에 ‘모압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장소
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한 번만 언약을 체결하고 끝내시는 분이 아
닙니다. 그 언약을 보존하고 재독하며, 언약에 대한 개념이 약화되면 그 언약을 새롭
게 갱신하십니다. 보존(保存)과 재독(再讀)과 갱신(更新)이 언약의 중요한 특징입니
다.
신명기는 모세가 120세가 되어 죽기 직전에 행한 세 가지 설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장부터 4장까지 첫 번째 설교는 광야 40년 동안의 죄악을 회고하는 것입니다. 5장부
터 28장까지 두 번째 설교는 시내산에서 받은 두 돌비의 의미와 본질이 무엇인가를 설
명하는 내용입니다. 즉 모세는 십계명을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9장부터 30장까
지는 세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
의 길을 두셨는데 축복의 길, 생명의 길을 택하여 가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1장부터 34장까지는 모세의 마지막 축복과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력으로 1월 14일 유월절에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시내광야에 도착해서, 출애굽한지 2년 되던 해 2월 20일까지 시내광야에 머물렀
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이라고도 부르고 호렙산이라고도 부르는
그 시내광야에서 대략 10개월 조금 더 되는 시간을 머물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동
안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율법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행군을 하
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 1차 인구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너희가 이 산에 머무른 지가 오래 되었으니 이제는 방향을 돌
려 진행하라. 약속하신 땅에 앞에 있으니까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해라.”(1:6-8) 하
나님께서는 10개월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화를 요구하셨습니다. “시내산에 더
이상 머물지 말라. 그 곳도 좋은 곳이지만 이제 너에게 더 큰 축복을 예비하였으니 가
나안 땅을 향해서 가라. 변화해라.”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1. 교회의 적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미국 성결교단의 유명한 설교자인 A.W.토저(Aiden Wilson Tozer)는 Southside Gospel
Tabernacle에서 30년 동안 목회하면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분입니다. 그 분의 설교
가운데 ‘rut, rot, or revival?’이란 제목을 가진 설교가 있습니다. 이 설교의 내용
은 ‘판에 박혀서 정체된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정체가 심해서 부패된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토저
목사님은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도 부인하고, 예수님의 속죄도 부인합니다만 이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의 참된 적
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령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배웠더라도 목회
현장에서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가 어디 있겠으며, 그런 것을 믿는 성도들이 어디 있
겠느냐는 논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교회의 적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자유주
의 신학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사실은 참된 적을 알지 못하고 자유주의 신학을
내세워서 그 뒤에 숨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저 목사님이 말하는 교회의 참된 원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조직과 프로
그램에 의해서 일상화에 빠지는 것입니다. 매주일 새로운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기
대감도 없으며, 똑같은 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되풀이 되는 것이 교회의 적입니다.
교회가 일상화에 빠지면 정체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일상
화(routine)는 시간이 지나면 판에 박힌 상습, 관례(rut)가 되고, 이것이 더 지나면
부패(rot)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일상성을 타파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됩니
다. 우리 성도들도 삶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일상성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일상성을 타파하고 변화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머리 스타일이나, 옷, 넥타이 같은 작은 부분이라도 변화를 주면 기분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신앙은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신앙도 정체되면 좋지않습니다. 하나님
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늘 변화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4월 24일 월요일부터 본당을 리모델링합니다. 리모델링으로 교회가 변화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포항과 경주 등지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했습
니다. 그런데 지방 교회라고 할지라도 예배당이 오래되면 우리 교회처럼 예배당을 그
저 두지 않습니다. 다 고쳤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변화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욱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
다.
2. 변화가 요구되는 세 가지 이유
우리 인간 사회에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변화가 요구됩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오늘 본문을 가지고 ‘나아가라(advance)’는 제목으로 설교하신 적
이 있습니다. 그 설교에서 변화는 세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였습
니다.
첫째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
다. 정치도 변하고, 대통령도 변하고, 국회의원도 변하고, 경제도 변하고, 문화도 변
하고, 날씨도 변하고, 국가도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이 세 가지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변합니다.
둘째로 사람도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유아기에서 소년기로, 소년기에서 청년기
로, 청년기에서 장년기로,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노년기에서 내세로 변합니다. ‘나
는 영원히 청년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분은 꿈을 깨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꾸 늙어
가며 변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어느 한 시기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변화하는 것은 많은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가 유익할 때가 있습니
다.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는 가구를 바꿔보고, 부부 사이에 분위기를 바꾸
고 싶을 때는 머리에 염색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화장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
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변화는 재미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세계 어디에 가도 자생력이 강한 이유를 저는 뚜렷한 사계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아마 우리 한국처럼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명확하게 바뀌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드물 것입니다. 어떤 나라는 일 년 내내 덥거나 추운데 우리나
라는 석 달 추우면 석 달은 봄을 맞고, 또 석 달 더우면 석 달은 시원하니까 우리나
라 사람들이 적응력이 좋아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은 어디에 가서
도 제 밥벌이는 합니다. 자생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국제결혼 한 여자들을 하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미국에 가보면 인식이 바뀝니다. 미국에 가서 국제결혼 한 한국
여자들은 일 년 정도는 영어를 못하니까 쥐죽은 듯 지냅니다. 그러나 일 년만 지나면
남편을 확 휘어잡고 삽니다. 제가 미국에서 5년 동안 목회하는 중에 햄버거 가게를 운
영하는 성도님 집에 심방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여자분은 한국인이
었지만 남편은 나이 많은 미국 사람이었습니다. 심방을 갔을 때, 마침 남편 되시는 분
이 햄버거 가게를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청소하는 남편에게 욕을 섞어
서 말하는데도 남편이 꼼짝을 못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믿
는 분이 왜 그렇게 남편에게 욕을 하느냐고 했더니 그 부인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
다. “목사님. 저 사람이 나하고 처음 결혼했을 때 내가 영어 못한다고 얼마나 구박했
는지 한 줄 아십니까? 그러니까 제가 지금 이런 욕을 해도 저 사람은 꼼짝을 못합니
다. 게다가 지금은 제가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고 저 사람이 가게 쓸고 닦아서 먹고 살
기 때문에, 경제권을 제가 장악했기 때문에 저 사람은 내 덕에 살고 있는 겁니다. 그
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욕 한 두 개쯤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변화가 없다면 사람이나 사회에 진보가 없습니다. 바뀌어야 삶에 활력도 생기고 바뀌
어야 성장이 있습니다. 국가 정치에서도 정당이 바뀌든, 사람이 바뀌든 자꾸 바뀌어
야 뭔가 좋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변화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바람직한 변화가 있는 반면에 바람직하
지 않은 변화도 있습니다. 미국 속담에 보면 ‘프라이팬에서 뛰어나와 불 속으로 뛰어
든다(Out of the frying pan into the fire)’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화를 했더니 더
나빠졌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산이 어렵다고 해서 좀 쉬운 산이 있는가 했더니 더 높은 태산이 나오더라는 말입니
다. 사람이 변화를 해도 잘못된 동기로 변화하면 잘못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변
덕이나 하나님께 대한 반항심, 혹은 세속적인 동기를 가지고 변화하는 것은 잘못된 변
화이며 바람직한 변화가 아닙니다.
한 중년 부인이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을 일으켜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위기
상황에 닥치니까 얼마나 기도가 간절하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고쳐주시
옵소서. 아니면 이제 하나님 나라에 갈 때가 되었습니까?’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
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아니다. 너는 앞으로 40년을 더 살 것이다.” 그러자 이 부
인이 신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응답대로 심근경색이 금방 회복되자, 심장치료를 다 마
친 후에 퇴원도 미루고 성형외과에 찾아가서 앞으로 40년을 더 살 것이기 때문에 아름
다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 얼굴을 전부 고쳤습니다. 얼굴 리모델링을 마치고 이제 퇴원
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퇴원하는 날 그만 병원 앞 길을 건너다가 교통
사고를 당해 숨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황당한 이 부인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항변
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하나님. 제게 응답해 주시기를 앞으로 4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이쿠. 얘야. 네가 하도 바뀌는 바람에 내가 너를 몰라봤다”고 대답하셨다고 합니
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도 할 때 ‘40년 더 살 것이다’는 응답을 받으면 절대 얼
굴 고치지 마시고 원본 그대로 놔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헷갈리시지 않도록 말
입니다.
3. 바람직한 변화는 어떤 것인가?
그러면 어떤 변화가 바람직한 변화일까요? 두 가지 변화가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첫째
는 하나님의 인준(認准)이 있는 변화가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이유는 단순히 그 곳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
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지 오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
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섭리의 인도가 있어야 합
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앞서 진행하고, 성막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율법도 모두
받았고, 행군을 위한 인구조사도 모두 마쳤으며 행군을 위한 진형도 갖추게 되었으므
로 시내산이 은혜스러운 곳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무슨 변화를 추구하든지 먼저 기도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환경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변화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변화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4. 떠날 곳과 향할 곳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화하라고 말씀하실 때, 떠날 곳과 향할 곳이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날 곳은 호렙산이요, 향할 곳은 가나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호렙산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서 그 곳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렙산
이 나쁘기 때문에 떠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호렙산은 목적지가 아니
기 때문에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떠나라, 혹은 변하라
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과거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
니다. 과거도 물론 좋지만 그 곳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므로,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라
는 것입니다.
떠나야 하는 호렙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호렙산은 은혜 받은 산입니
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율법도 받았으며, 거대
한 법을 갖춘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호렙산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다른 은혜를 주십니다. “모세여! 나는 호렙
산에서 은혜를 받았으니 이곳을 절대 떠나지 않겠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런 사람의 고집을 향해 똥고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집을 부려서는 안됩니
다. 은혜를 받았더라도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떠나야합니다. 왜일까요? 새로운 은혜의
세계, 새로운 도전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받은 은혜에 연연하
지 말고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향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앞으로 전진하시는 여러
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 내가 20년 전에 이런 은혜를 받았다, 30년 전에 이런 은혜를 받았
다”고 말씀하시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과거에 은혜를 받은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
나 지금은 은혜를 잊고 살고 있다면 그것은 나쁜 것입니다. 과거의 은혜도 중요하지
만 지금 받고 있는 은혜가 더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는 어떤 더 좋은 은
혜를 받을 것인가 하는 기대감과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에게는 이런 도전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호렙산은 훈련의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광야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광야에서 어떻게 행군할 것인가? 광야에서 어떤 법을 따라야
될 것인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에 대한 모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훈련만 받고 전쟁이 일어났을때 전쟁에 안 나가는 군인이 있다면
그런 군인은 쓸모없는 군인일 것입니다. 훈련받고 전쟁에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러 가지 영적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 훈련, 전도 훈련, 예배
훈련 등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훈련에서 그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
니다. 행동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에 대해 배우고 말면 무슨 소용이 있습
니까? 펜윅선교학교에서 선교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할지라도 배우고 말면 아무 소용
이 없습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행동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
운 은혜의 세계를 열어주십니다. 우리는 은혜 받은 산, 호렙산을 떠나야 합니다. 비
록 좋은 산이요, 은혜의 산이지만 이제는 떠납시다. 왜입니까? 가나안 땅이 우리를 기
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한편 가야할 땅인 가나안 땅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둘째로 아름다운 땅입니
다. 모세는 “나는 이 땅에서 죽고 요단을 건너지 못하려니와 너희는 건너가서 그 아
름다운 땅을 얻으리니”(신 4:22)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땅이라고 말
씀하신 가나안땅을 돌아보는 성지순례를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아
름다운 땅이지만, 성지도 매우 아름다운 땅인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셋째로 가
나안 땅은 부요의 땅입니다. 신명기 6장 11절을 보면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
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신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은 승리의 땅입니다.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
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
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신 6: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결 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산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호렙산에
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예비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
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호렙산에서 더 머물지 말고 이제는 변화하라, 이제는 떠나가
라, 더 큰 은혜의 목표를 세우고 향하고 전진해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독
교는 전진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자꾸 변화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나가야 합니
다. 정체되고 있으면 썩고 부패합니다. 신명기 1장 21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대로 올
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변화를 두려워하
지 마시고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당이 바뀐다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를 예비하신 줄로 믿고 협력하여 앞
으로 전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