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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목적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현대는 남성, 여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개인의 특성에 따라 성의 구분이 흐릿해져 성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의 사고 형태를 보이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여성문학은 사회에 대한 여성의 관념을 형성하는 데 핵심을 차지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성수필은 거의 거론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음은 앞장에서 밝혀졌다.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문학에서도 여성들은 남성의 시각을 통해 여성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수필은 더욱 그러하다. 특히 여권이 신장되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진 중년 부인들이 남성 중심의 사회로 뛰어드는 데 수필은 전형적인 매체가 되고 있음을 비판적 여성주의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수동적이고 왜곡된 수필문학의 이미지로 일관해 온 관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수필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황필호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수필이 강물 같이 쏟아지고, 이런 수필이 다른 장르의 문학 작품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 올 것인가 에 의문을 가지면서 “페미니즘 문학을 위하여”에서 여성수필의 도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우리 여성수필문학계는 여성주의의 영향을 덜 받고 있다는 증거다. 여성학이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상륙한 해가 1977년이었으니, 아직 수필이 여성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이르다고 하겠다. 그러나 학문의 영역은 물론이고, 사회적 영역에서 보아도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점차적으로 일고 있다. 정부도 정책을 통해 여성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다 보니, 오늘날에 와서는 종래의 정치, 경제, 문화, 철학, 종교, 과학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고, 그리하여 이제 문학의 모든 장르가 여성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필계는 아직도 여성문제를 안고 있는 수필이 별로 많지 않으며, 그 중에서도 중요한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려는 수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이런 작업에 앞장서야 할 여성 수필가들조차 여성수필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표되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수필가들의 작품은 언제나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적’인 시각일 수는 있으나, ‘여성주의적인 시각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지금까지 여성은 “주변인” 이나 “타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서구 2천 년 동안 여성은 남성의 '타자'로만 위치했을 뿐 한 번도 주체가 되지 못해 왔다. 그러나 미래 사회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웠던 여성들이 이제 세계 절반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이 시대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는 건 사실이다. 페미니즘이 20세기 말의 주된 담론의 하나로 정치와 사회, 종교, 문화 곳곳에서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 사고와 남성원리에 의해 지금까지 배제되었던 여성적인 것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남성 중심적인 비평의 전통 안에서 쓰여졌던 여성문학을 재조명해볼 필요를 갖게 된다. 여성문학은 이제 다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읽어야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그 동안 여성문학에 대한 접근은 여성들의 아파하거나 싸우려는 목소리를 부각시키는 것이었지 그들이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었다. 모든 문학은 사회 현상을 담고 있다. 하기에 ‘왜’라는 이유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라는 방법도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 수필의 언술과 여성수필가들의 의식이 어떻게 전략적으로 진술되는지에 초점을 맞춰 여성의 정체성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게 된 것이다.
언어와 사고의 연관성으로 볼 때, 언술적 특성이나 여성 의식은 여성의 정체성을 집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층위를 통해 구체적인 여성의 정체성을 규명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여성문학에 대한 분분한 정의와 관계없이 “여성/여성주의 문학의 요체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서사구조를 파괴하고 이성 중심 원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성의 시각에서 수정하고 - 여성성 혹은 남성성의 원리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 인간화의 원리를 복원하는 데 지향점을 둔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페미니즘 관점으로 분석할 텍스트로는 지금까지 전혀 여성주의 관점을 적용해보지 않았던 현대여성작가들의 수필작품을 사용하며, 작품을 독해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기존의 여성 문학이 모두 여성주의를 담지는 않는다. 여성문학은 여성성의 한계를 벗어나서 범인류적 보편성을 띤 문학이기에 종래의 남성중심의 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위대한 문학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텍스트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여성주의 관점에 딱 들어맞는 글 읽기가 되기 어려운 감도 있다. 그러기에 작품 내재적 측면에 대한 균형 있고 심도 있는 고찰을 하기에는 본 연구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여성이 쓴 기존의 문학을 재발견하여 어떤 면에서라도 여성주의 시각에서 재독해하고 재해석하는 일이 우선 페미니즘 관점 분석의 한 과제라고 생각할 때, 한국문학사에서 여성수필문학을 남성적인 시각이 아닌 여성적 시각으로 다시 읽어보는 일은 페미니즘 관점 분석의 충분하고도 의의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런 여성 수필 속에서 남성 작가들의 작품 속에 나오는 여성과는 정반대의 인물을 만날 수 있으며, 또한 여성수필은 유교주의적 가치관의 현 사회 속에 종속된 여성의 입장과 지위를 자문하기 때문이다. 많은 수필작가들이 왜곡된 여성상을 형상화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긴장하는 효과를 얻을 수만 있다면, 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구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여성수필의 작품 내재적 측면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페미니즘 연구를 본 연구는 계속적인 과제로 남을 것이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대여성작가들에 대한 페미니즘 관점의 분석 시도 또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여성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내는 것은 페미니즘 문학 영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의 체험을 내용으로 하는 수필 양식은 여성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가장 적절한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문학과 비평은 수필과 수필의 작가는 배제된 채 작중의 인물이나 작중 화자 중심으로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여성작가 또는 여성 작품, 주로 시나 소설 작품을 대상으로 행해져 왔다. 수필은 형상화의 작업을 통해 그 동안 막연하게 느끼고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현실의 억압을 직시할 뿐 아니라 사회적 상황 속에서의 여성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대안을 모색하게 하기도 한다. 또한 그 동안 외면되어왔던 여성작가들의 체험들이 다양하게 형성됨으로써 여성적 삶의 양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본 연구를 통해 문학적 소재의 폭을 확장하는 한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작가들의 수필작품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문학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여성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할 때 가장 쉽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제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현대여성작가들의 수필집은 시중 서점에 나와 있지 않다. 여기저기 수필집, 동인지들을 개인적으로 구해야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작품의 접근이 쉬웠던 소설들에 한해 작품이 페미니즘적으로 조명되어왔지 수필의 경우는 학문적인 비평이나 페미니즘적 접근의 연구가 미미한 실정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수필은 어떤 문학 장르보다 향유 계층을 많이 확보하고 있고, 수필계 역시 어느 때보다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 융성한 창작 활동의 중심에 여성수필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수필가들이 문학성을 추구하는 미적 형상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지금까지 텍스트 비평은 남성의 시각을 주된 문제로 삼아 강한 분노를 표출하였지만 '여성중심비평'은 그동안 묻혀져 온 여성의 텍스트를 발굴하고 재평가하는 작업을 해왔다. 페미니즘 문학비평이 작가의 성별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여성작가들을 무턱대고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지 형성되어 왔으리라고 여겨지는 여성문학의 전통과 차이성을 규명하기 위해서이다.
현대는 여성수필의 중요성이 점점 더해 가고 있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런 실정인데도 국문학사나 문학개론 그리고 현대문학사의 서술에서 수필에 대한 언급은 누락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이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수필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듯 수필은 문학 구도의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주변문학으로 불리며 많은 문인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수필을 연구할 필요성이 점점 더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시중에서 접할 수 없는 문학텍스트라는 차원과 주변문학이라는 측면에서 배제되었던 수필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되는 것이며 또한 최초의 현대여성수필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분석이란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본 연구를 통해 한국여성문학사에 빠진 여성수필의 양식을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기존의 문학사에서 거의 언급이 되지 않고 사소하게 여겨져 버려진 여성작가의 작품이 실제로는 그 시대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의미심장한 코드로 해석될 수 있다. 남성 이데올로기 중심 사회에서 문학적 자기표현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외적인 핍박과 내적인 죄의식을 감수하며 익명으로 또는 남성의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해야 했던 초창기 작가들의 고통과 용기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출구를 찾지 못하고 사장되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재능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작품집을 만들어 출판하고 왜곡되어 해석된 생애를 정정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앞선 연구사 개관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문학은 물론 현대문학 연구논문을 살펴봐도, 여성시나 여성소설에 관한 연구물은 더러 있는데, 유독 수필 분야는 여성수필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적 행위가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수필을 경시하는 우리 평단의 한 단면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 사회가 아직도 남성 중심적인 보수적 가치체계에 순응하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여성문학에 나타난 여성의식을 고찰한 논문은 여성작가와 그의 작품을 다루고 있는 다른 연구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히 미흡한 편이라는 사실은 본 연구의 필요성을 더해 준다고 하겠다. 최근 몇 편의 주목할 만한 논의가 전개되고는 있으나, 이들은 주로 소설을 중심으로 사랑과 연애, 결혼, 근대성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여성작가 전체의 여성의식을 고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더욱이 소설의 경우, 픽션이기 때문에 작가의식의 규명이란 측면에서 한계를 지닌다. 또한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은 ‘실제적’ 인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일- 자아-가정이라는 삼각관계를 주로 보여주고 있으므로, 여성인물이 여성 정체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당대 문학의 여성성을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수필은 자기 서술적인 이야기로 구성되는 글이다. 수필 속에서 언술 행위의 주체와 언술 내용의 주체 사이에 성립되는 동일성은 다시 유사성을 끌어들인다. 즉 자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우 그것이 아무리 먼 옛날에 겪은 일에 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동시에 이야기의 서술을 만들어내는 ‘현재’의 사람인 것이다. 언술 내용의 주체는 언술 행위의 주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갖는다. 따라서 화자와 주인공의 동일성이 의미하는 것은, 화자와 주인공 사이의 관계가 저자와 모델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유사성의 관계로 추론할 경우, 진리라는 최종의 용어는 더 이상 과거의 즉자일 수 없고 언술 행위의 현재 속에 드러나는 대자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언술 행위의 현재 속에 드러나는 침묵, 고백, 풍자 등은 이야기의 다른 양태들과 마찬가지로 언술 행위의 한 양상으로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성 작가의 언술 행위 속에 드러나는 특성을 잘 분별해 봄으로써 그것이 여성 자신에 대하여 언술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의식’의 층위와 비교하여 그 차이를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여성 정체성의 다양한 모습을 제공한 1980년대 현대여성수필들을 통하여, 첫째,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여성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의 정도를 범주화하고, 둘째, 작품 속에서 발현되는 여성 정체성이 언술 특성과 의식 층위에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고, 셋째, 장르에 따른 여성 작가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며, 넷째,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몇 가지 주요 주제들은 연구 전체를 통해서 증명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여성의 삶을 침해하고 억압하는 체제와 힘의 구조를, 즉 자본주의 문화의 틀 속에서 언제나 ‘타자’처럼 구축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밝혀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왜곡되고 굴절된 여성의 재현에 대해 비판을 가하며, 양성평등으로 나아가야하는 변화의 움직임에 주시해야 하는 건 여성의 인간화를 바라는 연구자의 사명이라 하겠다.
작가가 펼쳐 보이는 문학세계와 그 업적을 논의하는 접근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본고는 지금까지 누구에 의해서도 다루어지지 않은 1980년대 여성수필에 나타난 여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분석해서, 한국 여성의 내면적 삶의 빛깔과 색깔인 현대여성수필의 특성을 발견해 내기 위해, 매우 한정된 범위이지만 다양한 여성학적인 측면에서 분석 가치를 지닌 현대여성작가의 수필작품을 다룰 것이다. 이와 같은 현대여성 수필의 언술 특성과 여성의식 분석을 통한 여성 정체성 연구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만큼 한국수필문학이 그간 이루어 온 성과 위에서 보다 든든한 발전의 도약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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