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제법요회) 초대 고박소암(故朴素巖) 회장님의 54주기(周忌)를 맞이하여 ☞음성으로듣기☜
오늘은 초대(初代) 고(故)박소암(朴素巖)회장님의 기제일(忌祭日)입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대정법(大正法)을 그릇되지 않게 깊이 간직하는 똑바른 길은 우리 말 독경을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신 초대 고박소암회장님께서는 독경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 업적에 대해서는 평소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어 오늘은 일련정종(日蓮正宗)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던 1960년대 상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1974.1.10. 장문사(壯文社)발행 「한국일련정종을 해부한다」에서 발췌)
고박소암회장님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656번지에 가황사(嘉皇寺)란 이름을 가진 법화종(法華宗)의 조그마한 사찰을 가지고 계셨으며, 당시 신도 수는 손으로 헤아릴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8·15해방 직후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온 지식인으로서 한 때는 경찰에 투신, 경위로 근무한 일도 있었습니다. 6·25동란 중에는 동양통신 기자로 인천에 주재하기도 했으며, 바쁜 기자생활 중에 우연한 기회에 게를 먹은 것으로 인해 폐디스토마에 걸려 8년간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병이 나날이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면서 생에 대한 애착과 회의 끝에 일련정종 서적을 읽고 감명을 받았으며,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개종을 결심하셨습니다.
고박소암회장님은 입신이후 병세가 회복되고 건강이 정상에 가깝게 되자, 1963년 7월 7일 「일련정종학회」라는 간판을 걸고 본격적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고박소암회장님은 “공덕 받으신 분 손을 드십시오.”하면서 공덕담을 발표하게 하고, 현증과 실천을 강조하시며 환희에 찬 좌담회를 전개하셨습니다.
그해 초가을 여자 정신병자가 찾아왔습니다. 그의 언니라는 사람이 “이 정법이 좋다고 해서 저의 동생을 살리고 싶어 왔습니다.”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의 말씀은 털끝만치도 거짓이 없습니다. 당신의 정성이 지극해야만 공덕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 의해서는 구제받지 못합니다. 오로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을 부르십시오. 현증(現證)이 나옵니다. 초신의 공덕이 틀림없이 나옵니다. 댁의 동생을 살릴 수 있습니다.”라고 고박소암회장님은 열변을 토하셨다고 합니다.
그 환자의 증세는 나체로 이방 저방을 다니면서 남자를 보면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걸어 모든 사람들이 당황해하였습니다. 신도들은 이체동심으로 제목을 불렀습니다. 일주일이 경과된 어느날 환자는 얌전하게 부엌에서 밥상을 차려 가지고 왔습니다. 신도들은 환희에 가득찼습니다.
그후 1964년 1월 7일 석간신문에 “왜색불교 일련정종창가학회는 또다시 침략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단연코 배격하라는 비난과 동방요배(東方遙拜)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며 천조대신을 모시는 종교라는 등 모든 신문은 공격의 포문을 일제히 열었습니다.
※참고 https://cafe.daum.net/nskdg/qmGQ/42
https://cafe.daum.net/nskdg/qvIO/81
그러나 고박소암회장님은 태연하게 ‘올 것이 왔구나.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한국에 대정법인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방해하는 강적이 나타난 것이다. 미증유(未曾有)의 법난(法難)이 닥쳐온 것이다. 누가 이 난을 막을 것인가?’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고박소암회장님은 무릎을 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기나 한 듯 “한국에서 대성인의 대정법인 대철학이 뿌리박히느냐 뽑히느냐 하는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 바로 이 심부름을 하러 나는 이 세상에 온 것이다.”고 하시며 자신을 시련의 시험대로 세운 듯했습니다.
8일부터 치안국, 서울시경, 동대문서, 종교인, 신문기자, 방송국기자 등 수십 명이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여러분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질문을 하시면 답변을 해드리지요.”라며 여유있는 얼굴로 표정마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질문 내용은 “하필이면 일본종교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고박소암회장님은 미소를 띄우며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니치렌대성인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바로 일련정종이야말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올바른 불법이요. 대정법입니다. 이 대정법을 만나려고 나 박소암은 20여년을 고대했습니다. 나는 동국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또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나는 국가와 민족을 좀먹었던 일본 사람들을 증오하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미증유의 대정법인 니치렌대성인의 올바르고 유일무이한 색심불이의 대철학, 삼대비법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놓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자신이 연구한 교리를 설명했습니다.
1월 28일 검찰청에 출두하셨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좌담회에 수차 참석한 일이 있었던 사람이 바로 담당 검사였습니다. 이로부터 한동안 일련정종의 파동은 잠잠해졌습니다.
오늘 초대 고박소암(故朴素巖) 회장님의 54주기(周忌)를 맞이하여 초대 회장님의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의 정신을 이어받아 ‘발고여락(拔苦與樂)의 마음이 꽃피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