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을 긁적거리며
심보선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내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이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 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연인일 뿐이라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믿어왔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어쩌다 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증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 - - - -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엣 연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엣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듯
인증을 긁적거리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 –쓰기로 옮겨 온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3일, 5일, 6일, 9일, - - - - -
달력에 사랑의 날짜를 빼곡이 채우는 여인,
오전을 서둘러 끝내고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해
내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는 여인, 그녀를 사랑하기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증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 심보선 시집 <눈 앞에 없는 사람> 에서 발췌
입술의 인증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가? 시인은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을 차용한다. 천사들은 자궁 속의 아기를 방문해 지혜를 가르치고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에 모든 것을 잊게 하기 위해 쉿, 하고 손가락으로 아기의 입술과 코 사이에 얹는데 그로 인해 인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증이 천사의 역할로 발생한 것이라면 이는 생명현상을 칸트의 『판단력 비판』의 합목적성으로 설명한 것이다. 즉 어떤 “원인의 합목적 사용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 것이다.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을 잊으라고 권고한다. 태어난 화자는 줄곧 잊고 있었다. 내가 나인 이유도 잊고 내가 이방인들에게 이끌리는 이유도 잊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화자는 깨달았다. 태어날 때 이방인의 탄식을 잊으라는 “망각에 굴복한 채 태어났”고,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철과 같은 법칙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가끔 인증이 가려운 것은/ 천사가 차거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방인 탄식, 타인의 슬픔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이 나의 늙음과 죽음을 해결하는 일이라고 인지한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할 때 깨닫는다. 그가 깨달은 것은 인류의 아픔이며, 상처이며, 죽음이다.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연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깨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신다. 그들의 피가 내 손에 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호 상관 관계이다. 그때 불현듯 영감이 떠올라 “인증을 긁적거리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쓰기로 옮겨 온다”
결국 심보선 시인의 시 쓰기는 타인의 울음과 탄식이다. 시는 어떤 공동체의 ‘우리’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창작 방법이기도 하다.
이 시는 사랑에 대한 시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증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죽음의 한계 속에서 청혼을 하고 사랑을 하는 삶의 비극이 내재되어 있다.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상반되는 대립관계에 놓여 있다. 그 찢겨진 내밀성을 감추고 살아간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죽음”이란 모리스 블랑쇼가 언급했듯이 너와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닌 “어느 누구의 죽음도 아닌 죽음”이다. 존재했으나 지금은 없는 아무 것도 아닌 누구는 비인칭이다. 따라서 비인칭의 죽음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생 속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생의 부조리한 단면을 드러낸다.
2023. 10. 2
감상자 /이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