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 경공(景公)이 루(蔞)라는 땅에 유람 갔다가,
갑자기 재상 안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경공은 소복을 입고 수레를 타고 재촉하여 돌아오면서,
스스로 너무 느리다고 여겨 수레에서 내려 뛰었으며,
뛰는 것이 느리다고 여기면 다시 수레에 올랐다.
이렇게 도성에 이르도록 네 번이나 내려 뛰어오면서
게다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달려왔다.
안자의 주검에 이르자 그 주검에 엎드려 이렇게 호곡하였다.
“그대 대부께서는 밤낮으로 나를 채찍질하여 촌척(寸尺)의 빠뜨림도 없이 살펴주었소.
그러나 과인은 오히려 음일(淫佚)하여 이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여,
백성에게 원망과 큰 죄를 쌓아 놓았소.
지금 하늘이 이 제나라에 화를 내리면서 나에게 그 죄를 내리지 않고 선생에게 내렸으니,
이 제나라 사직이 위험하게 되었소! 아, 백성들이 장차 누구를 믿고 하소연 한단 말이오?”
✼ 社稷: 나라 또는 조정을 이르는 말.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고대 중국에서, 새로 나라를 세울 때 천자나 제후가 제사를 지내던 토지신과 곡식 신.
✼ 안자(?∼BC. 500): 관중과 더불어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의 명재상 중의 하나이다.
제나라 출신으로 춘추말기 영공(靈公: 재위 BC. 581∼554)과 장공(莊公: 재위 BC. 553∼548)․
경공(景公: 재위 BC. 547∼490)을 섬겨 기울어져가는 세기 말의 예교(禮敎)를 바로잡아 보려고 애썼다.
안자의 이름은 영(嬰), 자는 평중(平仲)이며, 이유(夷維)땅 출신이다.
그는 제나라 영공 26년(BC. 556)에 아버지인 晏弱(桓子)이 죽자,
뒤를 이어 제나라의 卿이 되어 영공과 장공․경공을 차례로 섬기는 재상의 임무를 맡았다.
그는 각각 다른 세 임금을 한 마음으로 섬겨 슬기와 재치, 그리고 촌철살인의 口辯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해 나갔다.
안자는 각기 다른 세 임금을 모신 것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듣건대 순종과 사랑을 게으름 없이 실천하면 백성을 부릴 수 있고,
강포(彊暴)하게 굴어 충성 없이 한다면 단 한 사람도 부릴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는 1백 임금도 섬길 수 있지만, 세 가지 마음으로는 단 한 임금도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제나라가 끝내 田氏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을 예언 하였으며,
결국 춘추시대의 姜氏齊가 전국시대의 田氏齊로 교체되는 혼란기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게다가 안자의 생몰연대는 孔子(BC. 551∼479)와 비슷한 춘추말기의 동시대로서,
둘 사이는 서로 존경하되 더러는 대립과 충돌로 껄끄럽고 묘한 인연이었음을 기록을 통해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안자가 재상으로 있던 제나라 바로 곁에 공자의 나라였던 魯나라가 있었고, 둘 다 문화국으로서의 긍지를 지니고 있었다.
즉 노나라는 周公 旦이 封을 받아 周나라 姬姓의 정통이 흐르고 있었고,
제나라는 太公望 呂尙(姜子牙)이 봉을 받아 춘추시대에는 최초의 覇者인 桓公을 배출한 여세가 뿌리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남쪽 신흥세력인 吳․越과 또 하나의 강국인 楚나라, 그리고 서쪽의 晉과 秦, 북쪽의 燕등의 국가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중원의 晉과 齊나라는 곧 다가올 전국시대를 맞이하는 권력의 재편 과정을 겪고 있었다.
다시 말해 晉나라는 六卿의 싸움 끝에 韓․魏․趙의 三晉으로 분리되고, 제나라는 田氏에 의해 易姓의 朝代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교가 무너지고❮힘이 곧 정의❯인 춘추말기의 혼란기를 힘겹게 걸어가고 이끌었던 제나라의 재상이 바로 안자였던 것이다.
기록을 통해 보면 키는 작고 볼품은 없었으나 언변과 재치가 아주 뛰어나서 그가 남긴 고사만 해도 수없이 많다.
더구나 사마천조차도 ❮사기❯안자열전의 찬에서 “가령 안자가 지금 다시 있다면,
내 비록 그를 위해 마부가 된다 해도 기쁨과 흠모로 모시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안자의 학술사상 면에서는 소속이 복잡하여 뒤의 학자들이 유가, 묵가에 소속시키기도 했으나,
결국 안자의 사상은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별성이 있고, 게다가 諸子學이 충분히 파벌을 이루기 전인 춘추시대의 인물이라
구태여 漢志의 九流十家의 한 학파에 열입시키고자 하는 것이 무리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晏子 春秋】
-《설원(說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