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14일 오전 9시 쯤 경주의 한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정부가 요구하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잠정중단을 결정했다. 13일 오후 한수원 노조와 원전 건설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이사회가 무산되자 이날 비밀리에 회의장소를 옮겨 안건을 처리한 것이다. 첫날 회의가 열리지 못하자 한수원 측은 다음 주 초 쯤 일정을 다시 잡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이사 13명이 모여 회의를 열고 12명이 정부안에 동의해 전격 처리했다. 지난 시절 국회의사당 본관이 야당에 점거 당하자 새벽에 여당의원들이 의사당 건너 제3별관에 몰래 모여 의장이 방망이를 두들기고 법안을 전격적으로 처리한 적이 있었다. 국회 회의는 사전에 시간과 장소가 공시돼야 한다. 그래서 당시 ‘별관 통과’가 합법적이냐 아니냐를 두고 설왕설래 했지만 정의는 강자(强者)편이었다. 이번 한수원 이사회를 두고도 합법여부가 거론됐으나 한수원 측은 상법까지 거론하며 합법임을 설명했다.
그렇게 옳고 타당한 일을 호텔이 문을 열자마자 서둘러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 한수원은 첫 회의가 무산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결정 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왕 그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거면 반대 측의 주장이나 체면을 생각해서 며칠 더 늦출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마치 상대방의 뒤통수라도 치듯 다음날 아침 부리나케 정부가 내린 지침을 이행했다. 처절한 국민들의 아우성보다 서슬 푸른 산자부의 ‘협조 요청’이 더 두렵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는 일이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화두로 삼았던 것 중 하나가 ‘치열한 토론을 통한 결정’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윗저고리를 벗은 채 청와대 비서진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는 장면을 자랑스레 TV에 방영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번 사안도 최소한 쌍방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다투는 과정을 거쳐 어느 한 쪽으로 결말이 났어야 옳았다. 하지만 치열한 토론은커녕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이 주권자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았는지 의심스럽다.
이번 일의 전말을 보면 정부의 고압적인 자세에 한수원이 굴복했고 한수원 노조와 울주군 서생면 주민협의회는 이들과 맞서 발버둥 치다 그들의 ‘한방’에 나가떨어진 형국이다. 정부와 한수원의 이런 자세는 원전건설 중단 찬반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가늠할 수 있는 범주로까지 연결된다.
기사입력: 2017/07/16 [14:35]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index.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