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22/200330]아부지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집을 고치기 전에 맨먼저 한 일이 본채 채양과 헛간 지붕의 슬레트를 걷어내는 일이었다. 모두 아시리라. 이제 ‘전설’이 된 70년대 전국을 뒤흔들었던 새마을운동, 초가집을 없애고 대대적인 주택개량사업을 할 때, 너도나도 올렸던 슬레트지붕. 회색 석면石綿물질, 골이 깊게 패어 빗물도 잘 빠졌다. 하여 엇비슷하게 뉘여놓고 삼겹살 구워먹기에 딱이었던 슬레트(모르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되어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도 야생박쥐를 식용으로 해서라던가?). 지금은 꼴불견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발암물질 1순위. 개인소유이지만 처리문제에 있어 손도 못대게 되어 있다. 일정면적의 처리비용은 군에서 지원하고 있다.
대문 앞에 돼지막사 50여평 역시 슬레트지붕이었다. 방호복을 입은 전문가들이 정리한 후, 시멘트 등 잔해를 치운다고 치웠어도 흉물이었다. 압싸바리라 부르는 25톤 트럭으로 흙을 세 차나 부었건만, 생활쓰레기와 자갈이 어찌 많은지 몇 날 며칠 골라내도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구십 평생 ‘프로 농사꾼’ 아버지가 복지관 출근을 하지 않은 일요일, 아침 8시부터 쇠시랑을 들고 나섰다. 농촌에서는 땅만 있으면 무슨무슨 작물을 심어야 하건만(혹자는 고구마를, 혹자는 생강을 심으라고 했다), 아버지와 나는 그 땅 전체를 꽃밭을 만들기로 이미 작정했다. 대문앞 50여평에 꽃밭이라? 온갖 꽃이 피어대면 우리집 전망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동네도 환해지리라. 이것도 적선積善의 하나일 터.
그러나 밭 정리는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다. 아버지는 도무지 휴식을 모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지는 여전히 불가사의하지만, 백면서생白面書生인 나는 오로지 ‘죽을맛’이었다. 오전 내내 매달리니 겨우 밭꼴이 되었다. 라면 3개로 점심을 때운 후 오후 드디어 꽃씨를 심고 뿌리기 시작했다. 해 저물녘에야 작업을 간신히 마쳤다.
자, 무슨무슨 꽃씨를 뿌리고 심었는지를 보자. 맨먼저 보름 전쯤에 4분의 1정도의 면적에 함박꽃(작약芍藥)을 심었다. 어제는 빙 둘러 꽃잔디를 심고, 사이사이 달맞이꽃씨를 뿌리고, 약용으로도 쓴다는 ‘은쑥’을 심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천지삐까리였던 할미꽃을, 붓꽃과 사철패랭기꽃씨를 둘레에 뿌렸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의 씨를 엄청 많이 심은 게 가장 기분좋았다. 10평만 제대로 해바라기밭이 된다면 그것도 보기에 심히 좋으리라. 소피아 로렌이 열연했던 ‘해바라기’ 영화를 기억하시리라. 거의 무한대로 펼쳐진 해바라기밭. 나는 그 영화 전에 벌써부터 ‘해바라기’를 시로 알아 지독히 좋아했었다. 일제강점기 활약하다 요절한 함형수(1912∼1946)라는 시인, 작품도 10여편밖에 되지 않지만, ‘해바라기의 비명’만은 문학사에 남았다. sunflower라는 영어단어도 좋았다. 퇴비도 네 푸대나 뿌리고, 조리로 물을 주었다. 모란 다음이라는 함박꽃이 만발하고, 내가 직접 뿌린 해바라기들이 환하고 둥근 얼굴로 해를 바라보며 일제히 쑥쑥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입이 벙그레질 일이 아닌가.
여기서 잠깐, 위에서 언급한 함형수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를 감상해보자.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 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그는 ‘생명파’라 불리는 동인지『시인부락』의 멤버로, 서정주·김달진·김동리·오장환·김광균 등과 어울렸다. 정열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5행의 짧은 글 속에 쏟아넣었건만, 해방 이후 30세로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에서 죽었다한다.
드디어 꽃밭의 작업은 끝나고, 이제 꽃 피는 그날만 기다리면 된다. 가끔은 김대중 선생님이 그 바쁘고 어려운 정치생활을 하면서도 평생 그러했듯 나도 조리로 물을 가끔씩 주어야겠다. 소싯 적 배운 동요도 떠올라 피식 웃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채송화도 봉숭화도 한창입니다/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아빠라니? 아부지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패랭이꽃도, 붓꽃도, 달맞이꽃도, 해바라기꽃도, 함박꽃도 피어날 것인가,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하다. 물론 솟아나겠지만, 그렇다면 땅과 흙은 ‘마술사’이고, 꽃씨들의 유전자는 ‘귀신’일 것이다. 조물주造物主를 향해 만세를 부를 것이다. 오늘은 오수장. 채송화도 맨드라미도, 봉숭아씨를 사와 낮은 담과 장독대 주위에 심어볼 생각이다.
나는 왼종일 꽃밭 조성작업이 너무 힘들어 땡땡이를 두 번이나 쳤다. 마침 근처에서 수 백년 된 소나무를 캐가고 있기에(내가 조경업자를 소개하여 ‘복비’까지 받게 생겼다) 그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본 것이다. 그런 ‘장관’이 없었다. 역시 세상은 ‘전문가들’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기계가 아니면 인력으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투성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나는 땡땡이라도 쳤지만, 2시간 일하면 최소 20분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 저 연세에 쉼없이 일하시는 저 분은 누구인가? 내처 뒷밭에 백도라지와 아욱까지 심고 손을 터신다. 참, 대단하고 위대하시다. 이 시대 마지막 농부라 할 우리 아부지여! 애쓰셨습니다. 부디 숙면하셨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