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믿음과 헌신: 붓다와 보살 숭배4. 보살들
4.4 문수사리보살
관세음보살이 모든 붓다들의 자비를 구현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문수사리는 깨달음의 또 다른 ‘날개’인 지혜를 나타낸다. 물론 이 두 보살들은 십지보살이며 실제로 동일한 신통력을 지녔다. 그러나 관세음 보살이 『법화경』에서 자비의 영웅적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문수사리는 특히 『유마경』과 같은 경전에서 궁극적인 진리에 관한 의문들에 대한 대담자 역할을 한다. 한편 타라와 마찬가지로 문수사리도 열여섯 살의 나이로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면서 원숙한 지혜를 지닌 ‘왕세자’로 묘사된다. 문수사리는 초기의 반야부 경전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7백송반야경(七百頌般若經, Sapta?atik? Prajñ?p?ramit?)』에서는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문수사리 신앙에 중요한 경전인 『문수사리보살불찰공덕장엄경(文殊師利菩薩佛 刹功德莊嚴經, Mañju?r?buddhak?etragu?avy?ha)』은 이미 3세기 말에 중국에서 한역되었다. 폴 해리슨에 의하면 아주 초기에 한역된 지루가참의 경전들은 ‘2세기 중반 중요한 전형적인 보살상으로서 문수사리의 등장을 반영한다’고 한다. 한편 인도 불교예술에서 문수사리는 상대적으로 늦게 (5세기경부터) 나타난다. 문수사리보살 신앙은 중앙아시아의 코탄이나 심지어 중국에서 발전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 문수사리보살은 6세기경부터 유마경에서 재가보살인 유마힐(維摩詰)과 심오한 진리의 세계를 담론하는 대담자로 등장한다. 문수사리와 중국의 북부지역에 있는 오대산(五臺山)의 결합은 분명히 인도 자체의 고전시대에도 알려져 있다. 『화엄경』에서 문수사리의 영토라고 말하는 (인도 또는 중앙아시아에서 볼 때) ‘북동쪽’의 산을 중국 학자들은 확인하였다. 7세기 말에 인도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순례자들이 오대산까지 순례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몽골과 만주족 출신의 여러 중국 황제들은 팍파와 같은 티베트라마와 제5대 달라이라마를 문수사리의 화신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네팔에서 문수사리는 호수의 물을 흘려보내 카트만두 계곡을 형성했다고 하는 전설을 통해 네와르 불교문명의 기원과 결합하였다.
『2만5천송반야경』에 따르면 십지에 도달한 보살은 여래, 즉 붓다라고 한다. 그는 붓다가 아니지만 보통 중생과 비교하면 붓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놀라운 존재이다. 『문수사리보살불찰공덕장엄경』 은 문수사리가 과거불 앞에서 영겁 동안 보리심을 일으킨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일련의 서원을 세웠다. 그는 탐욕, 성냄,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항상 중생들을 위해서 활동할 것이다. 그는 항상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고 청정하게 할 것이다. 더욱이 문수사리는 자신만을 위해 깨달음을 빨리 성취하기를 결코 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미래가 끝나기 전까지’ 중생들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무한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불국토를 청정하게 할 것이며, 자신의 이름을 시방세계에 완전히 알릴 것이다.
문수사리는 이제 보살의 십지를 획득하였다. 그는 왜 즉시 완전한 성불로 나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공과 행위를 완전히 이해함에 따라 더이상 해야 할 것이 없다고 답한다. 그는 완전한 성불이라는 개념도 버렸다. 그는 더이상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다. 실로 공의 차원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Chang 1983: 170 이하, 177- 8, 183). 이렇게 말하면서 문수사리는 자신이 이미 완벽하게 깨달았다고 설한다. 『앙굴마라경(Añgulim?l?ya S?tra)』에 따르면 문수사리는 불국토를 가진 실제 붓다이다(Lamotte 1960: 29-30). 십지보살은 중생들을 위해서 어떤 모습으로든 현현할 수 있다. 아마 2세기 말쯤 처음 한역된 듯한 『수능엄삼매경』의 중요한 품에서 문수사리는 붓다의 모든 공덕들을 현현하고 궁극적으로 열반에 들었거나 혹은 열반에 든 것처럼 보이는 과거에 붓다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위대한 보살은 이러한 행위에서 보살로서의 본성(자비심)을 잃지 않으며, 사실 반열반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사라지거나 중생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수능엄삼매경』에 근거한다고 여겨지는 (3세기 말에 한역된) 짧은 경전인 『문수사리반열반경(Mañju?r?parinirv??a-s?tra)』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문수 사리는 선정의 힘을 통해서 여러 차례 다른 지역에서 반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 주며 심지어 성스러운 사리들을 남기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중생들을 위한 일이다. 그는 필요한 만큼 많은 붓다들을 화현하지만 중생들이 자비와 보시를 통해 공덕을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으로 현현하기도 한다. 심지어 문수보살상을 바라보는 것과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한없는 이익이 생긴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중생들은 윤회의 낮은 단계에서 해탈할 것이다(Lamotte 1960: 35-9). 중국의 전통에 따르면 문수사리는 자신의 성지인 오대산을 방문하는 모든 순례자들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심지어 도둑이나 도박꾼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현대의 대선사인 허운(虛雲, 1840?-1959) 화상은 자신의 순례 여행길에 어떤 거지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중에 그가 바로 문수보살의 화신임을 알았다고 한다. 불교 역사에서 많은 학자들이 문수사리로부터 영감을 받았거나 그를 보았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아마도 총카파의 체험일 것이다. 그래서 문수사리는 티베트에서 중관의 심오한 지혜와 가르침을 주는 보살로 통한다.
석가모니불은 과거에 문수사리의 제자였으며, 그가 붓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수한 붓다들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인 문수사리 덕택이라고 말하는 경전도 있다. 또한 문수사리는 지혜의 화신이며, 여기서 ‘모든 붓다들의 어머니’로서 반야바라밀(Prajñ?p?ramit?)여신(女神)과 타라보살을 상기해 보자. (7세기 말 또는 8세기 초) 만주슈리미트라 (Mañju?r?mitra)라는 학자는 그를 ‘보리심에 대한 틀림없는 이해, 모든 붓다의 탄생지’로 말한다(Mañju?r?n?masa?g?ti 1985: 8). 티베트 불교에서 염불을 위한 탄트라 계열의 가장 중요한 경전 가운데 하나인 『만주슈리나마상기티(Mañju?r?n?masa?g?ti)』는 문수사리의 뛰어남에 대해 거듭 말하고 있다. 문수사리는 “완전히 깨달은 붓다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앞의 책: 8: 42). 그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최고의 전지 전능한 존재이다(앞의 책: 9: 15). 그는 모든 붓다들의 어버이이며 동시에 가장 뛰어난 자식이다(앞의 책: 6: 19). 문수사리는 신들의 주인인 드라신이며 신들 중의 신(앞의 책: 10: 6)이며, 모든 중생들의 마음속에 머물고 있다(앞의 책: 9: 20).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인도의 초기 대승불교가 특정 경전과 특정의 선정에 집중된 의식행위로 특징지워질 수 있으므로 분명히 다른 불·보살 그리고 경쟁적인 불·보살에 중점을 둔 집단이 대승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떤 경전에서 문수사리는 여덟 살짜리 소녀와 지혜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혜를 얻는다. 그녀는 문수사리가 서원을 세웠을 때 60겁 동안 보살도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래 불국토는 문수보살의 불국토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고 한다(Chang 1983: 93- 4). 다른 곳에서는 문수사리의 불국토가 극락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한다(앞의 책: 183-4). 그러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문수사리의 조각상은 상대적으로 후대에 발전하였다. 인도-티베트 불교에서 그는 보통 오른손에는 머리 위로 높이세운 칼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책을 들고 연꽃위에 앉아있는 젊은 왕자로 표현된다. 그는 때로 왼손에 연꽃 줄기를 들고 있으며 책은 왼쪽 어깨 뒤에 있는 연꽃위에 있기도 하다. 칼은 무지(無知)의 속박을 끊는 직관의 칼이다. 그가 들고 있는 책은 일반적으로 『8천송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반야부 경전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예술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중앙아시아 예술에서 문수사리는 사자를 타고 나타나고, 종종 6개의 어금니를 지닌 코끼리를 타고 있는 『화엄경』의 보현보살과 비교된다. 두 보살은 비로자나불의 양옆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전형이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화엄경』을 중시하기 때문에, 또한 『법화경』의 수호자로서의 그의 역할 때문에 보현보살은 중국과 일본의 불교의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그를 성스러운 산과 연관시켰는데 지금의 사천성(泗川省) 아미산(峨眉山)이 그곳이다.
돈황에서 출토된(10세기) 문수사리와 사자의 목판화는 분명 중국 (782-897)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사찰이 현존하는 오대산과 문수사리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Zwalf 1985: 230). 14세기 중국의 뛰어난 그림에서 문수사리는 조금 화난 듯한 표정으로 졸고 있는 사자의 등 위에 앉아 편안하게 (반야경인 듯한) 두루말이 책을 읽고 있는 긴 머리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천에 있는 대족(大足)의 문수상(1154)도 사자 위에 올라탄 모습이다. 중국의 사자는 문수보살의 사자와 표정이 닮은 커다란 북경 개와 흡사하다. 문수사리의 왼손에는 책이 있다. 중국과 일본의 예술에서 문수의 검(劍)은 대개 없어서는 안 될 상징물이다(Oort 1986: 2, plate 2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