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항상 마음을 단호히 하고 자신의 악과 맞서보지만 여지없이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악의 세력은 너무나 거대하여 절대 정복할 수 없다는 패배의 아픈 상처와 그 기억만 남기게 된다. 그동안 악과의 싸움에 빈번히 실패함으로 가지게된 불가능의 선입견들은 자신의 고질적인 악을 이제 더 이상 이길 수 없다는 좌절과 무력감을 불러 일으켜 그나마 용기는 꺾이고 마음은 온통 악한 영들의 정죄 의식뿐이다. 마음의 가책은 그것이 죄라고 연방 소리쳐 외치지만 그때마다 지난 날 패배의 어두운 생각들이 재빨리 기억을 스치고 지나며 다시 일어서려는 용기와 믿음마저 앗아가고 만다.
악과의 싸움에 지기만 하였던 원인들은 여러 측면에서 검토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생각되는 것은 그것에 대해 단 한 차례 맞서보고는 그 싸움에 패하자 즉시 포기와 단념, 좌절감 등으로 물러서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한 마디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악착같이 계속하여 싸우고 또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나 악과의 싸움은 단 한 차례의 시도로 끝났을 뿐! 그것이 아무리 단호한 결심을 동반한 것일지라도 그것만으로 끝장을 보려는 생각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닐까! 대개 악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는 단 한번 악과 맞서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만일 악에 굴복하였을지라도 절대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용기를 내어 다시 싸우려는 생각이 참으로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단 한번의 시도로 승리를 꿈꾸는 것은 평소 악한 영들의 세력이 얼마나 가공할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이 이루어지는 가장 적절한 선택의 때는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하겠다. 때로 예수님은 우리가 단번에 승리하도록 이끌지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단숨에 이기는 것보다 많은 갈등과 실패, 좌절의 수고 속에 힘겹게 이겨나가는 것을 통해 더욱 강하고 지속적인 믿음과 인내를 불어넣으시기 때문이다. 쉽게 이긴 것은 쉽게 잊혀지지만 어렵게 이긴 것은 많은 나날의 어려움을 견디게 할 정도로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다.
그럴 때의 예수님의 뜻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낙심치 않고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끝없는 도전을 배우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앞으로 수행될 수많은 전투를 미리 준비케 하는 힘을 길러주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 한번 도전으로 실패하면 "할 수 없어!" 라며 낙심과 체념으로 일관하고 만다. 그러는 사이 뚜렷이 클로즈업되었던 악은 패배의 쓰라린 흔적만을 기억에 남겨 다시 도전할 용기마저 앗아간 후 슬며시 흐지부지 되어 그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그 악은 처리되지 않은 채 잠복되어 더 강한 힘으로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자신의 악과의 싸움에 있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쓰러지면 또 다시 도전하여 기어코 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단 한번 맞서고 패퇴한 것으로 자신이 악과 싸워보았다고 심중에 소리쳤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에게는 성경이 가르치는 방식 그대로를 따라 자신의 악과 싸워본 기억이 얼마나 있을까!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전투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각자 자신의 악과 싸우는 원리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시는데 우리는 이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악을 치워본 흔적이 손꼽을 만큼 드문데도 생각하기를 "주님이 우리 안에 또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라고 자랑스럽게 믿고 있지나 않는지 염려가 된다.
우리가 중생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자신의 악과 싸워 그것들을 물리치는 이것뿐이다. 오직 이 길 외에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령 거기 기가 막힐 정도로 빛나는 진리들에 대한 깨달음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우리의 구원이 보장받을 수는 없다. 구원은 지식과 거기서 정립된 교리 등 머리 속으로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어떠한 제약에도 막힘 없이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와 그 생명에서 나온 강인한 힘이 지금 자기 영혼에 존재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부터는 이전과 달리 자신의 악을 물리치기까지 끝없는 투쟁을 하려는 마음의 각오, 그 열의가 절대 필요하다. 그동안 마음에 소원하는 바가 희미하였으니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의와 결심도 없고 또 이루어질 것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바라는 굳센 소망도 없었다. 일상의 생각이 그러하니 자신의 악과 싸워볼 전투 진영 한번 제대로 마음에 갖추어 보지도 못한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되는 대로 질질 끌려가는 신앙 생활에 갇혀있었던 것은 목표를 뚜렷이 정하여 기어코 그것을 정복하고 말리라는 마음의 확신과 반드시 그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확고히 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마음을 추스르려는 생각들이 그동안 우리에게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조그마한 어려움이라도 만나면 그만 급히 마음을 허물고만 경험밖에 기억에 간직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은 빈번히 거듭되는 그러한 시도에 식상해져 있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롭고 강인한 힘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악에 저항할 힘이 안에 전무하니 끌려가면서도 영혼은 신음 소리 한번 제대로 내어보지 못한다. 아니 영혼은 고통으로 연신 소리를 질러대지만 우리의 겉 사람은 그 비명을 들을 수 없을 만치 이미 육체화 되어 버렸다는 것이 더 올바른 생각이리라.
그러나 이 모든 영혼의 문제점들은 어느 한 순간에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와 같은 영혼의 허약한 기질들은 실로 오랜 시간을 두고 내면에 자리잡힌 까닭에 그것을 타개할 강인한 힘은 짧은 시간 안에 키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힘이 여태껏 내면에 생성되지 않았던 까닭에 자신의 악과 피 흘리기까지 사투를 벌일 각오가 우리에게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신앙은 급조되지 않는 법! 마음으로는 어두운 과거를 일순 떨어버리고 삶의 국면을 사뿐히 새롭게 출발하고 싶지만 그것이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것은 자신의 악을 이길 수 있는 영혼의 힘은 기적적으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가 시도해본 결심과 각오가 번번이 작심 삼일의 즉흥적인 결과로 끝나고 만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것은 마치 열 달간의 산고를 겪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순간에 아이를 낳는 기쁨을 맛보려는 것과 같이 욕심의 눈으로 그 일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 마음 상태를 지속적으로 지탱시켜줄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힘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내면에 축적되는 법이다. 그것이 진정한 힘으로 뒷받침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애타며 내면에 끌어 오르는 지극한 열망과 강렬한 소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늘상 원치 않는 곳으로 이끌어 가던 마음의 좋지 못한 요소들이 주님에 의해 이제 조금씩이나마 그 배열이 바뀌며 올바른 질서를 찾아가기까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소원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상 우리의 신앙 여정 중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열망과 소원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일에 많은 시간과 애씀을 들여야 하는데 왜냐하면 마음에 끓어오르는 뜨거움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신앙에 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나고 이는 곧 마음을 개혁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음의 강도를 이와 같이 뜨겁게 하기 위해 절대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마음 주시기를 예수님께 구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예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마음에 뜨거운 불을 붙여주시기를 쉬지 않고 구하는 것이야말로 이 일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크나큰 작업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덧붙인다면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주실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변함 없는 믿음을 우리가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