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헷세는 "고향에 대한 귀환 욕구와, 여행으로의 충동은 나를 지배하는 감성의 전부이다"고 했습니다.
신록의 유월에 다시 찾은 백운산 !
신록에서, 초록 진초록으로 번지는 향연은 너무 변해 버린 주변경관 탓인지 왠지 모를 두려움 같은 게 엄습합니다.
벌써 여섯 해 전 이맘때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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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붕어빵- 막내아들녀석은 아빠와 단둘이 하는 산행길 준비에 마냥 달떠 배낭 챙기느라 분주하다.
지깐에 쪼잔해뵈는 엄마와 누나들 틈에서 벗어나 남자끼리 떠나는 길에 무척 설레이나 보다.
그래도 나를 남자로 여겨줌에 녀석이 고마웁다.
늘 그랬듯이 매시 20분마다 인천공항신도시에서 출발하는 203번 마을버스에 오른다.
영종도에서 뱃터 가냐구 물으면 구읍, 삼목, 잠진 세군데니깐 잘 말씀해 달라는 원주민 운전사의 과장스런 너스레가 싫지만은 않다.
뒷자리에 같이 앉아 차창밖 시골 경치 보며 아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팠지만 녀석은 굳이 앞에 혼자 앉겠단다.
혼자만의 공간을 갖으려하니 이젠 다 컷나 보다. 대견함에 앞서 왠지 섭하기도 하다.
언젠가 과외비 많이든다고 걱정하는 엄마 말을 듣곤, 다른일로 되지게 혼난적 있는 녀석이
" 엄마, 목소리 대빵 크자너. 마이크두 필요 음네 모, 길바닥서 생선 장사 해! "하던 철부지였는데...
몸베 옷차림의 버스 안 촌로들 수다와 어울어진 차창밖 시골 풍경이 정겨웁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시계추 같은 일상에서 꽤나 오랬만의 일탈이다.
야리꾸리한 동네이름의 섬마을들을 돌고돌아 삼십분을 달려 버스는 영종중학교 앞을 지난다.
고등학교적. 교련복에 목총 들고 인천에서 배타고 건너와 전학년이 무장구보로 도착해 교련합숙훈련 하던곳이다.
쓰르라미 소리만이 들리던 적막한 여름방학날, 무인도에 상륙한 점령군인냥 교관선생님 구령에 맞춰
" 하나 둘 셋 넷. 하나둘셋넷, 하나둘셋넷! "을 크게 꽥꽥 외쳐대던 그 점령군사령부앞에서 잠시 감회에 젖는다.
다음 정거장인 전소에 내려 큼지막한 갈색의 '백운산' '용궁사' 화살표지판 보며 영종출장소를 비켜 오른쪽 아래의 용궁사길로 아들과의 봄 백운산행을 시작 한다.
우리나라에서 풍광이 삼삼하거나 기통차게 좋은곳에는 어김없이 절이 차지하고 있다.
아내와 산행시 등산로에서 이탈해 슬쩍 들러 본 용궁사가 아쉬워 아예 절 길로 부터 산을 오른다.
후회스럽잖게 길 양측에는 잔잔한 가로수가 있다.
지난 가을 한창 공사중이던 커다란 불상이 완성되어 돈 낸 이들의 소망이 이름으로 새겨져 절터 맨 위에 미끈히 함께 서 있지만 눈이 가질 않는다. 몇 백 년, 아니 천 년은 넘었을 스러지는 법당 앞 고목에서 눈 돌리니 흥선대원군이 썼다는 정문의 우람한 현판 글씨가 인상적이다. 유난히 관심이 간다.
역사를 가정한다는 것이 어리석지만, 쇄국정책을 폈던 대원군 정권시대에 개방의 흐름을 잘 탔더라면 우리는 일제에 침략 당하지 않고 부강한 나라의 틀을 만들었으리라는 안타까움에 흥선대원군을 좋아하진 않으나 격동의 시대를 산 풍운아가 쓴 현판의 몇글자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역사의 연민 아니겠는가?
어느 독립투사의 사당 현판을 떼내어 도끼로 뽀겠다는 지방신문사 사장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몹시도 궁금하다.
그를 구속도 하지 않다가 여론에 떠밀려 부랴부랴 수사하는 이 나라는 과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유홍준 문화재청장을 처음 만난것은 그가 지방대 교수 시절이던 내 나이 서른 중반 즈음이었다.
그가 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매료되어 책 내용 따라 문화유산 1번지라 하는 해남을 출발해 올라오며 호남여행을 했었다. 그 여행길에서 광주 망월동 묘지 영령들을 찾아 젊은 대학생들과 소줏잔에 눈물 나누며 이 나라 민주화에 대해 토론을 한 것도. 결국 유홍준 문화재청장 그에 의해서였다.
기억컨데 정약용의 강진 유배지를 설명하며 정조의 개혁사상을 겯들여 강조 한 듯한 그의 글에서 그가 정조를 흠모했음이 엿 보인다.
내 좁은 식견으로 광화문에 관련된 우리나라 최고 통치자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경복궁을 복원한 흥선대원군의 고종. 그리고 성종이 그의 큰어머니 행차길에 문안 드리고자 광화문 옆 초소에 잠시 기거 했다는 것 외에 우리 역사에서 다른 기록은 없다. 정조 또한 전혀 관계가 없다.
대통령에게 '개혁군주 정조와 같으시다'고 말했다하여 구설수에 올랐던 문화재청장의 변명대로
'정조를 닮으시라'했다손치더라도, 그가 광화문 현판을 아무 관련없는 정조 글씨로 짜깁기 해 새로 고친다면 독립가 사당의 현판을 마음대로 떼내어 부순 그 지방 유지의 심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흥선대원군의 용궁사 현판앞에서 교차되는 상념에 한참을 서성이는데 아들녀석이 주절거린다.
" 아빠, 심든데 우리 여기서 그냥 '야호!' 부르구 내려갈까?. 아무한테두 말하지 말구... "
대원군의 꿈에 나타난 계시로 절 이름을 바꿨다는 용궁사에서 약간의 내리막길을 따라 다시 등산로를 오른다.
네 갈래 방향표지판의 나무기둥 여기 저기에 " 개를 모시고 오지 마시라 "는 빼곡한 검정색 매직의 굵은 경고문에 비위 거슬린다. 애완견 키우자고 아이들이 애걸했지만 이전 부터 꿋꿋이 이를 거부한 나는 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더욱 그러하다. 무서웁다.
좀은 규격화된 이쁘장한 문장으로 '개 끌고 오지 말자'라고 했으면 좋으련만 비아냥 대는 듯한 이 문귀가 산에서 개를 보는것 보다 더욱 기분 잡친다.
심산유곡 바위에다 '자연 보호 합시다'라고 시커먼 페인트로 굵게 써 놓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조금을 헐떡이고 오르니 간략한 운동기구와 자갈과 작은 흙돌맹들의 만남의광장 공원 벤치에서 녀석이 싸온 걸 먹고
'야호!' 부르고 그냥 내려가자 한다. 그눔에 야호는 꼭 외쳐야만 하는가? ~
산 너머 신도시까지 가서 짜장면을 먹자고 꼬드겼다. 고소한 그 짜장면 냄새를 생각하며 가자, 아들아!
정상에서 보는 풍광은 아주 깨끗하다.
들물의 잔잔한 바닷물이 마치 거울 같으다. 이토록 깔끔한 시야는 처음이다.
송도와 월미도 강화, 신도 시도 모도와 장봉도. 인천공항을 돌아쳐 무의도. 그 뒤의 영흥도까지의 섬 섬 섬...
마니산에서 보내 온 봉화신호가 이 곳을 거쳐 문학산으로 전달되었을 봉수대 터에서 아들과 서로 아는 척 잘난 체 하며 정상의 헬기장에 올라 유난히 맑은 사방의 바다와 섬들을 눈에 밟는다.
아 - , 내 마음의 유배지. 이 섬에서 나의 탈출구는 어디 인가 !
신도시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에서 아담한 산소를 만난다. 좌우 청룡 백호의 뚜렷한 능선과 탁 트인 정면이 퍽이나 좋아뵈는 명당 자리 같으다. 뉘신지 모르는 산소 앞에서 ' 큰아이 조은대학 붙게 해주십시요!~ ' 넙죽 합장하여 절하곤 아들 뒤 따른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육지로 외출중인 아내가 영종대교 건너 오며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의 별장가든 앞으로 태우러 온다고 전화왔지만 두 사나이는 이를 거부했다. 공항신도시까지 걸어가서 짜장면을 먹기로 굳게 결의 하였음으로.
학창시절. 학생회의가 끝나면 학교 옆 짱'께'집으로 가서 저녁을 함께하는 것이 관례였다.
침침하고 조용한 다락방에서 잡채밥에 다'마'냉'이' 다'꽝'에 식초 뿌려 모올래 빼갈을 한 잔씩 나누어 마시는 비밀스런 맛은 기가 막혔다.
뚱땅한 중국인 쥔에게 빼갈값을 다른음식값에 포함해 영수증 끊어달라해 생활지도주임에서 학생과장으로 바뀐 선생님께 그 영수증을 제출하는 불안한 비밀의 추억, 중국집은 음흉과 비행의 장소로 내게 각인되고 말았다.
그 시절 학교 옆 비밀 아지트가 그리워 아들과 찾았다.
신도시 중국음식점에 도착해 막 나온 따끈한 짜장면을 고추가루 확 풀어 후루룩 건데기에 비벼 먹는 맛은 기통차다.
쥔에게 짬뽕국물을 얻어 교대로 나눠 마시곤 가라앉은 야채까지 녀석은 싸악 비운다.
어릴적 버스비가 3원 일때를 어렴푸시 기억한다.
버스비가 5원에서 왕창 올라 10원 일 적에 짜장면이 40원이었던 걸 또렷이 기억한다.
마을버스비가 700원으로, 10원에서 70배가 올랐으니. 짜장면도 70 배면 사 칠 이십팔, 2800원. 기차게 맞아 떨어진다.
푸릇한 신록의 공항신도시 아파트 옆 공원 잔디길서 바라보는 석양이 유난히 아름답다.
지친 다리 어깨동무하고 집으로 가는길에 엄마 전화 받은 녀석이 빵빵한 기분으로 으시대며 뽐 낸다.
" 엄마, 그냥 집으루 가. 산에서 내려와서 아빠랑 짜장면 먹었어, 대빵 많이 주데~ 댑따 마싯어! "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봄 날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 이양하의 "신록예찬(新綠禮讚)"중에서
첫댓글 '행복이 이런 거구나..' 미소짓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