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복지재단설립 95주년을 맞이해 감사 인사 올립니다.
한국 민간 복지사업의 초석을 놓은 공생복지재단은 설립 100주년(2028)을 앞두고 목포시민들께 감사함을 전하는 기념비 건립을
2023년 11월1일 유달산 기슭 공생원내 제막을 하고자 합니다.
척박한 시절, 곤궁한 형편에도
아낌없이 나눠주고 관심을 가져준 목포시민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지금은 한국의 많은 사회단체와
사회사업가들이 해외에서 현지에 맞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복지수출국이 되었지만 1928년 일본강점기 당시 한국에는 생존이라는 숙제만이 있었을 뿐 엄혹한 현실 앞에서 복지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종교적 소명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접할 수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인에 의한 복지활동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윤치호 전도사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가장 힘없는 약자들인 고아와 부랑인, 장애인과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모아 함께 생활했고, 목포시민들은 이런 윤치호 전도사를 거지대장이라 불렀습니다.
공동 모금 사랑의 열매는 상상 못하고 사회복지 법도 없을 때 공생원에 집을 지어주고 후원회까지 조직하여 목포 지역 유지들이 도왔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목포 시민들은 윤치호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민족상잔의 비극 6.25 때 고아들과 생활하던 윤치호 부부는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총살형의 급박한 상황에서 고아를 키운 것도 죄가 돼냐,며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항변해주었던 것입니다.이후에도 목포시민이 보여준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식량을 구하러 도청이 있는 광주까지 간 윤치호가 행방불명이 되고, 친구 하나 없는 일본인 윤학자가 어려움에 처하자 목포 시민들은 대가없이 도와주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적대적 정서에도 불구하고 목포시민들은 한국의 고아들을 보살피는 일본인 윤학자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시민들의 배려와 관심덕분에 공생원은 존립할 수 있었고, 3천명의 아이들도 공생원을 삶터로 삼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공생원은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초기 복지시설이라는 긍지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국적, 민족을 넘어 일본인 윤학자를 받아 주고 사랑으로 품어준 목포시민들은 윤학자가 소천 했을 때 시민장으로 그녀의 장례를 치러주며 그녀의 희생을 기리고 숭고한 뜻을 계승했습니다.
한‧일, 양국의 적대적 관계속에서도 최초외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러준 사실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목포시민의 국가를 넘은 인간사랑입니다.
민간 사회복지사업은 지역사회의 이해와 협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입니다.
목포시민이 보여준 관심과 배려는 매우 귀한 사례와 가치로 남을 것입니다. 목포시민들의 애민정신과 정의 문화로 공생의 촛불을 100년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목포시민이 지켜낸 공생원의 촛불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고 세상을 향해 빛을 밝힐 것입니다. 이같은 목포의 시민 정신이 지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길 바랍니다
목포시민들의 마음을 기리고 감사하는 모임은 첫번째 사업으로 목포시민에게 바치는 감사비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도 어머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3000여 고아들을 키운 것은 내가 아니라 목포시민들이다이!
가난해도 인정 많은 목포에서 살 수 있어 행복했다이!
2023년 11월1일
주최:윤학자를 사랑해준 목포시민에게감사하는 한일 합동 모임
주관:공생복지재단/윤학자 공생재단/제주공생/마음의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