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바깥은 캄캄하다. 빗방울은 좀 가늘어졌다. 2시 반까지 뒤척이다, 남편이 불을 끄는 것을 본다. 남편은 첫 경기를 앞두고 설레이는 나와 같은 맘으로 밤을 보내었을까, OCN의 거부할 수 없는 마력에 빠졌던 것일까?
4시 반, 알람소리, 삐리릭삐리 삐리리리릭..., 아직도 바꾸지 않은 남편의 손전화 벨소리, 요새 이런 벨소리는 아무도 없을거야, 차라리 자옥 자옥 자옥이가 낫겠네. 궁시렁궁시렁 보온밥통 뚜껑을 열고, 식혜가 잘 되었나 본다. 밥알 12알 동동, 성공이다. 작은 솥에 옮겨 붓고, 씻어두었던 쌀을 안치고, 심호흡을 해 본다. 여전히 떨린다. 대회 준비물을 한번 더 챙겨보고, 밥이 되기를 기다리며 이방저방을 돌아다 다닌다. 남편과 애들은 모두 깊이 잠들었다.
고슬고슬한 밥에 어제 준비한 재료로 김밥을 만다. 이리라도 해 놓고 뛰러 가고싶은 마음일까, 동네방네 달리는 데 기운보내라고 낸 소문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까?
막내가 좋아하는 식혜, 한병 담고, 김밥 썰어 접시 담아, 식탁에 차려놓고, 애들이랑 남편 얼굴 한번 더 본다. 비장한 각오, 꼭! 살아서 돌아오겠오!
어라? 집을 나서니 제법 비가 온다. 선혜언니와 비를 가르며 드라이브를 한다. 비야 더 내려라, 그래도 뒷풀이는 하겠지. 우리는 울산에 갔으니 할 말은 있는거야, 아니 그래도 안달리고 오면 챙피하잖아, 마음이 또 이리저리 흔들린다.
빗속을 드라이브 하며 아줌마들의 수다는 계속되고, 윤희 선배님의 전화소리가 들린다. 경기장 왼쪽에 텐트... 어디가 경기장 입구란 말이야. 텐트를 찾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선배님들이 우리를 찾으시겠지, 하프 출발선으로 가 스트레칭을 한다.
그런데, 선배님들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는다. 우리를 많이 기다리시나 보다, 죄송해서 어쩌나... 우와 저쪽에서 정대우선배님이 보인다. 우리는 드디어 미아의 신세에서 해방,
비를 뚫고 오신 어마어마한 분들, 역시 효마클 선배님들이시다. 모두들 첫 half 잘 하라고 격려해 주신다. 아이구, 나는 10km에 신청인데요, 차마 10km만 뛰겠다는 말이 안나온다. 모두 윤희 선배님 때문이다. half는 아무나 하나 나는 경주동아 인데요... 윤희 선배님이 힘을 실어주신다고 올리셔서 고만 졸지에 half뛰게 생겼다. 그래도 항상 차분히, 성실하게 뛰시는 서미영 선배님 옆에 떡하니 서니 겁이 좀 덜난다. 다시 한번 심호흡 깊게. 출발!
생각보다 초반에 속도감이 없다. 모든 선수들이 죽기살기로 뛴다고 들어 왔는데, 일단 수월한 출발, 첫 오르막에서 선혜언니는 차고 나간다. 팍팍팍, 그렇지 백양산 임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둘이서 뛰던 임도생각이 난다, 45도 각도에 뛰기는 뭘, 걸어놓고, 혼자 웃는다.
서미영선배님 항상 밝으신 분, 포근하다. 전혀 힘들지 않고 곧게 나가신다. 영문학박사보다는 국문학 박사가 어울릴듯한 소녀같은 웃음이 수줍으신 분이다. 영문학? 영어? 나는 잘하지 못하는 영어로 그러나 용감하고 씩씩하게 외국인과 대화한 내용으로 이야기 하며 달리니 훨씬 즐겁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선수들은 우리 앞을 차고 나간다. 그러나 어떠랴 아직은 힘이 하나도 안 든다.
뚱뚱하다고 놀린 언니와 싸운 이야기에서 7km지점이 지나간다. 또, 오르막이다. 선배님이 힘이 드신단다. 좀 속도를 줄이고 같이 뛴다. 파워젤을 선배님과 나누어 먹었다. 캬라멜맛이다. 이렇게 작은걸 먹고 힘이 날까...
멀리서 서정목 대선배님이 오신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데, 서미영선배님 딱 보면 아신단다. 한참후 즐겁게 인사. 힘을 실어드리고 달린다. 정대우선배님, 조철수 선배님 힘을 또 외친다.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한다. 반환점을 돌아오신 신형진, 김희주 선배님, 표정이 참 밝으시다. 선혜언니도 힘! 드디어 우리도 반환점이다. 빗물이 안경속 눈까지 들어 와 불편하다. 하지만 11km를 왔다. 이제부터는 돌아가는 게 걱정이다.
돌아갈때는 선배님이 말하셔요. 저는 체력만큼 왔으니, 이제 어떻게든 저를 이끌고 가셔요.
페메의 역할을 강조하며 선배님께 무거운 책임을 져 드렸다. 하나 둘 급수대가 치워지고 회수차가 돌고, 뒤에서는 구급차가 클랙션을 울린다. 천만의 말씀, 나는 뛰어 갈거예요.
그런데, 왼쪽 발목이 시큰거린다. 무슨 대회가 미터 측정이 되어 있지 않아 도무지 이곳이 얼마나 된 지점인지 알 수가 없다. 시계를 벗어버리고 온게 후회된다. 괜찮다며 속도를 줄였다.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새로운 발견이다. 난 여태 오른쪽 무릎이 아픈적이 없었다. 전혀 몰랐다. 왜 내가 아프지? 자꾸만 다리가 무겁다. 앞서 가던 남자분이 걷다 우리뒤로 쳐진다. 길은 외길 남도 삼백리쯤 보다도 더 길어 보인다. 갓길로 가란다. 교통통제가 해제되었단다. 급기야 뛸 수 없어 걸으며 오른쪽 고관절을 두드려 본다. 나의 메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조를 맞추어 주시고, 걷다 뛰다를 3회쯤 반복하니 문수경기장과 양궁경기장 이정표가 보인다 1.5km정도 남은듯하다. 이제사 갈등에서 해방이다. 끊임없는 구급차의 유혹에서 벗어나 마지막으로 뛴다. 나는 생각한다. 부산가면 어제 밤에 예고로 본 "슈퍼스타 감사용" 영화보러 가야지, 꼴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 주는, 먼저 들어 오신 많은 분들을 보며, 마음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나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 된 것이다. 아주 우. 아. 하. 게 들어왔다. 웃으며, 나의 페메와 같이 피니쉬라인을 밟았다. 서정목 대선배님 손수 물을 주셔서 2잔이나 연거푸 마시고, 선혜언니는 후들거리는 내 발목의 칩을 손수 끌러 주신다. 완주메달을 받고, 서미영선배님의 half 메달도 선물 받았다. 첫 10km, 첫 half 나는 한 대회에서 두개의 메달을 받았다. 자봉해 주신 최수일선배님의 천하일미 오뎅국을 국물까지 싹싹 먹고 , 손우현회장님 역주에 박수를 보내어 드렸다. 모든 분들의 수고로 우리의 울산대회는 즐거움과 맛이 어우러진 대회였다. 하지만 내게 남는 반성...
나의 한계를 느낀 대회였다. 먼거리를 한번도 뛰어보지 않고 너무 쉽게 생각한 게 탈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 몸을 알지 못했고, 내 몸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애들이랑 김밥먹고, 애들은 도서관 올라가고 혼자 있단다. 완주소식에 해낼 줄 알았단다. 평소에 열심히 운동하니 당연하지... 으 악 창피하다. 사실은... 아팠는데...
즐겁게 뒤풀이하고 집에 오니 남편이 묻는다. 어? 뒷풀이는 왜 안갔어?
와이프 맨날 늦께 다닌다고 뒷풀이 안하고 온 줄 안게다. 누가 알리. 이 진실을...
하지만 영원한 진실 하나, 효마클과 선배님들이 있어 나의 첫 대회에는 정말 즐겁고 행복하였다. 나를 믿어주는 남편과 딸들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효마클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첫댓글 첫 하프의 후기는 어찌보면 풀 후기보다 더 감동적이지요. 달리기에 입문하여 2시간 가량을 달려야 하겠기에 힘은 들고 또한 완주는 해야되고 심적부담이 많은 가운데 결승점에서의 감흥은 천하를 얻은 기분일 것입니다. 축하드리며 자주 주로에서 봅시다. 이계임 이계임 이계임 힙!!!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혼자만의 노래를 부르다가 둘이한 하프 코스에서 얻은 교훈과 감흥은 남달리 크리라 생각됩니다. 찬찬히의 대명사이신 서선배님과 함께한 하프 첫 완주를 오래 오래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기록팀장님 고생 엄청하셔습니더!
졸지에 하프완주에다 메달도 두개나? 계임시 고생했습니다 당분간 쉬시며 오른쪽 무릅 어름찜질도 하시고 빨리 회복하시기 바랍니다,계임씨! 힘!!!
그 역사적인 순간을 서방님과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여하튼 축하합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려요... 선배님들의 후기를 보니 저의 첫 하프때가 생각나네요...그립고 아련하고 부끄러운...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신 하루를 보내고 그 감동속에서 오늘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첫 하프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상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며 오래 오래 건강하게 달리시기를 ... 그리고 그 서방님 한 번 보았으면 하옵니다.
이 계임님! 첫 하프 완주! 축하합니다. 힘든 달림 속에서도 박 목월님의 <나그네 >싯귀를 노래하며 여유롭게 달리셨군요. 역시 목달멤버답습니다.오른쪽 무릎 회복될때까지는 푹 쉬십시요. 빠른 회복을 빕니다.이 계임 힘!
첫 하프 축하드립니다. 항상 첫 도전은 감동적입니다. 회복 잘 하세요.
작년 1월 첫하프에서 17km지점부터 다리를 질질 끌며 걷다시피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동안 다리운신도 제대로 못했던 것도요..그런데 묘한 것은 하프 완주하고 나니 내가 이제 정말 마라톤을 하는가부다는 제대로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계임님도 그 감흥에 빠져보시길..ㅎㅎ 계임님 힘~!
계임씨, 너무 예쁘신 분, 김밥까지 싸 놓고 오시다니, 식혜도 준비하시고. 너무 잘 뛰셨고 저 끌고 오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 밝은 마음을 늘 기억하며 사랑할께요. 감사합니다.
이계임 후배님 하프완주의 뿌듯함을 오래오래 누리시길 바랍니다.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중독의 길로 들어서신 걸 무엇보다 축하드립니다 빠른 회복을 바랍니다
요즘은 아무도 안 쓰는, 아니 아무도 참가 안하는 10킬로 완주후기 쓰고 생애 첫 마라톤대회참가 감동에 벅찼던 적이 생각나네요. 이후 하프완주후기는 저의 전공이었는데 얼떨결에 하프코스로 입문하심을 축하드려요. 그것도 선배님을 페메로 동반하시고요....
새벽의 식혜와 김밥..,부지런하시고 명랑하신 계임씨.. 첫하프의 감동을 일찍 당기셨네요..축하드려요. 근데 남편과 같이뛰면 또 좀 다르게 재미가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보시면^^...계임씨 힘~~
뭐니뭐니해도 첫 완주후에 보는 후기는 정말로 아름답고 순수합니다. 항상 처음과 같은 즐거운 마음으로 뛰시길 발랍니다. 힘~~!
첫하프완주 축하드립니다. 하프든 풀이든 첫경험(?)이 중요합니다. 평생 오랫도록 가슴속에 첫완주의 기쁨을 간직하고 살아가시길..이계임후배 힘!
첫 하프 훌륭히 완주하시고 명실상부한 마라토너가 되심을 축하합니다. 왕초보에서 3개월만에 하프 완주는 아주 드물지요.(예외적으로 서명선생님은 2개월만에, 보통은 1년내지 2년걸림)
지난 3월 첫하프,첫말톤때는 독립군 시절이라 무서븐 마눌만 반겨줬는데 (사실은 생사확인차) 여러분들이 반겨줘 조았겠어요 그래도 신랑이 있었으면 더,,,,,!
이계임 후배님의 하프 완주마지막 문수운동장으로 밝게 들어오던 모습이 참보기 좋았읍니다.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좋은 추억이 되리라 생각됩니다.부상에서 빨리회복 하시기 바랍니다 쉽게 모든것을 다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항상 느끼게하는 마라톤의 교훈이 느껴집니다. 이계임 힘!!
우와! 계임씨! 드디어 첫 하프를 성공적으로 잘 마치셨네요. 새벽에 밥 챙겨 놓고 일달왔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뭔 일을 해도 야무지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축하드리고, 회복 잘 하시길 바랄께요.
'슈퍼스타 이계임'....
시간대별로 사실적으로 썬 글 잘읽었어요.계임후배 힘!!
미래의 효마클을 이끌고 갈 훌륭한 재목임에 틀림이 없군요, 수고 많이 하셨어요. 빠른 회복 바랄께요~~~이계임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