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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추수감사절 맞이하세요! 반려동물 센터에서 보냅니다. 길고양이, 털북숭이들의 양부모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며칠 앞둔 날 이메일로 받은 문자다. 추수감사절·반려동물 센터·양부모라는 세 단어가 큰 활자로 눈앞에서 출렁이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두 해 전쯤, 명절이 낀 겨울철에 동물 보호 센터에서 입양해 십 년 이상을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과 견공 중 마지막 녀석 둘이 차례로 죽으면서 동물보호센터와의 인연은 끝난 터였다.
함께 했던 그때 제대로 신경 써주지도 잘해주지도 못했다는 자책은 미안함이 되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떠나질 않는다. 그때, 우리 부부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입양하는 일은 접기로 했었다. 이제 입양하게 되면, 고양이나 개보다 우리가 먼저 세상을 뜰 확률이 높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12개 공휴일, 명절 중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큰 명절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쇠는 추수감사절과 12월 25일 성탄절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동양계 미국인들은 양력 또는 음력 정월 초하루를 더하여 뜻깊은 명절로 축하한다.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모여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칭찬하며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다짐한다. 미국은 또 이때 국가적인 풍성함을 되새기기도 한다.
미국은 올해 추수감사절에 4천6백만 마리의 칠면조를 식탁에 올렸다. 또 사상 최대인 8천백만 명이 이동했다고 한다. 미국 인구를 약 3억 4천만 명이라고 볼 때, 24%에 달하는 숫자가 가족과 친구들을 찾아 장거리를 이동했다는 이야기이다. 여행자의 90%가(7천3백만 명) 자동차로, 6백만 명은 비행기로 이동했다고 한다. 나는 비행기 편으로 뉴멕시코주(州) 알부쿼키에 가서 닷새를 지냈다. 둘째 딸과 큰조카네 가족은 유럽에 있어 이번 휴일에 참석하지 못했다. 유럽에는 추수감사절 휴일이 없다고 한다. 대신 사돈 쪽 친척들과 함께한 추수감사절 만찬에는 구운 칠면조 고기와 햄을, 다음 날부터는 남은 칠면조 뼈, 고기 부스러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칠면조 곰탕’을 먹어주어야만(!) 했다. 참고로, 칠면조 고기와 한국의 김치는 잘 어울린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영국에서 종교탄압을 피해 미국 매사추세츠 주(州)의 보스턴 지역에 이주했던 청교도들이 한해의 수확을 감사하면서 아메리칸 원주민 인디언들과 함께 1621년에 시작했다고 한다. 스미스소니언 기록에 의하면 칠면조가 아닌 오리와 닭고기, 생선들을 먹었다고 되어 있다. 2백여 년 후에, 작가 찰스 디킨스와 잡지 편집장 사라 조세파 해일이 칠면조에 대한 보도를 자주하면서 칠면조가 인기를 얻게 되었고, 미국인들은 차츰차츰 문화적으로도 칠면조 고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남북전쟁으로 갈려있던 나라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국가 공휴일로 선포했다.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어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 친척들은 추수감사절 날 이른 만찬 후에 리오그란데강(Rio Grande)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리오그란데’는 ‘큰 강’이라는 뜻이다. 이 강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세계 지리 시간에 미국 4대 강 중의 하나라고 배웠기에 그 이름이 친근하다. 그뿐만 아니라, 카우보이 서부 영화 중에는 이 강을 주제로 한 명곡들이 적지 않다. 콜로라도주(州)에서 시작해서 뉴멕시코주(州)를 지나 남쪽 멕시코만(灣)으로 흐른다. 약 1,896마일인데 서울과 부산 간 거리의 9배 정도이다.
석양을 받아 신비한 빛으로 갈아입은 산디아(Sandia) 산은 구름의 보라색 그림자도 허락하고 있었다. 산과 평행으로 흐르는 강을 떠나 훌훌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날아가는 두루미 무리는 산, 강과 어울려 한 폭의 멋진 그림을 이루었다.
내가 사는 아열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와는 달리, 사계절이 뚜렷한 뉴멕시코의 고목들은 이미 자기들의 잎을 잃은 지 제법 된 모양이었다. 색색의 낙엽들이 바람에 몰려다니는 소리가 연약하고 궁핍했다. 그런 낙엽을 밟으며 걸었다. 집집마다 벽난로에서 태우는 나무 냄새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반려동물 센터에서 보내온 문자에서 애완동물의 제사라도 지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애초에 들었었다. 하지만, 뉴멕시코 알부커키에서 동물뿐만 아니라, 고목들과 그들이 내어 준 나뭇잎, 이동하는 두루미 떼와 함께 그들이 내 삶의 도반(道伴)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감사한다. 그리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아야겠다.